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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현상’ 아닌 ‘과정’ 인생계획 세우듯 설계해야

기자명 법보신문

제6강 호스피스 의사가 보는 웰다잉
모현 호스피스 완화의료 센터 정극규 진료원장

오늘은 여러분과 함께 의학적으로 죽음을 어떻게 판단하는가와 좋은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또 좋은 죽음을 맞는 과정에서 호스피스는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모두 숨을 쉬고 살아 계십니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여러분 몸속에는 삶과 죽음이 함께 이뤄지고 있습니다. 사람의 최소단위를 생물학적으로는 세포라고 하지요. 이 세포의 단위에서 볼 때 여러분 몸속에서는 새로운 세포가 태어나고 성장하고 활동하고 죽어가는 현상이 끊임없이 병행되고 있습니다. 내 몸속에는 생물학적 단위에서의 삶과 죽음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의학자나 과학자들은 죽음을 어떻게 설명할까요. 의학적 관점에서 죽음은 다음 세대에게 좋은 유전자를 전달하기 위한 과정입니다. 즉 죽음이란 단절된 하나의 현상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말합니다.

몸속엔 세포의 생사가 공존

사전적 의미에서 ‘인간의 죽음’이란 ‘숨과 맥이 불가역적으로 끊어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즉 호흡이 끊어지고 심장이 정지해서 돌이킬 수 없을 때를 죽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죽음이라는 현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것을 단 한 순간의 현상으로 설명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죽음 직전의 현상을 살펴보면 신체의 기능이 떨어져서 호흡이 가빠지고 불규칙해지면서 심장 박동이 천천히 쇠진하는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죽음의 사전기라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발전하면서 임상적인 의미의 죽음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이 과정을 의사가 진찰해서 죽음을 선고합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의사에 의해 임상적인 죽음 선고가 내려진 이후에도 시신에서 땀이 나거나 장기가 움직이거나 온기가 유지되는 등의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의사가 사망을 선고했음에도 간 또는 콩팥 등의 기관단위에서는 아직도 그 기능이 유지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인체의 가장 기본 단위인 세포 단위에서 보자면 세포가 완전히 사망해서 부패하는 시점에 이르러서야 모든 세포가 사망했다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임상적인 죽음이 선고된 후에도 세포단위에서는 생명이 유지되고 일정 단위의 성장이 이뤄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죽음 직전의 단계부터 마지막 세포가 사멸하기까지의 과정에서 과연 어느 시점을 죽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죽음이란 어떤 일시적인 순간의 현상이 아니라 일련의 과정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어떤 연속된 과정의 집합체가 죽음이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처럼 유동적인 과정에서 죽음이라는 개념을 정확히 못 박기는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과거에는 심장과 폐의 기능을 생명의 원천으로 여겨 심장이 멎는 것이 곧 죽음이라는 등식이 사용됐습니다. 그러나 1968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버나드’라는 의사가 뇌사상태에 빠진 청년의 심장을 떼어 죽어가는 다른 환자에게 이식해 성공한 획기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의학계에서는 많은 논란이 일어났습니다. 이전까지는 심장이 뛰고 있는 상태에서는 감히 죽음이라는 진단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의학과 과학의 발전에 힘입어 기계를 이용해 일시적으로나마 호흡을 연장시키는 기술이 개발됐습니다. 호흡을 유지하면 수 시간에서 수일까지 심장 박동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이러한 상태를 살아있는 것으로 판정 내렸었는데 버나드 의사는 과감하게도 바로 이런 상태에서 심장을 떼어내 이식했던 것입니다.

이 수술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고 비난과 비판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때 의료진들의 생각은 ‘심장이란 기관은 단순히 피를, 또는 산소를 몸속에 전달하기 위한 펌프일 뿐이다. 인간이 생각을 하고 인간적인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지시를 하는 기관은 뇌이다. 그러므로 뇌의 기능이 없어진 상태라면 인위적으로 심장을 뛰게 할 수 있더라도 죽은 것으로 간주해야한다’며 가슴을 절개해서 수술에 성공한 것입니다.

