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⑭ 문화-예술의 총화 페라헤라

기자명 법보신문

장엄한 불치 아래 하나되어
풍요를 기원하는 축제의 밤

<사진설명>페라헤라에서는 횃불 춤, 채찍 다루는 기술 등 다양한 볼거리가 등장한다. 특히 횃불 춤은 한밤의 축제 열기를 더욱 뜨겁게 달군다.

“…복을 심고자 하는 자는 각각 도로를 평탄하게 하고 거리를 아름답게 꾸미며 여러 가지 꽃과 향, 공양 기구를 마련할지이다”


푸른 호수를 품고 있는 캔디의 아침은 맑고 청량한 기운이 가득하다. 스리랑카의 어느 도시보다도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모여 있는 곳 답게 아침부터 캔디 호수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산책을 하거나 잔디밭에 벌렁 누워 맑은 공기를 흠뻑 들이마시는 것으로 느긋하게 하루의 시작을 즐기는 외국인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도시 전체가 축제 열기 속에

일 년하고도 열두 달, 매일 이렇게 느긋하고 청량한 아침을 맞이할 것만 같은 도시 캔디. 하지만 이곳도 일 년에 한 번, 도시 전체가 인산인해를 이루며 흥겨움과 술렁임을 너머 거대한 흥분의 도가니로 바뀌는 시기가 있다. 바로 7, 8월에 열리는 스리랑카 최대의 축제 페라헤라 기간이다.

페라헤라가 시작되면 조용하던 도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축제의 열기에 빠져든다. 축제를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순례객과 관광객들이 스리랑카로 몰려드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축제의 하나로 손꼽힐 만큼 유명세를 타고 있는 페라헤라를 보기 위해 이 시기에 맞춰 스리랑카를 방문하는 것이 여행업계에서는 이미 널리 알려진 상식이다.

페라헤라는 본래 ‘행렬’ ‘행진’이라는 뜻으로 축제를 지칭하는 일반적인 표현이었으나 캔디의 치아사리 이운 축제가 세계적인 축제로 유명해지면서 캔디의 축제를 지칭하는 고유 명사처럼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콜롬보, 담불라, 라트나푸라, 꼿떼 등 스리랑카의 여러 도시와 마을에서는 각 지역의 특징을 담은 다양한 페라헤라를 행하고 있다. 그 시기도 각각이라 운이 좋은 순례객이라면 우연히 방문한 어느 도시에서 뜻하지 않은 축제를 만끽할 수도 있다.

캔디의 페라헤라는 음력 7월 1일부터 15일까지 보름간 이어지는 치아사리 이운 축제다. 이 화려한 축제에 대한 기록은 중국 당나라 시대의 고승 법현 스님이 399년 중국 장안을 출발해 중앙아시아와 인도 등의 불적을 순례하고 기록한 『고승법현전』에도 등장한다.

“…불치(佛齒)는 항상 3월 중에 불치사로부터 꺼냈다. 이것을 꺼내기 10일 전 왕은 큰 코끼리를 장식하고 말주변이 능한 자에게 왕의 옷을 입혀 코끼리 위에 태운 후 거리를 다니며 북을 치면서 다음과 같이 합창하게 했다.

‘이제부터 열흘 후 불치는 불치사를 나와 무외산정사(無畏山精舍. 아브하야기리위하라)에 이를 것이다. 복을 심고자 하는 자는 각각 도로를 평탄하게 하고 거리를 아름답게 꾸미며 여러 가지 꽃과 향, 공양 기구를 마련할지이다.’

이와 같이 합창을 마치면 왕은 곧 길 양쪽에 보살의 여러 가지 변현(變現)을 만들었다.…”

법현 스님의 기록을 살펴보면 당시 스리랑카의 수도였던 아누라다푸라에서 펼쳐졌던 치아사리 이운은 지금보다 더 웅장하고 화려한 축제였다. 왕은 치아사리가 지나게될 길가를 다양한 조형물로 장엄했다. 이 조형물들은 붓다께서 전생에 행한 많은 보살행을 재현한 것으로 화려하게 채색을 하고 장식을 달아 모든 시민들이 볼 수 있도록 했다. 시민들 또한 치아사리를 맞이하기 위해 거리를 청소하고 갖가지 장식으로 아름답게 꾸며 놓았으니 치아사리 이운을 앞둔 아누라다푸라는 도시 전체가 마치 거대한 꽃밭처럼 보였을 것이다.

금과 은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코끼리에 모신 치아사리가 마침내 왕실 사원을 나와 거리를 행진하면 시민들은 치아사리를 향해 꽃과 향 등을 공양 올렸다. 시민들의 공양을 받으며 화려하게 장엄된 거리를 지나 치아사리가 아브하야기리위하라에 다다르면 스님들은 치아사리를 법당에 봉안하고 90일간 쉬지 않고 향과 등을 공양하며 법회와 예경을 올린다. 불자들의 친견도 계속된다. 90일간의 친견법회와 예경이 끝나면 치아사리는 다시 성내의 불치사로 이운되며 다음해 축제 때까지 왕은 치아사리를 받드는 경배자인 동시에 수호자가 된다.

