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 단상(立春斷想)
입춘 단상(立春斷想)
  • 법보신문
  • 승인 2007.02.12 10: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입춘은 ‘재수 비는 날’보다
선행으로 공덕 짓는 날
입춘·초하루도 뜻 깊지만
썰렁한 성도절 이젠 바꿔야

입춘이었던 지난 2월 4일, 전국의 절은 인파로 가득 찼습니다. 입춘을 좋은날로 삼아 기리는 곳이 불교계가 거의 유일한 데서 온 현상인 듯싶습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절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부처님과 스님을 한번이라도 더 친견하고 청법(聽法)의 기회가 늘어나는 것이니까요.

이렇듯, 1700년 역사를 가진 한국불교가 우리 민족의 삶 속에 깃들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불교는 민족종교를 자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디 입춘뿐이겠습니까. 설, 대보름, 칠석, 백중, 추석, 동지 등 명절이나 절기에 절에 인파가 운집하는 일은 우리 절집에선 그리 생경한 일이 아닙니다.

그렇더라도, 입춘과 불교는 어떤 인연을 갖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적지 않은 불자들의 입춘에 대한 인식은 ‘절에 가서 불공을 올리고 ‘입춘대길 만사여의형통’ 등의 글귀가 쓰인 입춘방(재수부적)을 받아오는 날’ 정도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입춘의 사전적 정의는 대한(大寒)과 우수(雨水) 사이에 있는 첫 번째 절기로 해가 황도(黃道) 315도에 위치할 때입니다. 음력으로는 섣달(12월)이나 정월에 드는데, 윤년에는 섣달과 정월에 두 번 드는 경우(복입춘(複立春) 또는 재봉춘(再逢春))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입춘 전날 밤에 이웃을 위해 좋은 일을 해야 일 년 내내 액(厄)을 면한다는 적선공덕행(積善功德行)의 풍속이 있었습니다. 예컨대 밤중에 몰래 징검다리를 놓는다든지, 길을 곱게 다듬어 놓는다든지, 거지들의 움막 앞에 밥 한 솥 지어 갖다 놓는다든지 등의 미풍양속이지요. 상여가 나갈 때 부르는 상엿소리에도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입춘날 절기 좋은 철에/ 헐벗은 이 옷을 주어 구난공덕(救難功德)하였는가/ 깊은 물에 다리 놓아 월천공덕(越川功德)하였는가/ 병든 사람 약을 주어 활인공덕(活人功德)하였는가/ 부처님께 공양드려 염불공덕(念佛功德)하였는가.”

선조들은 죽어서까지도 염라대왕으로부터 입춘 적선공덕행(積善功德行)을 심판 받는다는 생각을 냈던 것입니다. 입춘은 본디 재수를 비는 날이란 의미보다는 선행으로 공덕을 짓는 날이란 의미를 더 크게 가지고 있습니다.

입춘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것과 아울러 한 가지 꼭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불자들의 신행풍속이 제발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올 부처님 성도절(음력 12월 8일)에 상당수의 절들이 썰렁했습니다. 붐빈 절이 아주 없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입춘과 비교해볼 때 정도가 심했지요. 성도절이 음력 초하루법회(1월 19일)와 입춘(2월 4일) 사이에 끼여 있다 보니 찬밥 신세가 된 것입니다.

성도절이 어떤 날입니까.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이뤄 부처님이 되신 날 아니겠습니까. 불교의 으뜸 명절이라고 할 수 있는 성도절이 어찌된 영문인지 이 땅에선 초하루, 입춘보다도 못한 날이 되었으니 이를 어떻게 봐야 하겠습니까. 교육의 문제인지, 관행의 문제인지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교육수준도 높아졌고, 이젠 바뀔 때도 된 것 같은데 영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입춘을 ‘공덕을 짓는 날’로, 또 초하루·입춘보다 부처님성도절을 더 소중한 날로 인식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몇 글자 적어보았습니다.
 
〈대표이사〉 urubella@beopbo.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