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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畵僧들] [12] 의겸 상

기자명 법보신문

간결구도-화려한 꽃문양
보물 ‘운흥사’ 괘불 조성해

<사진설명>운흥사 괘불. (1730년 作)

의겸 스님은 ‘운흥사 괘불’(보물 1317호)을 조성한 스님으로서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3대 화승 중 한 명이다.

의겸 스님의 생몰연대와 출생지, 출가 인연 등은 자료가 없어 확실하게 알 수 없다. 다만 학계에서는 의겸 스님이 남긴 작품 중 초기 작과 말기 작을 기초로 생몰연대를 1690년경부터 1760년경 까지로 유추하고 있을 뿐이다. 이 같은 유추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갖고 있다. 화승의 길을 걷는 데는 적어도 세 단계의 기간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中 명대 ‘절파’ 화풍 수용

첫 단계는 출가 후 당대 화승 문하에서 수업을 받는 기간이다. 이 기간 동안에는 당대 명화승의 초를 연마한 후 스승 문하에 들어가 본격적인 수업을 받는다. 개인차는 있지만 보통 7년에서 10년 정도. 두 번째 기간은 스승과 함께 불사에 동참하는 것이다. 스승은 제자의 필력을 인정할 만하면 탱화 작업에 참여하게 하고 화기에 제자의 이름을 올려 준다. 조선 후기 대표 화승 대부분은 이 때가 20대 중반이다. 스승은 물론 다른 문하에서 참여한 화승들과 함께 불사를 조성하며 화풍을 체득해 간 후 세 번째 단계인 ‘금어’의 단계에 올라 독자적인 화풍을 펼치는데 이 때가 30대 중반. 이 같은 과정을 보면 10대에 출가해 20대 때 화기에 이름을 올리고 30대에 도편수, 혹은 금어의 명칭을 받는다는 도식이 나온다.

의겸 스님의 화적 중 가장 이른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은 ‘보림사 팔상전 후불탱화’이지만 실물은 전해져 오지 않고 있다. 1719년에 이르러서야 의겸 스님은 고성 운흥사 영산전 불화조성에 참여했는데 이 때 ‘운흥사 영산전 영산회상도’에는 ‘편수’로 이름이 올라 있고 ‘팔상도’에 수석화사로 기록돼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을 기준으로 보면 30대(수화사, 금어)가 1720년 경이고, 20대(수업기간)가 1710년경이다. 그렇다면 그의 출생 시기는 1690년경이라는 유추가 가능한 것이다. ‘운흥사 팔상도’보다 훨씬 더 이른 새로운 작품이 발견되면 출생연대는 더 당겨질 수 있다.

의겸 스님의 초기작으로 추정되고 있는 ‘운흥사 영산전 팔상도’는 18세기 이전의 팔상도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현 시점에서 중요한 자료 가치가 있는 불화다. 또한 의겸 스님 작품 중 초기작임에도 산수화적 요소가 가장 많이 표현된 팔상도다.

청곡-안국-개암사 괘불도

<사진설명>선암사 괘불. (1753년 作)

안귀숙 씨는 논문 ‘조선후기 불화승의 계보와 의겸비구에 관한 연구’에서 “주된 장면은 조선초기에 간행된 석보상절이나 이를 다시 모판한 월인석보의 목판화팔상도를 근간으로 삼았으나 그 외의 부수적인 장면들은 명대 불전벽화(佛傳壁畵)에 보이는 도상들과 유사한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며 “바위나 암산, 수목 표현에서는 조선중기회화의 큰 특징인 절파(浙派) 화풍적 경향과 명대 판각류에서 연원된 듯한 부분도 다소 엿보이므로 수묵화풍에 있어 보수적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새로운 경향에도 능동적이었던 의겸의 수용태도를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절파’(浙派)는 중국 명대(明代)의 한 화파로서 비대칭적 구도, 심한 흑백 대조, 활달하고 자유분방한 필묵법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안귀숙 씨는 이 ‘운흥사 팔상도’가 하나의 모본이 되어 후작 팔상도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의겸파가 제작한 팔상도를 비롯해 ‘쌍계사 팔상도’〈사진〉, ‘호암소장 팔상도’, ‘보경사 팔상도’등은 설채법과 수묵표현만 다를 뿐 모든 장면들이 똑같이 그려졌다는 주장이다.

황토색 바탕에 하늘색과 홍색이 주로 사용되었고 청색, 담연색이 보조색으로 쓰이고 있는데 세심한 선에 따른 묘사와 수묵담채 기법을 사용해 생동감 있는 화면을 보여주고 있다.
의겸 스님이 처음으로 조성한 괘불은 ‘청곡사 괘불.’ 대작이면서도 안정감 있는 구도를 보여 주고 있지만 색칠은 다소 산만한 느낌을 준다. 안국사 괘불은 간결하면서도 화려한 장식을 동시에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러한 경향은 다음 작품인 ‘운흥사 괘불’, ‘개암사 괘불’에도 나타나는데 우리나라 대표 괘불 중 하나인 ‘선암사 괘불’(致閑 作·사진)에서도 나타나 흥미를 더해주고 있다.

<사진설명>쌍계사 팔상도. (1728년 作)

의겸 스님이 그린 괘불 중 가장 높게 평가 받는 작품이 ‘운흥사 괘불’〈사진〉이다. 안귀숙 씨는 “의겸 스님의 네 개의 괘불 중 가장 짜임새 있는 구성과 격조 높은 작품으로 18세기 전반의 괘불을 대표할만한 걸작”이라고 보고 있다. 화면구도와 삼존의 배치방법은 ‘청곡사 괘불’을 따랐으나 제존의 구성, 주존의 법의와 광배 장식성은 안국사 괘불을 따랐다. 특히 문수 보현보살의 화려한 보관이 눈에 띄는데 꽃문양이 빈틈없이 새겨진 천의(天衣)를 걸치고 있어 강한 장식성을 보여주며 전체적으로 안정감 있는 구도 속에 생동감을 자아내고 있다. 색조에 있어서도 홍색을 주조색으로 사용하면서도 보조색을 적절히 조화시켜 온화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의겸 스님은 노년에 ‘개암사 괘불’을 조성했는데 이 ‘운흥사 괘불’에서 보여준 도상과 내용을 그대로 사용했다. 

채한기 기자 penshoot@beopbo.com

자료협조 및 문헌
한국미술사연구소. 성보문화재연구원. 안귀숙 논문 '조선후기 불화승의 계보와 의겸비구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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