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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서동요’의 주인공 선화공주

기자명 법보신문

무왕과 국경넘은 사랑 나눴던 로맨티스트

백제 소국, 신라 호족의 딸 등 해석 분분
무왕과 함께 미륵사 창건 주도한 대화주

딸이 출신도 모르는 남자와 바람이 났다는 소문이 왕의 귀에까지 들렸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는 속담을 철저하게 믿었던 왕은 왕실을 욕되게 했다는 이유로 딸을 내쳐 귀양을 보냈다. 그런데 귀양지에 도착하기도 전, 그녀는 ‘우연히’ 한 청년을 만났다. 귀양길의 자신을 모시고 싶다는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했지만 그녀는 이유도 없이 그가 마냥 미덥고 좋았다.

그렇게 만난 그들은 이내 달콤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그 청년이 동네 꼬마들을 시켜 일부러 노래를 유포시킨 줄 모르는 그녀는 자신과 하룻밤을 보낸 청년이 소문의 그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와의 사랑을 ‘운명’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는 귀양지 대신 국경을 넘어 백제 땅까지 도망쳐 행복하게 살았다. 훗날 그 청년이 백제왕이 되니, 어린 시절 서동이라 불렸던 무왕이었고, 여자는 신라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였다.

이런 플롯으로 전개되는 삼국유사의 무왕 설화는 TV드라마 ‘서동요’로 만들어질 정도로 1000여 년 간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회자되었다.

그런데 이 설화는 사실 그대로 믿기에는 많은 함정이 내포돼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 어느 아버지가 바람이 났다는 소문을 이유로 10대의 딸에게 귀양이라는 명분을 주어 자유를 허락할 수 있었을까. 차라리 머리를 깎아 골방에 가두어 놓았다거나, 몰래 월장을 했다는 이야기 따위가 훨씬 더 현실성 있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스토리의 개연성을 차지하고서라도 이 설화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기에는 여전히 몇 가지의 의구심이 남는다.

우선, 서기 600년을 전후한 백제와 신라 관계는 개와 고양이 사이만큼이나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용맹했던 성정의 무왕은 수십 차례에 걸쳐 신라를 공격했고, 재위 기간 내내 신라 노비의 손에 무참하게 죽은 할아버지 성왕의 복수를 하는데 열중했다. 또 신라와 백제 사이에 정략결혼이 이루어졌다면 삼국사기 등 다른 사료에도 기록되었을 터인데, 삼국유사 ‘무왕조’를 제외한 어떤 곳에서도 백제 무왕 대에 신라와 정략결혼이 이루어졌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후대 역사학자들은 신라 왕녀와 결혼을 한 동성왕의 이야기가 와전됐다거나, 선화공주가 현재 익산지역에 해당하는 백제 소국의 공주 혹은 신라 변방 지역 호족의 딸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들을 내놓고 있다. 또 국문학자들은 민간에서 떠돌던 ‘바리데기 공주’ 유형의 설화가 주인공만 바뀐 채 전승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쫓겨난 딸이 별 볼일 없어보이던 남자를 훌륭하게 성장시켜 영웅으로 만들어내는, 혹은 훌륭한 남자를 만나 대단한 존재가 된다는 내용의 이야기는 다른 여러 설화에서도 곧잘 등장하는 테마이다. 고구려의 평강공주가 그러했고, 제주도에 전해지는 ‘삼공본풀이’나 멀리 영국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서도 똑같이 등장하는 주제이다. 그렇다면 왜 이 이야기가 항간에 흩어진 설화들을 수집하던 일연 스님의 귀를 쫑긋하게 했을까. 또 하필이면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의 아버지 무왕과 선화공주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된 것일까. 그 답은 아무래도 그들이 창건했다는 익산 미륵사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처음 만난 날에 하룻밤을 함께 보냈다는 이 발칙한 10대들의 ‘탈선’ 이야기는 흘러흘러 무왕과 그의 왕비가 즉위한 다음으로 이어진다.

서동이 지닌 많은 금으로 인해 진평왕도 서동을 좋아하게 되었고, 백성들의 인심까지 얻어 서동은 왕위에 올랐다. 하루는 왕이 왕비와 함께 사자사(獅子寺)에 가려고 용화산 밑의 큰 못가에 이르니 미륵 삼존이 못 가운데서 나타나므로 수레를 멈추고 절을 올렸다. 이 상서로운 광경을 본 왕비가 왕에게 말했다.

