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마음으로 불교 가르치니 학생들 얼굴엔 관음의 미소가…”
“청소년 마음으로 불교 가르치니 학생들 얼굴엔 관음의 미소가…”
  • 법보신문
  • 승인 2007.03.05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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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부여고 이 학 주 교법사

2월 27일, 신학기를 꼭 3일 앞둔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여자고등학교 교학실은 2007학년도 수업준비로 분주하기만 하다. 시청각 기자재며 경전 등이 수북이 쌓여있는 교학실의 풍경은 부산하기 그지없어 봄날의 노란 개나리꽃을 보듯 생기 넘친다. 올해 새로 입학할 신입생은 모두 530여명, 불교 종립학교임에도 신입생 중에는 불자들보다 오히려 무종교인, 이웃 종교인들이 많기 때문에 학생들이 교학 수업에 거부감을 갖지 않고, 불교에 관심을 갖도록 하기위한 교학실의 아이디어 회의는 열기가 넘친다. 자유분방한 요즈음의 청소년으로 돌아가려는 교법사들의 피나는 노력 가운데에는 올해로 12년째 동대부여고에서 청소년 포교를 위해 진력해 온 이학주(44·계진) 교법사가 있다.

이 법사의 희망은 더 많은 학생들이 자연스레 법당을 찾고, 부처님을 만나게 하는 것. 그의 입에서, 의식에서 떠나지 않는 이러한 희망은 자신이 종립학교에서 처음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했고 불자로서의 신해행증(信解行證)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월운 스님 인연으로 불교에 입문

1977년 3월, 광동중학교에 입학한 청소년 이학주는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선생님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불교 수업’이라고는 하지만 스님이 선생님일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선생님은 내 집 앞마당처럼 드나들던 봉선사 주지 월운 스님이었다. 언제나 인자한 모습으로 격의 없이 어린 이학주를 대해주시던 바로 그 월운 스님이었지만 항상 어려운 한문과 경전으로 훈계하시던 모습을 생각하니 은근히 불교 시간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에~ 염화미소(拈華微笑)라는 말이 있어요.”

자신의 걱정이 단지 기우만이 아니었음이 현실로 드러났다. 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세 자매가 있었어요. 이제 막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둘째가 결혼한 지 오래 된 첫째와 아직 미혼인 셋째에게 신혼여행 중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어요. 둘째는 부끄러워 차마 말을 다하지 못했지요. 그러자 셋째는 도대체 알 수가 없다며 연신 질문을 하는데 첫째는 빙그레 웃음을 짓는 거예요. 첫째와 둘째 사이에는 말을 하지 않아도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통하는 것이 있었던 거예요. 이것이 바로 염화미소입니다. 이제 스님과 여러분은 사제지간이 됐으니 이런 관계가 돼야겠지요?”

월운 스님의 수업은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까까머리 중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오감을 파고들었다. 불교는 그저 부처님께 엎드려 절한 후 소원을 비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학주는 월운 스님의 수업을 들으며 불교를 조금씩 알아 나갔다. 부처님의 생애, 육바라밀, 사성제, 팔정도 등에 관한 월운 스님의 비유 설법을 경청하면서 사탕과 학용품을 쫓아 사찰과 교회를 순례하던 지극히 평범한 다종교인(?) 이학주는 불법을 따르며 불자로 거듭나고 있었다.

광동중학교 졸업 후 광동고로 진학한 이학주는 봉선사 학생회 활동에 심취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 개운사 학생회에서 원주 불심사 학생회 등과 함께 청소년연합불교동아리를 조직해 함께 활동하자는 연락이 왔다. 이제 막 청소년 포교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고 관심을 갖기 시작할 때였던 터라 이학주는 기뻤다.

