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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함허당 득통 기화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이단은 없다, 이단이란 편견만 있을 뿐

사람이 나고 성장하고 늙어 죽어가듯 사상이나 종교도 흥망성쇠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신라와 고려시대 그 화려했던 불교의 영광은 조선시대로 접어들며 옛 이야기로 전락하고 존립기반마저 뿌리 채 흔들렸다. 새 왕조의 주역들인 신진사대부들은 사상적, 제도적으로 불교를 압박해 왔다. 이에 불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 어디에서도 불교의 권위를 찾을 수 없었고 설상가상으로 불교계마저 사분오열돼 갔다.

함허당 득통 기화(涵虛 得通 己和, 1376~1433) 스님은 이러한 혼돈의 시기를 살아갔던 고승이다. 나옹과 무학대사의 법맥을 잇는 선사임에도 각종 경전 해설서를 저술하는 한편 유가의 억불논리에 맞서 이를 논파하는 『현정론』을 펴냄으로써 불교와 유교의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려 애썼다.

58년이라는 세월 동안 남긴 스님의 족적은 불교가 다시 설 수 있는 이론적 기틀을 마련했을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는 물론 오늘날까지도 수행과 교학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기화 스님은 유학자의 집안에 태어나 유학의 영향 속에서 성장했다. 성균관에서 수학할 정도로 촉망받는 유생의 길을 걸었던 스님은 21세 되던 해 ‘세상이 무상함’을 보고 쇠락해가던 불교에 홀연히 눈을 돌려 관악산 의상암으로 출가했다. 이후 회암사에서 3년간의 혹독한 정진 끝에 깨달음을 얻고 무학대사의 법을 이은 스님은 법석을 열어 대중교화에 앞장섰다. 특히 스님은 선사임에도 교학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 『금강경오가해설의』, 『선종영가집설의』, 『금강경윤관』, 『반야참문』, 『현정론』 등을 명저를 남겼다.


▷스님께서는 촉망받는 유학자로서 멸시받는 출가자의 길을 선택했다는 게 언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당시는 배불(排佛)의 시대였지요. 포은 정몽주 선생이 『능엄경』을 읽었다고 불교에 아첨하려는 것이라는 소문까지 나돌 정도로 유교지식인에게 불교는 금기였다오.”

▷그러니까 더욱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일설에서는 친구의 죽음이 계기가 됐다는 얘기도 전하는데 사실인가요?
“나 또한 성균관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불교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가 없었소. ‘불살생계’라는 말조차 들어보지 못했으니까 말이오. 그런데 우연히 해월이라는 스님과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그 스님이 『논어』에 ‘인(仁)이란 천지만물을 자기와 하나로 하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유교에서는 왜 자기와 다르지 않은 개·돼지를 잡아먹느냐고 물었소. 나는 대답할 수 없었소. 그러다가 우연히 불교의 불살생계를 접하게 되었고, 내가 가졌던 선입견과 달리 불교가 오히려 인을 실천하는 가르침이라고 확신했소. 물론 그 무렵 가까운 벗이 죽어 안타깝기도 했지만 내가 출가한 결정적인 이유는 진리에 대한 갈망이었소.”

▷저는 개인적으로 스님의 『현정론』에 대단히 관심이 많습니다. 불교가 당면한 문제에 대해 다른 스님들은 기피했지만 스님께서는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해결의지를 보이셨으니까요.
“불교가 그동안 해왔던 행태는 비판을 받아야 하고 또 개선돼야 하오. 그러나 당시는 불교의 폐단만 비판한 것이 아니라 불교의 가르침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었소. 머리를 깎는 자는 죽여야 한다는 상소에서부터 불교를 숭상해야 한다는 한 고위관리의 발언을 두고 유생들이 찢어 죽이자는 얘기까지 나오는 실정이었소. 그러니 어찌 방관만 하고 있을 수 있었겠소.”

▷스님께서는 이들의 배불론이 정당하지 않고 불교는 마땅히 존재해야 한다는 확신이 있으신 거였군요. 그런데 요즘의 일부 학자들은 불교와 유교의 도가 다르지 않다는 점만 강조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습니다.
“불교와 유교가 다르지 않다고 하면 유교만 있으면 되지 굳이 불교가 있어야 할 이유가 뭐가 있겠소. 나는 불교와 유교의 같고 다른 점을 드러냄으로써 불교는 그 어느 사상보다도 세상을 이롭게 하는 위대한 가르침임을 명확히 하고 싶었소. 내가 유교와 불교의 회통을 설명한 것은 유교의 장점만 보려하는 유학자들을 위한 방편이었을 뿐, 불교의 해탈과 자비사상은 그 어느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매한 가르침이오.”

▷스님께서는 경전 주석도 많이 하셨는데 고려 선승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경향인 것 같습니다.
“세상을 이롭게 하고 법을 널리 펴는 것이 우리 불가의 일이니 내가 비록 영민하지 못해도 해야 할 일이 아니겠소. 선과 교는 모순대립적인 관계가 아니라 같은 진리의 기초 위에 서 있는 상호보완적인 관계라오.”

▷그래도 선에서는 문자를 세우지 않는다는 게 전통 아닙니까?
“부처께서 설하신 법이 반드시 언어에 의존하는 것만도 아니고 경전이 반드시 종이 위에 글씨를 써 놓은 것만도 아니라오. 언어에 집착하는 것도 병통이지만 언어를 떠나야만 한다고 분별하는 것은 더 큰 병통이란 말이지요. 중요한 건 언어가 진리를 드러내는 도구이며 중생들을 이끄는 방편이란 점이오.”

