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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승가 그리고 재가의 일상

기자명 법보신문

탄생부터 죽음까지 승가와 함께 한다

<사진설명>승가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은 큰 공덕을 짓는 길이다. 의자에 흰 천을 깔아 스님들을 모시고 공양을 올린 후 기원하는 불자들의 모습에서 그들의 깊은 신심이 엿보인다.

아침부터 스님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스리랑카 승가의 일상을 살펴보고자 이른 시간 사원을 찾았는데 어째 날을 잘못 잡은 듯 한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스리랑카 최대 종파인 씨암파의 중심 사원 캔디의 아스리기사와 인근에 위치한 스님 마을까지도 살짝 술렁이는 분위기다.

“오늘 구족계 수계식이 있어요. 구족계 받을 스님들이 오전에 시험을 보는데 합격하면 오후에 바로 수계식이 열려요. 그래서 종정 스님부터 원로 스님들이 모두 모이셨어요.”

이리저리 오가며 종종 걸음을 치던 이곳 아스리기사의 스님 한 분이 일러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뜻하지 않은 수계 장면을 볼 수도 있겠다 싶어 스님 뒤를 바짝 따라 붙었다. 종종 걸음으로 바쁜 스님은 그래도 먼 곳에서 온 이방인의 관심이 기특했는지 수계식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준다.

스리랑카 불교계에서는 음력 5월 보름부터 6월 보름까지가 구족계를 받을 수 있는 기간이다. 이 기간 중 적당한 날을 택해 1년 전에 미리 종정 스님을 찾아뵙고 수계 날짜를 예약해야 한다. 하지만 날짜만 정한다고해서 계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정한 시험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진설명>사원에서 설립한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

약속한 수계일이 되면 부모와 친척, 이웃 등이 모두 구족계단이 설치된 사원으로 모여든다. 구족계는 스무 살이 넘으면 수계할 수 있는데 구족계를 받을 사미승은 은사 스님과 부모를 모시고 인근 사원의 스님들을 찾아다니며 수계하게 됐음을 알리고 인사를 올린다.

오전 10시가 되면 종정 스님 등 원로 스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팔리어 경전을 암송하고 해석하는 시험이 진행된다. 특히 이 시험에는 「법구경」 등이 단골로 출제된다. 스님들이 지정하는 경전 대목을 정확히 외우고 뜻을 제대로 풀이해서 모든 스님들로부터 합격 판정을 받으면 비로소 수계가 결정된다. 수계식은 점심 공양을 마친 후 열린다. 사미승은 이때 평생에 마지막으로 화려한 옷과 장신구를 이용해 마치 왕처럼 장엄하게 꾸미는데 이는 속가의 부모와 친척들이 마련해준다. 계를 받고 나서 자신의 사원으로 돌아와 함께 동행해준 이들과 사원의 신도들에게 첫 설법을 하는 것으로 수계 의식은 끝이 난다. 이 기간 동안 하루 평균 10여 명 정도가 수계를 한다.

하지만 오늘 오전엔 콜로보로 떠나야 한다. 어느새 막바지에 달하고 있는 스리랑카 불교 순례의 짧은 일정이 수계식 참관을 허락하지 않는다.

구족계 수계식은 가장 화려하게

수계식에 참관하진 못했지만 다행히 스님들의 생활공간을 둘러 볼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됐다. 스님들의 생활공간을 살펴보기 위해 스리 찬다난다(Sri Chandananda) 사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스리랑카의 사원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대부분의 사원들이 교육 시설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사원에는 재가 학생들을 위해 설립한 초·중·고등학교 외에도 피리웨나(Pirivena)라고 하는 승가 교육시설이 있다. 전국에 약 200여 개의 피리웨나가 설치돼 있다고 한다. 본래는 스님들을 위한 교육시설이었는데 요즘엔 재가자에 대한 초등교육을 함께 담당하는 피리웨나도 있다.

<사진설명>사원에 설치된 고등학교의 컴퓨터실에서 공부 중인 학생들.

피리웨나에서는 팔리어, 산스크리트어, 영어 등 다양한 어학과 수학, 역사, 불교학, 논장 등을 지도한다. 피리웨나는 초·중등교육과정을 담당하는 5년제의 뮬리까피리웨나와 고등교육과정인 마하피리웨나가 있다. 마하피리웨나는 대학진학반인 2년제와 학사학위 취득까지 가능한 3년제 두 가지로 나눠져 있다. 피리웨나를 졸업한 스님들은 공립학교에서와 마찬가지로 모든 학력이 공식적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대학 또는 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스리랑카 스님들의 학력 수준은 매우 높은 편이다.

사원에는 8살 미만의 어린이들을 위한 유치원이 설치돼 있는 곳도 많은데 이곳에서는 인근 마을의 어린이들과 함께 동진 출가해 피리웨나에 입학할 나이가 아직 되지 않은 어린 행자들에 대한 교육이 함께 이뤄진다.