“청소년연합불교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불교에 일생을 걸어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당시 동아리 지도를 맡아주신 분은 대한불교청소년연합회를 창립한 故 안병호 법사님이었습니다. 안 법사님은 저를 불법의 세계에 푹 빠져들게 만들어 버렸죠. 안 법사님은 당시 안양에 수심원이라는 작은 법당을 운영하고 계셨는데, 방학 때면 일정기간 수심원에 머물며 예불, 기도, 절, 사경, 참선 등 신행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지도해 주셨습니다. 결국 고등학교 시절 신심을 쌓고, 수행을 기본을 익힌 셈이죠.”

이학주는 신행활동에 있어 누구보다 열정적이었으면서도 학교생활에도 열과 성을 다했다. 고등학교 재학 기간 내내 줄곧 1등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성적이 우수했기에 학교와 집안의 기대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미 부처님의 가르침 푹 빠진 그에게 우리나라 최고 대학으로의 진학은 관심 밖의 일이었다. 결국 그는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에 진학했다.

“학교는 물론 집안이 발칵 뒤집혔어요. 특히 집안에서는 장손이 출가를 하려고 한다고 난리가 났어요. 불교를 학문으로서 배우고 연구하는 것이라고 설명을 드려도 개운학사에서 생활하는 동안 출가에 대한 의심을 풀지 않더라고요. 결국 군승으로 군대에 입대한 후에야 부모님들은 겨우 한시름 놓는 듯 했어요.”

정식 법사로서 포교 일선에 나선 이학주 법사의 포부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월운 스님의 지도로 불교에 입문해 고등학교 시절부터 꿈꿔온 일이 드디어 실현됐기 때문이다. 몸이 고될수록 더 많은 불제자가 배출된다는 희망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포교와 전법에 전념했다. 낮에는 가정법회를 봉행하고, 밤에는 초소를 찾아 장병들에게 불법을 전했다. 매주 일요일에는 소속 부대뿐만 아니라 법사를 구하지 못해 법회를 보지 못하는 이웃 부대들을 순회하며 법석을 마련했다. 이 법사의 열정은 지금도 해당 부대에서는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주위 반대 불구 불교학과 진학

1995년 이학주 법사는 군법사 소임을 끝내고 동대부여고에서 교법사 소임을 시작하게 된다. 그해 3월, 교법사로서 첫 수업에 대한 추억을 그는 잊을 수가 없다.

기대와 설렘이 교차하는 가운데 그는 문을 열고, 교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그는 당혹감으로 어쩔 줄 몰랐다. 학생들 중 누구하나 이 법사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다른 과목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고, 몇몇은 책상에 엎드려 꿈속을 헤매고 있었다. 오와 열을 맞춰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이던 군인들의 모습만을 봐왔던 그로서는 당황스럽다 못해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당연히 언성은 높아졌고, 교실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다음 시간, 이 법사의 태도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는지 학생 몇몇이 책상 위에 성경책을 꺼내 놓았다. 자신에게 불교를 강요하지 말라는 무언의 시위인 셈.

12년째 청소년 포교에 매진

“순간 내가 틀렸음을 알게 됐어요. 법당이야 부처님 법을 배우러 찾아온 불자들이지만, 학교는 그렇지 않잖아요. 월운 스님이 떠올랐어요. 강요가 아닌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 최상의 교육이자 포교라는 것을 깨달은 거지요.”

동대부여고 법당 정각원에는 지난해 전교생들이 작성한 소원지가 내부를 감싸고 있다. 소원지에는 성적 향상을 비롯해 부모님, 이성, 우정 등에 관한 내용이 빼곡히 채워져 있다.
“아이들은 자신의 소원지를 보기위해서라도 법당을 찾습니다. 학생 중에는 ‘아멘’이라고 적힌 자신의 소원지가 정말로 법당에 있는지 확인하러 오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이런 경험들이 학생들에게 불교에 대한 거부감을 사라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중학교 이후 부처님의 도량 속에서 성장하고, 배우고, 생활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부처님의 큰 가피를 받았다는 이학주 법사. 그는 “부처님의 가피를 회향하는 길은 학생들을 위해 더욱 열심히 준비하고 가르치는 것”이라며 봄바람만큼이나 따뜻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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