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불가 보급 20년 이 종 만 작곡가
찬불가 보급 20년 이 종 만 작곡가
  • 법보신문
  • 승인 2007.02.14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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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생의 도량은 땀-눈물 쏟아부은 오선지”

“오늘은 좋은 날~ 부처님 오신날~.”

동장군의 기세가 온데간데없는 철없는 2월의 중순,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는 5월 부처님오신날에나 들을 법한 노랫가락이 인사동 빌딩 숲 사이를 타고 잔잔히 울려 퍼졌다. 흥겨운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찾아간 곳은 서울 관훈동 대형빌딩 2층에 위치한 ‘좋은벗 풍경소리’. 문을 열고 들어서자 3평 남짓한 이곳은 벌써 올 연등축제의 복판에 서 있는 듯 착각을 들게 한다. 허름한 사무실의 주인인 작곡가 이종만(49·향천) 거사는 흥겨운 봉축 노랫가락에 고개를 끄덕이고 음을 따라 발장단을 맞추느라 낯선 발길조차 눈치 채지못한다. ‘이·종·만’이란 이름 석 자는 어린이법회나 봉축 문화마당에 대해 작은 관심이라도 기울인 불자들에겐 낯이 익다. ‘돼지임금’, ‘공명조이야기’, ‘스님생각’ 등 어린이 불자들이 가장 즐겨 부르는 찬불동요를 비롯해 불자라면 누구다 한 번 쯤은 따라 불렀을 법한 ‘길을 떠나자’, ‘오늘은 좋은날’ 등이 그가 작곡한 곡들이다.

조계사 어린이 합주단 지도로 인연

천생 불자일 것 같은 그가 불교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여 년 전 천진불들을 지도하면서부터. 찬불가와의 인연도 이때 시작됐다. 80년대 초반, 이 거사는 포크뮤지션을 꿈꾸며 무명밴드에서 기타를 연주하던 소위 ‘딴따라’였다. 그는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는 인정받을 것이란 기대감으로 한 눈 팔지 않고 오로지 음악에만 매달렸다. 그러던 어느 날, 조계사의 어린이법회를 지도하고 있는 친한 친구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부처님오신날 여의도에서 조계사까지 제등행렬을 하는데 이날 있을 어린이 합주단의 공연 지도를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연습기간은 한 달 남짓, 어렵사리 청해온 친구의 부탁을 단박에 거절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필연같이 찾아 온 조계사 어린이 합주단 교사 생활은 너무나 행복했다. 천진불 같은 어린이 불자들이 ‘선생님’이라며 재잘거리는 소리도 좋았을 뿐만 아니라 스님을 비롯한 주변의 관심은 어렸을 적 골목대장이 된 것처럼 뿌듯했고 마음은 희열감으로 벅찼다. 한 달의 시간은 정말 한 순간처럼 지나갔고, 행사당일 조계사 어린이 합주단은 가장 많은 박수를 받을 만큼 빼어난 음성공양을 선보였다. 대성공이었다. 조계사에서는 당연히 어린이들을 계속 지도해달라는 제안을 건네 왔다. 그러나 그는 재고의 여지도 없이 단박에 거절했다. ‘뮤지션’으로 성공할 것이라는 청운의 꿈이 여전했기에, 마음은 아팠지만 뮤지션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천진불들을 성심껏 가르친 공덕이었을까. 이 거사는 얼마지 않아 그토록 바라던 그의 첫 앨범을 발표하게 된다. 게다가 ‘장돌뱅이’와 ‘음악이 生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등의 노래가 제법 인기를 끌면서 가수 이종만과 그의 노래를 알아주는 사람도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대중의 인기는 거품과 같은 것. 영원할 것 같았던 그의 인기는 차츰 멀어져 갔고 2집, 3집이 연이어 실패하자 그는 육체뿐 아니라 정신마저 급속히 황폐해졌다. 그로써는 당시 삶에 대한 미련마저 놓아버리고 싶을 만큼 암담했다.

그 즈음 조계사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어린이 수련회를 개최하는데 함께 가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어린 제자들에 대한 미안함으로 그는 그 길을 따라나섰다. 날이 저물고 모닥불이 피어오르자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손에 손을 맞잡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로 노래를 목청껏 부르기 시작했다. 익숙한 멜로디의 찬불가였다.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자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모두가 그가 작곡한 곡들이었다. 아이들의 노랫소리에 한동안 넋을 놓고 있자 한 교사가 “선생님이 만든 노래를 아이들이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과거에 매달려 오만과 독선, 무지한 아상 덩어리로 변해버린 내게 아이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일러준 거예요. 나와 내 노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제겐 한줄기 희망의 빛이었죠.”