일요일엔 ‘담마 스쿨(Dhamma school)’로 불리는 일요불교학교가 열린다. 담마 스쿨에 다니기 시작하는 나이는 보통 5세 정도이며 1학년부터 10학년으로 나눠 2~3시간 정도 불교 교리를 가르친다. 담마 스쿨은 근대의 공교육 제도가 성립되기 이전부터 사원이 교육을 담당하던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담마 스쿨을 졸업했는가 여부는 개인의 경력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대학 진학이나 취직, 공직 진출 등에 있어서 담마 스쿨 졸업장을 요구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담마 스쿨은 출가 인연을 맺어주는 중요한 통로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담마 스쿨을 통해 불교를 교리적으로 접하는 동시에 사원과 스님들의 생활에 대해서도 경험하게 된다. 출가는 8세를 전후해 부모가 아이에게 출가의 뜻을 물어 결정하는데 이 때 아이들은 이미 사원과 스님들의 생활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뜻을 밝힐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출가를 결정하는데 부모들의 의지가 절대적으로 작용하긴 하지만.

재가교육 전통 이어온 담마 스쿨

<사진설명>어린이들을 위한 담마 스쿨. 여느 유치원과 다름 없이 화려한 장식들로 꾸며져 있다.

사원 2층은 피리웨나에서 공부하고 있는 스님들의 숙소다. 비구 스님들만 거처하는 곳이라 들어가기가 무척 조심스러워 걸음이 망설여진다. 하지만 막상 스님들은 친절한 얼굴로 문을 열어 준다. 햇볕이 잘 드는 널찍한 방엔 소박하고 깨끗한 침상들이 줄을 맞춰 나란히 놓여 있다. 그 옆엔 개인사물을 놓는 책상이 하나씩 있는데 놓여 있는데 사물이라고는 책 몇 권과 필기구, 찻잔 외엔 별로 눈에 띄는 것이 없다. 그야말로 단촐한 살림이다. 스님들이 함께 공양하는 식당에도 식탁과 의자만 줄지어 놓여 있을 뿐 조리 기구나 조리실은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탁발과 보시로 운영되는 사원에 조리실이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사원 안에는 학교 건물도 있다.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녀 학생들이 하얀 교복을 입고 삼삼오오 모여 토론을 하기도 하고 웃으며 이야기하는 모습은 우리의 학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교내에는 도서관, 체육관, 컴퓨터실 등도 고루 갖춰져 있다. 설비는 조금 낙후돼 보이지만 학생들의 표정만은 밝고 진지하다.

사찰 공양간엔 조리실 없어

스님들이 생활하는 공간 한 쪽에 눈길을 끄는 탁자가 하나 놓여있다. 네 귀퉁이에 구멍이 뚫린 이 탁자 위엔 장기알처럼 보이는 색색의 칩들이 놓여 있다. 한 스님이 빙긋 웃으며 이 탁자의 용도를 보여준다. 이 탁자는 두 명이 마주 앉아 칩을 가운데로 모아놓고는 손가락으로 칩을 튕겨 가운데 모아 놓은 칩을 하나씩 구멍에 집어넣는 놀이 기구다. 우리나라에서 바둑알을 이용해 하는 속칭 ‘알까기’ 놀이와 같은 방식이다. 이곳에서는 이 놀이를 ‘세룸’이라고 한다. 손가락으로 칩을 튕겨 목표한 다른 칩을 구멍으로 밀어 넣는 스님들의 솜씨가 능숙하다. 스님들이 즐겨하는 놀이라는데 보기만큼 쉽지 않다.

그런데 이 놀이는 스님들끼리만 할 수 있다. 놀이를 하기 위해서는 두 사람이 탁자 양 옆으로 마주 앉아야 하는데 스리랑카에서는 출가자와 재가자가 한 자리에 나란히 앉지 않기 때문이다.

<사진설명>스님들의 숙소. 공동체 생활을 하는 승가의 살림은 소박하고 단출하다.

출산, 입학, 결혼, 장례 등의 가정사로 인해 재가불자들이 스님을 집으로 초청할 경우라도 스님들이 앉는 의자에는 흰 천을 덮어 ‘스님의자’임을 표시해 놓고 재가불자들은 서있거나 바닥에 앉는다. 재가불자들이 스님의 발아래 고개 숙여 인사를 할 때에도 스님들은 고개를 숙이거나 답례를 하는 대신 “부처의 공덕으로 건강하고 소원을 성취하길, 법의 공덕으로 건강하고 소원을 성취하길, 승가의 공덕으로 건강하고 소원을 성취하길”이라는 팔리어 게송을 암기하며 축원을 해준다.

대승불교가 상좌부 불교를 ‘소승불교’라고 표현하는 의미 속에는 상좌부 불교계가 개인의 깨달음에만 치중할 뿐 대중교화와 중생구제에는 소홀하고 있다는 비판의식과 비하가 포함돼 있다. 하지만 스리랑카 승단은 재가불자들의 교육은 물론 그들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 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재가불자들은 그들의 탄생부터 죽음까지의 모든 중요한 관문을 승가와 함께하고 있다. 과연 ‘대승’을 자랑하는 우리의 불교계는 우리의 생활 속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와 있을까. 스리랑카의 재가불자들이 승가를 향해 표현하는 지극한 공경례는 승가와 재가 사이에 형성돼 있는 이 같은 밀접한 연관성에 기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살아 숨 쉬는 스리랑카 불교의 오늘이 보였다.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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