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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칼을 들고 덤빈 가리왕

기자명 법보신문

칼부림하는 적도 ‘나와 같다’ 생각
나-너 구분 떠남이 인욕행의 목표

“…수보리야, 인욕바라밀을 여래는 인욕바라밀이 아니라고 하노니, 무슨 까닭이겠는가. 수보리야, 내가 옛날에 가리왕에게 몸을 갈기갈기 찢길 적에 아상도 없고 인상도 없고 수자상도 없었느니라. 그 까닭이 무엇인가. 내가 옛날에 몸을 찢길 적에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있었더라면 성을 내어 원망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니라.…”

불자라면 누구나 한두 번 즈음은 읽어 보았을 『금강경』의 제14장 이상적멸분 가운데 한 대목이다. 나와 너라는 집착을 포함해 모든 상을 떠나야만 적멸에 들 수 있음을 설하신 부처님께서 수행자였던 전생에 겪었던 일을 말씀하시고 있다.

부처님께서 비유하고 계신 전생담의 내용은 이렇다. 부처님께서 전생에 수행자로서 나무 아래서 좌선 수행 중이셨는데 마침 그곳에 가리왕이 궁녀들과 함께 소풍을 나왔다. 왕은 궁녀들과 함께 한참을 놀다가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서 보니 함께 있던 궁녀들이 모두 좌선 중인 수행자 주위로 몰려가서 존경의 눈으로 수행자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었다. 이에 격분한 가리왕은 칼을 빼어들고는 수행자에게 가서 “너는 무슨 수행을 하고 있느냐”고 묻고 “인욕행자”라는 수행자의 대답에 그를 비웃으며 “네가 인욕행자라며 너의 팔다리를 잘라도 참을 수 있겠냐”고 협박했다. 이에 수행자는 가리왕에게 팔다리가 잘리는 위해를 당하면서도 원망이나 분노의 마음을 내지 않았다.

인욕이란 나에게 위해나 모욕을 가하는 상대에 대해 원망이나 분노의 마음을 내지 않는 것이다. 중생에게 그것은 극심한 인내와 고통의 과정이 될 수도 있으며 왜 인욕수행을 해야 하는가에 관한 의문 또한 당연히 생겨날 것이다. 이 대목은 바로 “왜 나에게 위해를 가하는 대상에 대해 분노하거나 원망하는 마음을 내지 말아야 하는가”라는 중생의 의문에 대한 부처님의 설명이기도 하다. 부처님께서는 적멸에 들기 위해서는 ‘내가 박해를 받고 있다’라는 아상도, ‘위해를 가하는 상대는 원망과 분노의 대상’이라는 인상도 가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하고 계신다.

박해를 받는 나와 박해를 가하는 상대라는 인식을 갖는다는 것은 이미 아상에 대한 집착이 있음을 의미한다. 나와 내 밖의 적에 대한 구분, 나라는 집착과 너라는 집착을 갖고서는 절대 깨달음의 경지에 들 수 없다는 것이다. 박해를 받는 나, 위해를 가하는 적이라는 생각조차 버리고 적이 나와는 다른 이라는 생각조차 버리게 된다면 원망과 분노는 그 대상을 잃어버리게 되므로 애초에 생겨날 수조차 없게 된다. 즉 참아야 할 그 무엇도 없는 상태가 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여래는 인욕바라밀을 인욕바라밀이 아니라고’ 하는 이유 역시 이러한 까닭인 것이다. 나와 상대에 대한 구분이 없어진 상태에서 인욕해야 할 내 밖의 적이 어디에 있겠는가.

물론 이것은 아직 인내 수준의 인욕 수행을 위해 노력해야할 우리들에게 너무 먼 이야기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와 너라는 구분, “저 사람은 나에게 해를 끼치는 ‘나쁜 사람’이다”라는 원망과 분노의 시각을 버리기 위한 노력만큼은 인욕행자의 마땅한 수행 덕목이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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