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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畵僧들]〈10〉 임한 상

기자명 법보신문

조선시대 경상도서 대활약
조선말 ‘임한파’도 태동

숙종→영조 40여년 활동
‘기림사 삼장보살도’ 수화사
천오 스님 문하서 공부하며
본격 화승의 길 들어선 듯

10여년 화업 연마 후
명작 ‘미황사 괘불’에 참여
‘통도사 영산전 영산회상도’
수화사 직 맡아 조성해

<사진설명>미황사 괘불.(1727년) 사진제공=통도사 성보박물관.

임한(任閑) 스님은 조선 숙종 말에서 영조 대에 걸쳐 약 40여 년 동안(1718년~1759년 활동) 경상도를 중심으로 화풍을 드날렸던 스님이다. 전통적인 도상과 함께 당시로서는 새로운 색채와 나름대로의 독특한 구상을 내보이며 후학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던 화승이다.
사실, 임한 스님의 행적은 자료가 없어 출생과 입적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기림사 삼신불회도’(1718년) 화기에 그의 법명이 처음으로 기록되어 있고, ‘통도사 삼신불회도’(1759년)에 그의 이름이 마지막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 임한 스님의 활동 시기는 1718년부터 1759년까지 추정하고 있다.

화기상 수화사 ‘천오’(天悟) 스님에 이어 7번째에 ‘임한’이라는 법명이 올라와 있는 ‘기림사 삼신불회도’와 ‘기림사 삼장보살도’(18세기 초·사진), ‘미황사 괘불’(1727년·사진)은 임한 스님의 초기 화풍을 연구하는데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불화다. ‘기림사 삼신불회도’와 ‘기림사 삼장보살도’ 화기에 천오 스님이 수화사로 되어 있고 ‘임한’의 이름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보아 초기에는 천오 스님 문하에서 상당기간 수업했던 것으로 보인다.

동국대 경주캠퍼스가 소장하고 있는 ‘기림사 삼장보살도’는 많은 부분이 파손돼 아쉬움을 남기고 있지만 지장보살 등의 일부분이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어 당시의 화풍을 엿볼 수 있다. 제작 연대 기록 역시 파손돼 있지만 ‘기림사 삼신불회도’에 참여했던 7명의 화원이 이 불화에 그대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제작 연대는 ‘기림사 삼신불회도’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돼 현재 18세기 초 작품으로 보고 있다.

석정 스님이 “대작이면서도 수작”(『한국의 불화』18편, 191쪽) 이라며 “후배들에게 꼭 보라고 권하고 싶은 불화”라고 평한 ‘기림사 삼장보살도’는 기존의 불화와 달리 등장 인물이 상당히 많은데 배치된 권속들의 자세나 배치가 자유스러우면서도 안정감을 주고 있다. 정희선 한국미술사 연구원은 이 불화에서 임한 스님의 특징들을 잡아내고 있다. 자신의 논문 ‘화승 임한파 불화의 연구’에서 그는 넓게 트인 화면의 구성, 본존을 화면 중심선 위로 표현한 점과 함께 “윤곽선 부분을 밝게 처리하고 안쪽으로 단계적으로 어두운 색조를 사용하여 구름의 입체감을 나타내는 표현법은 임한의 불화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사진설명>기림사 삼장보살도.(18세기 초)

이 불화에서 임한 스님이 어떤 부분을 담당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화사 수업 기간이었던 만큼 이 불화를 조성하며 선배 화승들로부터 많은 공부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에 또 하나 눈여겨 보아야 할 대작이 바로 ‘미황사 괘불’이다.

이 괘불은 조선 영조 3년(1727)에 탁행, 설심, 희심, 임한, 민휘, 취상, 명현 스님 등이 그린 작품이다. 화면 가득히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있는 석가모니부처님 한 분만 그려 넣음으로써 본존불을 크게 강조한 독특한 구성과 함께 또한 녹색과 적색의 밝은 선염(渲染)과 녹두색과 분홍, 황토색이 조화를 이루며 은은하면서도 환상적인 세계를 보여주는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단순하면서도 고품격을 보여주는 우리나라 괘불의 대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화기를 보면 수화사 탁행 스님에 이어 4번째로 임한 스님의 이름이 등장하고 있다. 기림사 불화에서는 7명 중 말석에 그의 이름이 올라 있지만 이 괘불에서는 7명의 스님 중 네 번째에 이름이 명시돼 있다. 따라서 이즈음에는 어느 정도 필력을 인정받은 것으로 보인다.

임한 스님이 수화사로 이름을 올린 첫 작품(현존)은 ‘통도사 영산전 영산회상도’(1734년)다.

본존불은 중앙에서 약간 상단으로 대좌위에 앉아 있고 전후를 삼단으로 나눠 앞에는 사천왕을, 다음에 열 두 보살과 십대제자, 화불을 그려 넣었다. 정희선 연구원은 논문에서 임한 스님의 본존불과 의겸 스님의 본존불을 비교 분석했다. 그는 “본존의 모습은 의겸이 그린 해인사 영산회상도(1729년)와 비슷한 형태를 가지고 있으나 해인사작 보다는 방형의 느낌이 덜하며 조금 더 세장하다”고 밝혔다.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지는 구도와 본존과 권속의 현격한 차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중앙 본존불에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어 이채롭다. 이 시기에 나온 작품은 ‘석남사 영산회상도’(1736년), ‘통도사 극락보전 아미타후불탱화’(1740년) 등이 있다.
 
채한기 기자 penshoot@beopbo.com


자료협조 및 문헌
한국미술사연구소. 성보문화재연구원. 정희선 논문 ‘화승 임한파 불화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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