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⑬ 세계적 불교성지 캔디 불치사

기자명 법보신문

인간 붓다 향취 그윽한 캔디의 심장

<사진설명>캔디를 살아 숨쉬는 붓다의 성지로 만드는 것은 오직 불치사가 있기 때문이다. 치아사리를 친견하기는 쉬운 일이 아님에도 스리랑카 불자들의 발걸음은 끊이질 않는다.

‘옷은 단정한가. 조금 더 제대로 갖춰 입었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데 정말 친견할 수 있을까. 설마 갑작스럽게 무슨 일이라도 생겨서 일정이 취소되는 일은 없겠지.’

손바닥만한 거울을 통해 아무리 살펴봐도 오늘 차림새가 영 맘에 들지 않는다. 뭐 꼭 정장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왠지 옷매무새에 자꾸 신경이 쓰이고 설렘으로 두근거리던 마음은 문득문득 불안한 생각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불치사를 향해 가는 길은 기대와 설렘, 그리고 약간의 불안함으로 시작됐다.

캔디의 심장 불치사는 부처님의 치아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곳. 그래서 이름도 불치사(佛齒寺)이다. 불치사의 스리랑카식 이름은 달라다 말리가와(Dalada Maligawa)이지만 영문으로 작성된 각종 스리랑카 관련 서적에서도 달라다 말리가와라는 고유명사 보다는 ‘Temple of the Tooth(치아 사원)’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소개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불치사라는 이름이 고유명사차럼 사용되고 있다. 부처님의 치아 사리가 모셔져 있다는 불치사의 의미 그 자체가 하나의 고유명사로 사용될 만큼 이곳 캔디의 불치사는 세계적인 불교 성지이다.

일반 관광객들에게도 시기리야의 바위궁전과 더불어 캔디의 불치사 순례는 스리랑카 여행의 절정으로 손꼽힌다. 그러니 순례객에게 있어 불치사 참배는 그야말로 화룡점정의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스리랑카 불치성 장관의 특별 허가를 받아 치아사리를 직접 친견할 수 있다는 통보까지 받아 놓았으니 불치사를 향하는 걸음은 이미 발가락 끝까지 긴장과 기대로 가득 차 부풀어 오르는 듯하다.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치아사리를 친견한다고 해서 직접 치아사리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친견을 허가한다는 의미는 불치사 안 가장 깊숙한 곳, 엄중한 절차를 거쳐야만 들어갈 수 있는 법당에서 사리함 안에 봉안돼 있는 치아사리를 친견하고 참배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치아사리가 모셔져 있는 법당의 문은 하루에 딱 세 번, 공양을 올리는 푸쟈 때뿐이며 이때에도 공양을 올리는 사람들 외에 일반인은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사리함에 봉안돼 있는 치아사리가 일반에 공개되는 것조차 일 년에 딱 한번, 8월에 열리는 치아사리 이운축제인 페라헤라 때뿐이니 순례객은 법당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행운과 특혜를 얻은 셈이다. 치아사리가 직접 일반에게 공개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공개될 때는 금으로 만든 연꽃 모양의 좌대에 모신다고 하니 상상으로 그 모습을 떠올릴 뿐이다.

페라헤라에만 일반에 공개

<사진설명>치아사리가 모셔져 있는 불치사 내 중앙 법당 입구. 상아 아치를 지나 저 문을 넘어서면 치아사리를 모신 법당이다.

불치사 입구에는 참배객들이 길게 줄을 서서 입장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입구에는 군인들까지 배치가 돼 꽤나 삼엄하게 경비를 서며 참배객들의 소지품까지 일일이 검사한다.

불치사에 대한 경계가 이처럼 강화된 것은 1998년 불치사를 향한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한 이후다. 당시 폭탄을 싣고 불치사를 향해 돌진한 이 차량은 불치사 입구에서 폭발해 건물 일부를 파괴시켰지만 다행히 치아사리에는 큰 피해가 없었다. 타밀족으로 구성된 반군에 의해 벌어진 이 테러는 불치사가 싱할라 민족주의의 상징이며 그런 까닭에 테러의 직접적인 대상이 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사원 안에는 이미 적지 않은 순례객들이 들어와 있다. 사원은 2중 구조로 되어있는데 커다란 바깥 건물 안 중앙에 2층 규모의 법당이 조성돼 있는 형태다. 이처럼 건물이 2중 구조를 갖게 된 것은 치아사리를 캔디에 모신 다르마수리야 1세가 2층의 사원을 지은 후 18세기 들어 나렌드라심하(Narendrasimha. 1707~1739)왕이 사원을 개축했기 때문이다.

치아사리가 봉안돼 있는 법당의 출입문 양쪽에는 커다란 두개의 상아가 둥근 아치를 만들며 입구를 지키고 있다. 법당은 사각형의 커다란 돌기둥이 지붕을 받치고 있는 모습인데, 아누라다푸라나 폴론나루와 유적에서 보았던 돌기둥들이 원래는 이런 형태로 사용됐을 것이다. 천장은 우리나라 전통 사찰건축의 다포양식 같은 출목 형태를 보이고 있지만 모두 돌로 만들어져 있어 우리와는 전혀 다르다. 벽에는 치아사리를 지키는 듯 보이는 각종 신장, 천신, 상상의 동물들과 함께 길상을 상징하는 꽃과 문양 등이 화려한 색채로 그려져 있다.