▷오늘날에도 언어를 참선수행의 걸림돌로 인식하는 분들이 없지 않습니다.
“똑 같은 물이라도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고 뱀이 마시면 독이 되지 않소. 경전이 진리를 증득하는데 걸림돌이 된다는 건 어불성설이오. 상근기에게는 언어가 장애가 되지 않는 경계이기에 그렇고, 중하근기 중생들은 언어를 통하지 않고서는 진리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오. 따라서 경전은 장애가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방편이라는 말이지요.”

▷스님께서는 돈오점수를 주장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치를 몰록 깨닫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렇다고 오랜 업이나 습은 한꺼번에 변화되지 않소. 그렇기에 수행을 통해 온 몸으로 깨달음을 증득해야 하는 것이오. 내가 부처임을 깨닫는 돈오를 바탕으로 수행해 내 속의 반야를 드러내는 일, 그러니까 인식 차원의 돈오가 온몸이 반야화되는 증오(證悟)로 이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지요.”

▷그럼 우리 하근기 중생들은 어떻게 정진해야 됩니까?
“무릇 수행이란 계정혜 삼학(三學)에서 벗어나지 않소. 계로 인하여 선정이 생기고, 선정으로 인하여 지혜가 생기는 까닭이오. 그러니 오계를 실천하고 열 가지 선행을 실천하려는 게 해탈의 첫 걸음이라 할 수 있소.”

▷스님께서는 ‘내 본성이 아미타불이고 마음 밖에 다른 정토는 없다’는 입장에서 정토신앙을 인정하시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서방정토가 있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모순 아닌가요? 아니면 정토신앙이 대중적이라는 효용성 때문에 그러신 건가요?
“염불도 결코 참선과 다르지 않소. 부처의 관점에서 보면 ‘자성미타 유심정토’이겠지만 중생이 부처로 살지 못하는 이상 아미타불이 계시고 서방정토가 있소. 그러니까 자신이 아미타불이고 극락은 마음이 지어낸 것임을 원리적으로 깨달을 수 있지만(頓悟), 그러한 깨달음이 곧바로 부처를 만들어주는 주는 것이 아니기에 이를 증득하는 수행이 필요하다는 것이오(漸修).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아미타불은 내 밖에 여전히 존재하고 극락은 왕생해야 할 대상으로 있는 것 아니겠소.”

▷요즘 시대에도 불교와 다른 종교와의 대립과 갈등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사상의 차이나 대립 자체는 오히려 환영해야 할 일이오. 대립이 생겼다고 해서 서로를 원수처럼 여기고 상대방을 없애 버려야만 시원하겠다고 생각하는데 문제의 씨앗이 있는 것이오. 내 생각, 우리 생각이 반드시 다른 모든 생각 위에 군림해야 하다는 ‘제국주의’ 태도에서 벗어나라는 말이오. 세상에 이단은 없소. 다만 이단이라는 편견만 있을 뿐이지요.”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박해당 『기화의 불교사상 연구』, 양헌규 『기화의 사상에 관한 연구』, 송천은 「기화의 사상」, 한종만 「함허와 선관과 삼교회통론」, 김영태 「조선초 기화의 염불정토관」 등


기화 스님 어록

“오직 바른 견해를 가지고 높은 경지에 노니는 사람만이 삿된 습기에 물들지 않아서 바른 도와 서로 맞을 수 있다. 만일 견해가 중생을 뛰어넘지 못하고 행위가 세속을 넘어서지 못하는 이라면, 비록 깊숙한 곳에 처하여 세속의 일을 놓아버리고 한 평생을 닦을 지라도 접하는 것마다 다 장애를 이루고 대상에 따라 집착을 일으켜 삿된 습기에 물드는 것을 면할 수 없어 끝내 바른 도와 맞기 어렵다. 따라서 먼저 앞선 이들에게 널리 묻고 옳고 그름을 가려 바른 지견을 얻은 뒤에야 비로소 높은 경지에 머물고 멀리 올라 헛된 생각을 고요히 없애고 중생을 벗어날 수 있으며, 또한 범부들에게 순응하고 성인과 함께하며 그 빛을 조화시켜 세속과 뒤섞일 수 있다.” 『선종영가집설의』

“선정이 없으면서 관(觀)에 들어가는 것은 참된 지혜가 아니다. 계(戒)가 없으면서 선정에 들어가는 것은 참된 선정이 아니다. 만일 정념(正念)으로 관찰하고자 하면 먼저 반드시 선정에 들어가야 하며, 만일 선정에 들어가고자 하면 먼저 계를 지켜야 한다.” 『원각경설의 중』

“경(經)이란 길이다. 묘한 뜻을 말하여 뒷사람들에게 길을 열어주어 다른 길로 빠지지 않도록 하여 바로 보물이 있는 곳에 도달할 수 있게 한다. 경이란 그 시대에 이익을 보이고 후대에 길을 만들어준다.” 『원각경설의』


후대의 평가

“조선초 배불억제책의 시작 벽두에 홀로 『현정론』을 지어 불법의 참되고 깊은 뜻을 천명함으로써 불교를 곡해하던 당시의 유가들에게 올바른 이해를 촉구했던 함허당 득통 기화는 분명 조계종의 대선사였다.” (김영태 동국대 명예교수)

“함허는 불교인이지만 능히 유(儒)·도(道)를 회통했고 또 이를 진리적인 면과 현실적인 면에서 손쉽게 제시해서 대중들이, 특히 배불론자들이 이해하도록 하려는 의도로서 삼교회통사상 및 그 실제를 제시했다.” (한종만 원광대 명예교수)

“기화 스님은 유불관계론을 정립함으로써 한국불교사상사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이렇게 형성된 유불관계론은 휴정에게로 이어지고 있다. 그는 한국불교사상사에서 전통의 계승자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전통의 창시자라는 위상을 갖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박해당 서울대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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