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 선 교계 신문들
벼랑 끝에 선 교계 신문들
  • 법보신문
  • 승인 2007.02.05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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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인재 발굴서부터
교계 흐름 이끄는 ‘멍석’
구조조정에 내몰리는 기자들
신문 살리는 건 불자들 몫

올 겨울 불교계 신문들이 크게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현장을 뛰던 기자들이 회사의 사정으로 우르르 회사 바깥으로 내쳐지고 있습니다. 신문사의 살림살이가 어렵기 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하긴 중앙 일간지들도 하나 같이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영세한 교계 신문사들이야 그 사정이 오죽 어렵겠습니까.

돌연 해직되거나 타의에 의해 회사를 떠나게 된 기자들 중에는 불교 언론계에서 20여 년을 일한 베테랑들도 아직 초년생 티를 벗지 못한 젊은 기자들도 있습니다. 경륜 있는 인재와 막 부처님 품안에서 꿈을 펼치던 패기 넘치던 젊은 언론인들이 절집을 떠나는 일이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그나마 인재가 턱없이 부족한 불교계에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경영합리화를 위한 구조조정이나 경영난에 따른 사주의 결단이 기자를 길바닥으로 내모는 주된 이유이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주된 원인은 독자가 늘지 않고 광고시장의 사이즈가 커지지 않는 불교계 전반의 어려운 사정들입니다. 월 5천원 하는 신문 구독료는 생산 원가수준에 머물러 있고, 광고단가의 수준도 10여 년 전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그나마 대 광고주라고 할 수 있는 주요종단과 주요사찰들은 소속 종단의 기관지에 광고를 몰아주고 있는 형편이니, 뜻있는 사찰이나 단체가 원력을 내 발간하는 신문들은 버텨내기가 여간 어렵지가 않습니다. 특히 우리 법보신문과 같이 특정한 종단이나 사찰에 소속되지 않은 독립된 언론은 생존하기가 더더욱 어려운 환경입니다.

어렵사리 근근하게 버텨오던 교계 신문들이 최근 삭풍에 떠는 낙엽처럼 흔들리는 것은 어쩌면 예견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자들 수가 천만, 이천만을 헤아려도 불교계 신문을 구독하는 불자의 수는 수만에 지나지 않습니다. 5백만이 채 안 되는 가톨릭에서 발행하는 신문이 10만을 훨씬 넘는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입니다.

인정하지 않는 분도 있겠지만, 불교 언론 시장은 여전히 신문에 의해 주도되고 있습니다. 방송매체의 역할이 커졌지만 아직은 신문을 통해 교계 소식이 주로 전달되고 확산됩니다. 새로운 필자가 발굴되고 성장하며, 출판, 문화, 학술 등의 인재들의 활동을 고무하고 격려하며, 확산시키는 일도 주로 신문을 통해 이뤄지고 있습니다. 신행과 수행의 흐름이나 변화를 인지시키고 확산시키는 일, 교계 유통시장의 형성 또한 신문이 주로 맡고 있는 역할입니다. 한 마디로 신문은 교계가 살아 움직이고 돌아가는 멍석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작금 이런 멍석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거나 잘려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멍석을 늘려나가도 시원찮을 판에 그나마 있던 멍석조차 사라지면 불교계가 입는 피해는 생각 이상으로 클 수밖에 없습니다.

신문은 공기입니다. 신문사는 오직 이익을 따지는 기업과는 달리 공익을 중시하는 곳입니다. 불교계가 신문을 발전시키고, 지켜주셔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물론 신문을 살리고 발전시키는 일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어려운 일만도 아닙니다. 신문을 구독해주시면 되는 일입니다. 법보신문을, 또 다른 불교계 신문을 한 부씩 구독해주시는 일이 불교 언론을 육성하는 첩경입니다. 신문을 꼭 구독해주시고 이웃에게도 권해주시기 바랍니다. 올겨울 삭풍이 유난히 차갑습니다.
 
〈대표이사〉 urubell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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