“저에게 간절한 소원이 있사오니, 이곳에 큰 절을 세우게 해주십시오.”

그러자 무왕은 지명 법사에게 요청하여, 하룻밤 사이에 산을 무너뜨려 못을 메우고 평지를 만들어 이곳에 미륵사를 세웠다.

국보 11호 미륵사지석탑이 서 있는 현재의 미륵사 터 자리가 바로 그곳이다. 미륵사지석탑 발굴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물을 메워 절터를 닦은 흔적이 발견되어 이곳이 과연 연못을 메워 만든 절임이 입증되었다. 이처럼 무왕과 선화공주의 이야기는 한편으로는 신라와 백제 왕실 젊은이들의 러브스토리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바로 미륵사라는 절의 창건설화이기도 하다.

이 설화의 시대배경은 무왕의 즉위를 전후한 600년경, 문자로 기록된 시점은 고려시대로 넘어온 1200년경이다.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를 지을 당시에 이미 이 설화가 널리 전승되고 있었으니, 설화의 탄생시점은 여기에서부터 수백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적어도 백제인들의 기억 속에 무왕이 살아있었던 캐릭터로 존재하던 시기, 즉 백제 멸망을 전후한 100∼200년 사이가 이 설화의 탄생시점이라고 보는게 맞을 듯 하다.

따라서 백제와 신라 젊은이의 국경을 넘은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랑, 그리고 그들의 발원으로 세워진 절 미륵사에 얽힌 이야기가 가장 널리 회자되던 시절은 신라에게 복속된 백제유민들의 설움이 통곡으로 터져 나오던 때였다. 당시 백제 여인들은 신라 군사들의 노리개가 되는 대신 동백 꽃잎이 되어 낙화암에 몸을 던졌고, 어머니와 누이를 강물로 던져 넣은 백제의 부흥군들의 피눈물은 백마강을 붉게 물들였다.

그 통한 서린 백제 땅에서 불리던 최고의 노래가 바로 서동요였으니, 이 설화에 망국의 민초들을 달래려는 거대한 메타포가 내포되었음을 알아채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설화가 목적했던 바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미륵’의 존재를 통해 양국민이 하나가 되고자한 진정한 의미의 통일이었다. 망국의 슬픔이 복수심으로 분출되던 시기, 유민들의 아린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존재로 등장한 대상이 바로 미륵이었다. ‘서동요’는 곧 너와 내가 다르지 않으니 미움도, 갈등도, 원한도, 원수도 발붙이지 못하는 용화세계(龍華世界), 즉 미륵의 나라로 함께 나아가자는 호소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백제인들의 정신적 구심점이었던 미륵사의 창건설화에 신라 공주가 등장한다는 것은 백제와 신라를 연결시키는 정신적 고리가 불교였으며, 그 중에서도 미륵신앙이었음을 상징한다. 이는 곧 일승사상으로 삼국을 사상적으로 통일하려 했던 원효 스님의 발원이었으며, 불심으로 망국의 민초들을 끌어안으려 했던 신라인들의 원력의 다른 표현이었다.

설화에서 황금이 황금인지도 몰랐던 서동은 선화공주로 인해 민심을 얻게 되었고, 그녀의 아버지 진평왕의 간접적인 후원을 받아 왕위에 올랐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백제를 구원하는 미륵이 될 것임을 다짐했다.

결과적으로 백제 유민들의 노래 속에 등장하는 선화공주는 바로 미륵의 존재를 일깨워준 선지식이었고, 망국으로 인한 분노와 적개심을 어루만져주는 보살의 화현이었던 것이다.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정을 통하고/ 서동방(薯童房)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

백제 청년의 유혹에 이끌려 황금을 안고 백제로 시집 온 어리숙한 신라의 공주. 그 풋풋한 사랑 이야기 속에서 등장하는 어여쁜 신라 여인을 떠올리며 실의에 젖은 유민들은 일순이나마 웃음을 지었을 것이다. 또한 그녀가 만난 미륵부처님을 애타게 부르며 ‘용화세계 속성취’를 염원했으리라. 

탁효정 기자 takhj@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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