경제적 압박에 원력마저 흔들

1995년 이 거사는 ‘어린이의 아름답고 순수한 마음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은 찬불동요를 만들겠다’는 굳은 서원을 세우고 조계사 인근에 사무실을 마련했다. ‘좋은 벗 풍경소리’는 정유탁 씨 등 몇몇 젊은 불자들과 함께 그렇게 출발했다. 이듬해 사비를 쏟아 부어 어렵사리 제작비용을 마련, 16곡을 선정해 교계 최초의 찬불동요 음반 ‘풍경소리 1집’을 발매했다. 교계 최초이기에 음반 판매로 경제적 어려움을 다소나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잠시 품었다. 그러나 기대는 말 그대로 기대에 불과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찬불동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미미했고, 설사 관심이 있더라도 당연히 보시쯤으로 여기기 일쑤였다. 경제적 고통은 가중됐고, 이를 해결할 대책도 떠오르지 않았다. 경제적 압박은 그의 원력마저 흔들고 있었다. 무엇보다 참기 힘든 것은 그와 그의 도반들의 순수한 마음을 의심하고 장사치 정도로만 치부하며 외면하는 교계 정서였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만은 없었다. 배낭에 풍경소리 음반을 가득 채우고 어린이지도자연합회 연수회가 열리고 있는 단양 구인사로 향했다. 부끄러웠다. 구인사 앞마당에 좌판을 깔기는 했지만 예전 화려했던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목소리는 기어들어만 갔다.

“누군가 저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하더군요. 잠시 우쭐했습니다. 과거의 나 이종만을 알아보는 것이라 생각했죠. 그런데 그분은 ‘풍경소리’에만 관심을 갖는 거예요. 그분에게 저는 한때 잘나가던 가수 이종만이 아니라 이미 찬불가 작곡가 이종만이였던 거죠.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모든 것을 잊고 찬불동요를 위해 새롭게 출발했다고 생각했는데 제 밑바닥에는 여전히 아상이 남아있었던 거예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어린이들을 위한 찬불동요 작곡에만 온종일 매달렸다. 음반 제작에 필요한 비용은 사무실을 줄여가며, 그렇게 마련한 돈으로 10집까지 어렵사리 명맥을 유지해 갔다. 풍경소리 10집이 나오기까지는 5년간 이사를 10번이나 해야 했다.

하지만 더 이상은 그로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2000년 그는 10집을 끝으로 풍경소리의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 유일하게 남아 그의 곁을 지키던 정유탁 씨와 사무실 정리에 대한 의견을 나눌 때였다. 청도 운문사에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팩스를 보냈으니 읽어보라”는 말만 남긴 채 스님은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인연의 싹은 하늘이 준비하지만 그 싹을 잘 지켜 튼튼하게 뿌리내리게 하는 것은 순전히 사람의 몫입니다.”

찬불가와 맺은 인연을 끊어서는 안 된다는 장문의 편지와 함께 후원금 500만원을 송금했다는 내용이었다. 운문사 한 스님이 어린이지도자 연수회에 참석해 풍경소리가 재정난으로 문을 닫는다는 소리를 접하고 대중공사에 붙인 것이었다.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몇날 며칠을 숙고해 눈물을 머금고 결정한 일인데 하필이면, 그것도 사무실 정리 문제를 논의하는데 후원금이라니. 이미 입금돼버린 후원금을 놓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또다시 고민해야 했다. 장고의 고민 끝에 도달한 결론은 아직은 인연을 놓을 때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조계사를 찾았다. 그리고 잠시나마 부처님과 한 약속을 저버리려 했던 마음을 참회하며 속죄의 마음으로 3000배를 올렸다.

3천배 정진으로 초심 다잡아

이 거사의 참회가 부처님께 전달된 것일까. 며칠 후 지현 스님과 덕신 스님이 풍경소리를 위해 앞장서겠다고 나섰다. 또 성행, 초격, 성전, 각만, 자용 스님 등 어린이포교에 매진해온 스님들도 풍경소리의 후원과 소임을 자청해 왔다. 폐쇄 위기에 내몰렸던 교계 유일의 찬불동요 보급 단체는 그렇게 다시 태어난 것이다.

이종만 거사는 매 분기 봉화 청량사를 찾아 3000배를 올린다. 신나고 재밌는 찬불동요를 통해 어린이 포교에 앞장서겠다는 서원을 흔들림 없이 굳건히 뿌리내리기 위해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순수한 마음을 지닌 사람은 어린이들입니다. 부처님의 마음에 가장 가까운 사람도 어린이들입니다. 아름다고 순수한 어린이 마음과 부처님 마음을 노래에 담아 맑고 향기로운 불국토를 만드는데 작은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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