흰옷에 붉은 어깨띠를 두른 꽤나 엄숙해 보이는 관리인의 안내로 법당 1층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니 정면에는 다음 방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는데 입구에 있던 것보다는 조금 작은 상아 3쌍이 아치를 이루며 문 앞에 도열하듯 세워져 있다. 저 문 안에는 불치를 이운할 때 사용하는 좌대 등이 보관돼 있다고 한다. 방은 화려한 장신구와 황금잔 등 그야말로 진귀한 보물들로 가득 차 있다. 역대 왕이나 신도들이 불치를 예경하며 공양한 보물들이라고 한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가파르기도 하지만 폭이 좁아 한 사람씩만 올라갈 수 있다. 잠시 기다리고 있던 일행을 향해 2층에서 올라오라는 손짓을 보낸다. 한사람씩 줄을 서서 계단에 올라서자 가파른 기울기 탓에 발을 살피려고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붉은 융단이 깔리고 사방이 화려한 벽화로 장식돼 있는 2층 홀은 비교적 넓다. 온갖 보석들로 휘황찬란하게 장식된 문과 앞서 보았던 상아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커다란 상아 아치가 눈에 들어온다. 한 눈에 보아도 저 문 너머에 부처님의 치아 사리가 모셔져 있음을 알 수 있다.

1998년 폭탄테러로 경계 강화

<사진설명>불치사는 커다란 바깥 건물 내부에 불치를 봉안하고 있는 이층 법당이 들어 있는 이중 구조다. 일반인들의 출입이 가능한 곳은 이층 법당 앞까지다.

문 앞에 서 있던 스리랑카 스님이 안에서 사진촬영을 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해 준다. 또 문지방을 밟아서는 안 된다고 주의도 준다. 이유를 물어볼 새도 없이 문이 열렸다. 스님의 주의대로 문지방을 밟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며 보니 문지방은 온통 화려하게 조각된 금으로 덮여 있다.

더 이상 촬영을 할 수 없다는 아쉬움도 잠시, 법당 안에 들어서자 법단 위에 모셔져 있는 사리함을 향해 손이 먼저 합장례를 올린다. 저 안에 붓다의 치아사리가 들어있다고 생각하니 머릿속이 온통 하얗게 변하는 기분이다. 2600여 년 전 인도에서 낳고 자라고 성도하고 깨달음을 펼치다 열반에 든 붓다. 그 분은 분명 인간의 곁에 왔던 스승이었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그 분을 너무 멀리 떠나보낸 것은 아니었던가. 습관적으로 우리는 붓다가 멀고 높은 어떤 곳에 계시는 신비로운 대상이라고 여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저곳에는 인간 붓다가 남긴 작은 흔적이 있다. 깨달음을 완성하도록 힘이 되어 주었던 수자타의 유미죽과 번뇌 없는 열반의 경지에 드는 계기가 된 춘다의 공양이 모두 저 치아를 거쳐 붓다의 법체에 스며든 것이다. 인간의 모습으로 나서 인간의 모습으로 열반에 든 진정한 인간의 스승 붓다의 인간적인 흔적이 남아있는 것이다. 인간 붓다를 만난 기쁨이 가슴 속 한가운데서 가득 차오르는 듯하다. 일행은 모두 석가모니불을 되뇌며 오래도록 그 아래 머리 숙여 예를 올렸다.

진귀한 공양물로 장엄된 사리함

<사진설명>3층 회랑에서 내려다 본 불치사. 잘 정비된 정원엔 무성한 보리수와 화려한 꽃이 어우러져 있다.

치아사리를 모시고 있는 사리함은 높이 약 60센티미터에 다고바 형태의 황금으로 만들어져 있다. 사리함은 화려한 목걸이와 장신구 등으로 가득 뒤덮여 있는데 옛 왕비들이 자신들의 장식구를 치아사리에 공양 올린 것이라고 한다. 그 가운데 황금 띠로 중간 중간을 엮은 검은색 줄 같은 것이 보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 검은 줄은 머리카락 다발이었다. 신심이 지극했던 한 왕비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금실로 엮어 치아사리에 공양올린 것이라고 한다. 싱할라 왕조의 지극했던 신심과 더불어 치아사리에 담겨 있는 강력한 왕권을 상징해 보이는 듯 했다. 사리함은 모두 일곱겹으로 돼 있는데 보이는 것은 제일 바깥쪽의 사리함 뿐이다. 안쪽의 사리함이 어떤 모양인지 궁금하지만 알 길이 없어 아쉬움으로 남는다.

바깥쪽 사원의 2층에는 각국의 불상이 모셔져 있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 불상도 눈에 띈다. 어느 나라 불상인지를 따지지 않고 스리랑카 사람들은 열심히 기도를 올린다. 불상 앞에는 불자들이 올린 꽃이 수북이 쌓여있다. 불치사 안은 달콤한 꽃 내음과 불단 앞에 피운 향 내음이 묘하게 얽혀 온몸을 휘감는다. 그 향기에 취하기라도 한 듯 치아사리 친견의 흥분이 좀처럼 가라앉질 않는다.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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