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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물 끓이기

기자명 법보신문

수돗물, 뚜껑열고 끓이다 뚜껑 닫고 1분 더

흰 눈이 사방(四方)에 가득하다. 아! 간밤에 눈이 내렸구나. 소쇄(瀟灑)해진 하늘, 까치 한 마리가 연신 꼬리를 흔들며 울고 있다. 행여 반가운 소식이라도 오려나. 문득 유종원(柳宗元:773~819)의 ‘강설(江雪)’이 떠올랐다.

온 산에는 새조차 날지 않고,
모든 길엔 인적(人跡)마저 끊어졌다.
외로운 배 위에 도롱이 쓴 노인이
홀로 낚시질 하고
언 강엔 소리 없이 눈이 내린다.
(千山鳥飛絶, 萬逕人跡滅 孤舟    笠翁 獨釣寒江雪)

눈 내리는 강가의 풍경을 이처럼 맛깔나게 표현할 이, 많은 것은 아니다. 눈이 내릴 때의 고요한 정적(靜寂)을 선미(禪味)로 승화(昇華)한 것이다. 차를 마시는 정취(情趣), 이런 날이 제 격이다. 얼마 전 길어다 논 석간수(石間水)가 생각나 찻물을 끓였다. 조급해지는 마음을 달랠 양으로 끓는 물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주전자 안은 폭풍 전야처럼 고요하다. 얼마 후 잠잠했던 물이 조심씩 변화되기 시작한다. 잠시 후 유리 주전자 속에 실 같은 가는 선들이 원을 그리며 생겨났다. 미세한 변화라서 보일 듯 말 듯, 열의 변화에 따라 조금씩 물이 출렁인다. 이어 작은 기포가 일더니 좁쌀 같은 방울이 한 줄기 위로 올라오더니 마치 물고기 눈망울 같은 물방울이 여기저기서 불쑥 불쑥 일어난다. 물이 끓는 소리가 속삭이듯 들리더니 연이어 주전자 가장 자리로 샘물이 솟아오르듯 끓기 시작하더니 줄줄이 구슬 같은 물방울이 솟구쳐 올라, 그 수를 셀 수가 없다. 물결이 솟구친다. 파도가 일 듯 물이 끓으며 내는 소리가 포효(咆哮)하는 짐승 소리를 닮았다. 사납게 솟구치며 내는 소리는 위엄을 갖춘 장수(將帥)가 병사를 호령하듯 우렁차고 당당하다.

물을 끓일 때, 물이 생수인가 아니면 수돗물을 사용하는가에 따라 끓이는 법이 다르다. 만약 갓 길어 온 샘물이라면 소리가 경쾌해진 후 30초 정도를 끓인 후 찻물로 사용한다. 또한 수돗물을 사용할 경우, 물이 끓기 시작하면 주전자의 뚜껑을 열어 놓고 끓이다가 격랑이 일고 소리가 기세등등해지면 뚜껑을 닫고 1분여 남짓 더 끓인다. 이 때 뚜껑을 열고 끓이는 것은 수돗물에서 나는 냄새를 날려 보내기 위함이요. 생수 보다 끓이는 시간을 더 두는 것은 무거워진 물을 순숙(純熟)하기 위함이다. 경우에 따라서 생수라 할지라도 물의 경중(輕重)에 따라 끓이는 시간이 달라진다.

이것은 물을 끓일 때 생겨나는 생기(生氣)의 다양한 변화 때문이다. 차를 정중(正中)하게 다룰 수 있을 때 비로소 감지(感知)할 수 있다. 한편 차를 다룰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활활(活活)한 차의 기(氣)를 어떻게 들어낼 것인가 하는 점이다.

바로 채다(採茶) 시기의 중요성이나 제다(製茶)의 궁극적인 원리도 기(氣)를 어떻게 살려 내는가하는 점이다. 차를 다루는 가장 중요한 핵심은 바로 이 기(氣)에 대한 문제이었다. 옛 사람들의 문헌에서 다구를 정갈히 다루는 이유이나 품천(品泉)에 대한 논의(論議)도 결국 차의 기운을 잘 들어내기 위한 것이요. 탕변(湯辨)에 대한 수많은 언급도 차의 내밀(內密)한 기운을 꺼낼 수 있는 조건을 구비(具備)하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차를 선 수행에 적극 응용(應用)했던 선사(禪師)들은 차의 활활(活活)한 기운을 수행에 이용(利用)했던 것이다.

동아시아 차 문화 연구소 소장 dongasiach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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