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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畵僧들]〈6〉금용 일섭 하

기자명 법보신문

20세기 대표작 ‘조계사 대웅전 탱화’ 조성

<사진설명>도림사 응진당 16나한도.(제 1·3·5·7·9존자) 1948년 作.

조선 총독부가 ‘조선사찰령’을 선포하며 우리나라의 사찰을 일본사원인 장충단의 ‘박문사’(博文寺)로 귀속시키려 할 때 불교계는 거세게 항거했다. 회광, 만공, 만해 스님 등은 31본산주지회의를 열어 만해 한용운 스님의 ‘조선불교의 개혁안’을 통과 시키며 새로운 불교운동을 전개했고, 각황사에서 ‘조선불교선교양종승려대회’를 연 후 각황사를 현재의 조계사(당시 태고사)로 옮겨 왔다. 태고사를 창건하며 ‘보천교 십일전’을 이전 개축하며 1938년 10월 총본산 대웅전 준공 봉불식을 거행했다. ‘항일’과 ‘독립’의 정신이 어려 있는 이 조계사는 당시 불교도 뿐 아니라 전 국민의 관심 사안이 아닐 수 없었다. 바로 이 조계사 대웅전에 봉안된 후불탱화〈사진〉가 금용 일섭 스님의 작품이다.

<사진설명>조계사 대웅전 석가모니 후불탱화. 1938년 作.

일반적인 전체 구도 속에서는 십대제자가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듯한 모습이 묘사돼 있어 눈길을 끈다. 무엇보다 본존불이 압도적으로 크게 보이며 강조돼 있는데 이는 절묘한 원근법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하단에서 상단으로, 바깥쪽엣 안쪽으로 갈수록 인물을 작게 그려 가는 이 기법으로 인해 본존불을 더욱 효과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채색에 있어서도 녹색, 적색, 갈색, 청색, 백색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어 여느 탱화와 비교해 보아도 품격이 높음을 직감할 수 있어 20세기 불화의 대표작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관음과 대세지보살, 그리고 가섭아난. 문수보현, 사천왕상을 배치한 ‘선원사 괘불’. 〈사진〉 간략한 구도이면서도 보는이로 하여금 환희심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한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바로 아미타불의 머리에서 솟아나온 광명이다. 높고 뾰족한 형태의 정상계주와 반달 모양의 중앙계주를 표현하며 두 갈래의 광명이 길게 발하고 있는데 이러한 표현은 일섭 스님의 탱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기법이다.

일반적으로 사천왕의 배치는 화면 하단 또는 상하단에 각각 두 명씩 배치하는데 이 괘불에서는 특이하게도 화면 상단 광배 옆에 배치돼 있다. 특히 화면 상단은 하늘빛에 흰구름이 흘러가는 모습으로 표현해 마치 야외에서 설법하는 듯한 장면이다.

금용 스님의 40대 후반 작품 중 눈여겨 볼 것은 ‘도림사 십육나한도’. 〈사진〉

곡성 도림사에 봉안돼 있는 이 16나한도는 5존자씩 그린 두 폭과 3존자씩 그린 두 폭으로 총 4폭으로 구성돼 있다. 화면 곳곳에서 각각의 권속과 함께 귀를 후비거나 용을 부리는 모습, 등을 긁고 있거나 목욕 하는 모습 등 나한의 자유로움을 보여주고 있다. 이 나한의 표현에 대해 인천광역시립박물관 신은미 학예연구사는 ‘화승 김일섭의 불화 연구’논문에서 중국 명대 간행된 판본류서인『삼재도회』(1609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귀를 후비고 있는 제2존자는 삼재도회의 불타난제존자를 범본으로 한 것이며, 왼손에 보주를 들고 시선은 반대쪽을 향하고 앉은 제9존자는 반야다라존자를 범본으로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나머지 4,6,8,10 존자와 11,13존자, 그리고 12,14,16존자의 표현에서도 삼재도회의 영향력이 엿보인다.”

<사진설명>선원사 괘불. 1942년 作.

또한 신은미 연구사는 “3,5,7,9,존자의 모습은 1901년 제작된 대흥사 나한도의 10,12,14,16 존자의 구도와 동일하다”며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대흥사의 불화제작에도 자주 참여했던 일섭 스님이 대흥사의 16나한도를 보고 모티브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금용 스님의 작품 경향을 보면 정형화된 불화도 그렸지만 때로는 여기서 벗어난 다양한 구도도 시도했다. 설법도 계통의 불화에서는 좌우협시보살을 마치 2단 구도처럼 본존의 대좌 아래로 묘사하는 방식도 보이며 ‘조계사 대웅전 후불탱화’, ‘정혜사 삼신불도’처럼 본존불을 강조하는 구도도 즐겼다. 특히 ‘여천 흥국사 삼세불흥탱’의 4단 구조나 제주 관음사의 아미타 극락도처럼 아미타 삼존불을 마치 삼불회도의 한 장면처럼 묘사하는가 하면 하단에 구름으로 단으로 지어 아래 부분에 각각 반야용선을 타고 극락으로 향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등 다양한 주제와 함께 새로운 도상을 속속 선보였다.

하루도 예불을 거른 적이 없었던 일섭 스님은 불사가 없을 때는 김제 부용사에 상주하며 글을 쓰고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부처님 오신 날이나, 동지, 정초 때에는 인근에 사는 신도가 찾아와 공양을 올리고 법문을 청하니 법당과 마당에 빈틈이 없었다고 한다.

금용 스님은 1975년 세납 76세로 부용사에서 입적했다. 일섭 스님의 제자로는 우일, 석정, 인식 등 많은 인물이 있지만 가장 수승했던 스님은 명성 우일 스님이다. 

사진제공 = 성보문화재연구원
채한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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