치아사리를 이운하며 화려한 축제를 펼치는 것은 4세기 초 치아사리가 인도로부터 스리랑카에 도래된 직후부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치아사리를 모시고자 간절히 원했던 마하세나 왕이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후 뒤를 이은 시리메가완나 왕은 아버지가 그토록 소원했던 치아사리가 인도로부터 도래했다는 사실을 알고 친히 성대한 행렬을 이끌고 치아사리를 모셔 봉안한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비를 기원하는 농경제와 결합

<사진설명>담불라에서 펼쳐진 페라헤라.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열린 이 페라헤라에서도 화려하게 장식된 코끼리와 사리함, 캔디안 댄스 등이 행렬을 장엄하고 있다.

페라헤라는 본래 싱할라 민족의 토속적인 농경제였으나 치아사리 도래 이후 이 제식에 치아사리가 결합하며 성대한 불교 축제로 발전해 왔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스리랑카 사람들은 치아사리에 비를 내리게 하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믿음은 12세기 싱할라 왕조가 수도를 폴론나루와로 옮긴 이후 본격적으로 대두됐다. 싱할라 왕조 수도의 제1조건은 농업용수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저수지와 수로의 확보였다. 농사의 성패는 왕조의 번영과 직결되는 가장 중요한 국가기반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싱할라 왕조에게 때에 맞춰 적절히 비가 내려주는 것은 저수지의 확보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였다. 따라서 왕권을 상징하는 치아사리에 비를 내리게 하는 즉, 치수의 힘이 들어있다고 믿어지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인 셈이다.

코끼리 100마리의 화려한 행렬

지금과 같이 치아사리가 중심이 되는 축제의 형태는 18세기 들어 완성됐다. 이모작이 가능한 스리랑카에서 음력 7월은 첫 번째 수확을 마치고 두 번째 파종을 준비하는 기간으로 페라헤라에는 풍성한 수확에 대한 감사와 함께 다음 파종을 위해 비가 내리길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페라헤라가 시작되면 매일 밤 캔디에서는 화려한 행렬이 펼쳐진다. 저녁 8시 즈음 시작되는 행렬은 시내 곳곳을 다니며 밤 12시까지 이어진다. 화려하게 장식된 옷을 입고 갖가지 장신구로 화려하게 치장된 코끼리 100여 마리가 느릿느릿 행진을 시작하면 연주대, 무용단, 기예단 등이 화려한 몸놀림을 보이며 함께 행렬을 이룬다.

이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캔디안 댄스다. 캔디안 댄스는 수도를 캔디로 옮긴 싱할라 왕조의 궁중 연회 때 추던 궁중 무용으로 민속춤과 합쳐져 화려함의 극치를 선보이며 스리랑카의 대표적인 전통 무용으로 해외에까지 널리 소개되고 있다. 캔디안 댄스를 선보이는 남성무용수들은 강렬한 북소리에 맞춰 박력 있으면서도 민첩하게 발을 움직이며 여기에 우아한 팔동작을 가미한다.

<사진설명>페라헤라 기간 동안 불치사는 화려한 전구로 장엄된다.

몇 시간씩 계속되는 행렬 동안 캔디안 댄스도 쉬지 않고 이어진다. 사람 키의 두세 배에 달하는 긴 채찍이나 횃불을 우아하게 휘두르며 갖가지 춤과 동작을 보여주는 기예단, 화려하게 장식된 웅장한 코끼리들, 그리고 온갖 등불로 휘황찬란하게 불을 밝힌 채 코끼리 위에 모셔진 화려한 사리함 등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페라헤라는 늦은 시간까지 캔디 시가지를 화려하게 수놓는다.

축제의 마지막 날에는 대통령과 장관 등 주요 정치지도자들까지 모두 캔디에 모여 행렬을 지켜본다. 축제가 끝나고 나면 다음날 아침 불치성 장관은 대통령에게 올해의 축제가 무사히 끝났음을 보고한다. 이것은 싱할라 왕조 시대부터의 전통으로 국가와 국가의 지도자가 불법의 수호자이며 치아사리를 받들고 있음을 상징하는 의례이기도 하다. 이처럼 페라헤라는 국가와 국민이 하나가 되어 만들어내는 랑카 최대의 축제인 것이다.

페라헤라 통해 음악-무용 발전

무용, 기예, 음악과 화려한 예술품 등이 어우러지는 페라헤라는 스리랑카 불교가 낳은 무형의 문화재이며 스리랑카 불교 예술의 총화이기도 하다. 음악과 무용 등 다양한 예술이 불치사와 페라헤라를 통해 발전하고 계승돼 왔다. 오늘날 가장 스리랑카다운 도시라는 캔디의 명성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스리랑카 사람들 모두가 축제에 참여하고 장엄하는 속에서 싱할라 민족이 붓다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있으며 붓다의 가르침이 이 섬에 살아 빛나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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