현대는 물질만능적인 사회이고 그에 걸맞게 효율성이나 효용성을 중시여깁니다. 만일 뇌사상태에 빠져 아무런 의식 없이 누워만 있는 환자와 심장만 교체한다면 정상적인 사람으로 활동을 할 수 있는 상태의 환자가 있다면 이 두 생명 중 어느 것이 더 중하다고 해야 할까요. 사람마다 가치기준이 다르겠지만 효율성이나 효용성의 기준에서 보자면 전자보다는 후자를 살리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현대인들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심장만 안 뛰면 죽음이라고 생각하던 개념이 자꾸 바뀌어 지금은 심장이 뛰고 있어도 사망했다는 판단을 내리기도 합니다. 사회가 변함에 따라 죽음에 대한 의식이나 인식이 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죽음’ 정의도 시대따라 변화

죽음을 설명할 때는 반드시 과정이 강조되고 논의돼야 합니다. 죽음이란 하나의 과정에서 다른 과정으로의 전이입니다. 그런데 개인마다 이 과정을 맞는 형태가 매우 다르게 나타납니다. 어떤 사람은 순탄하고 자연적인 죽음을 맞는가하면 어떤 사람은 고통과 공포에 질린 채 힘들게 죽음을 맞기도 합니다. 또 이 죽음의 과정에 현대의학을 도입함으로써 그 과정을 약간 변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 변화가 좋은 쪽일 수도 있지만 나쁜 쪽이 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어떤 분들은 의학적인 도움을 받아 편안하게 죽음이라는 과정을 맞지만 어떤 분들은 현대의학의 개입으로 인해 더 힘들게 이 세상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중요한 점은 이런 죽음이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나와 여러분 자신의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남의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하면서도 나의 죽음은 먼 미래의 일이고 이것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죽음은 지극히 자신의 문제입니다. 이것만은 결코 남에게 부탁할 수 없고 미리 경험해볼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각자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는 결국 자신의 몫인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정의나 판단 자체가 과거와는 달라짐에 따라 과연 어느 시점을 죽음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사회적 약속에 따라 죽음이 정의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결국 남아있는 사람들의 편익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스스로 죽음의 시점을 정의해 놓지 않는다면 나의 죽음을 타인이 정의하는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요즘은 유서를 미리 써놓는 것이 많이 보편화 됐지만 외국에서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자신이 의식이 없을 경우 어떤 형태의 치료를 받고 언제까지 생명을 유지하기를 바라는가를 미리 명기해 놓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냉동인간으로 보관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불치의 병으로 사망하기 직전 냉동하여 보관했다가 병에 대한 치료 기술이 개발되면 자신을 해동해서 치료해달라는 것입니다. 이와는 달리 인공적인 장치나 처치에 의지한 생명 연장을 바라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게 해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죽음에 대한 철학이나 정의는 누가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생각하고 주관해야 할 일입니다. 이처럼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죽음을 염두에 둔 삶을 살아간다면 그것이 바로 웰빙이며 웰다잉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좋은 죽음이란 준비된 죽음일 것입니다. 고통이 없는 상태에서 자신이 주체가 되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신의 죽음을 관장할 수 있는 죽음이 가장 좋은 죽음일 것입니다. 또는 마지막 시간을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하는 것도 좋은 죽음의 요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종말기는 정신의 마지막 성장기

호스피스란 죽음을 앞둔 환자들이 남아있는 시간동안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서비스를 말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죽음이라도 죽음에는 고통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죽음이라도 좋은 단어로만 죽음을 표현할 수 없는 것은 고통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호스피스 요원들은 말기환자들이 갖고 있는 이러한 고통의 요인을 찾아내서 제거하는데 주력합니다. 그런데 이 고통이란 암의 크기가 얼마나 커지고 있는가와 같은 기계적인 결과만을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환자가 갖고 있는 마음의 상태가 어떠며 왜 불안해하며 힘들어하고 두려워하는가 등을 알아내는데 더 주력합니다. 말기환자들의 고통은 대부분 죽음에 대한 불안감, 초조함, 우울함 등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이러한 정신적 요인들이 병자체로 인한 고통보다도 더 큰 경우가 많습니다.

호스피스에서는 마지막 종말기를 인생의 마지막 성장기라고 이야기합니다. 육체는 소진해가지만 이 시기에 정신적인 능력은 점점 더 키워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몸이 쇠진함에 따라 마음이 함께 쇠진해져 인생을 마무리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마지막 성장기에 가능한 많이 자신의 성장을 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호스피스 요원들은 환자들과 함께 그동안 자신의 삶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가족들과 얼마나 많이 대화했는지,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남아있는 시간동안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대화합니다. 호스피스란 인생의 남은 시간동안 환자가 자신을 완성시키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 마지막 성장기에 자신의 인생을 잘 완성시킨 사람은 반드시 웰다잉을 체험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정 극 규 원장은

1975년 가톨릭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89년 가톨릭의과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0년 샌디에이고 Gerson’s Institute에서 말기 암환자의 대체의학 과정을 연수하고 강남 성모병원 호스피스 센터 전담의, 안양 메트로 병원 호스피스 완화의학과 과장, 가톨릭 의과대학교 외래교수, 부산 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외래 교수를 거쳐 2006년부터 충남의대 대학원 외래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현재 경기도 포천에 위치한 모현 호스피스 완화의료 센터 진료원장이다.

정리=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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