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에서 날 건진건 8할이 ‘용서’였다”
“절망에서 날 건진건 8할이 ‘용서’였다”
  • 법보신문
  • 승인 2007.04.02 09: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한불교산악인연합회 양 춘 동 총재

계절은 이미 봄의 문턱을 넘어섰건만 이른 새벽 조계사 대웅전 공기는 여전히 냉랭하다. 한기가 느껴지는 대웅전, 그러나 대한불교산악인연합회 양춘동(69·지인) 총재의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다. 16년간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조계사 대웅전에서 이어온 108참회. 이것은 지난날 분노와 오만이라는 무명에 갇혀 방황하던 그를 부처님의 품으로 이끌어준데 대한 감사의 의식이다.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일배 일배 일심을 다해 절을 올리는 그의 입에서 나오는 석가모니불 염송이 법당 안에 은은하게 울려 퍼진다.

16년간 이어온 예불-108배

1991년 가을, 백담사를 출발한 양춘동 거사는 봉정암을 향해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지치고 병든 마음을 달래려는 심정으로 무작정 나선 길이었으나 그 길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50대 중반, 지금껏 순탄하기만 했던 사업이 작은 위기를 맞았을 뿐인데 부도 직전까지 내몰릴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평생 아쉬운 소리 한 번 해 본적이 없었던 그였지만 회사를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도움을 요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고 이미 기울어 버린 그에게 손을 내밀어 잡아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하루를 멀다 않고 찾아와 행패를 부리는 채권자들은 그의 마음마저 휘청대게 했다.

서럽고 분한 마음에 가슴엔 화기만 차올랐다. 시간만 있다면 어떻게든 해결해 볼 수도 있겠지만 세간사 인심은 그조차도 허락하지 않았다. 세상 한가운데 홀로 내팽개쳐진 그를 믿고 따라주는 것은 오직 그의 가족들뿐, 그리고 생에 가장 힘든 순간 떠오르는 건 어머니였다. 양춘동 거사의 어머니는 독실한 불자로 시간이 날 때마다 그를 데리고 사찰을 찾곤 했었다.

어머니에 대한 추억으로나마 잠시 위로를 받고 싶었던 것일까. 이른 새벽, 밀려오는 고민으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그는 무작정 집 근처 반야사를 찾았다. 늘 한없이 자비로운  미소로 그를 맞아주는 부처님께 참으로 오랜만에 삼배를 올렸다. 마음속 한 구석에서 작은 평온의 싹이 움트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마침 그날은 반야사 신도회가 설악산 봉정암으로 성지순례를 떠나는 날이었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에 그는 동행을 요청했고, 그렇게 봉정암 산행에 동참했던 것. 양 거사는 독실한 불자인 어머니가 늘 부처님께 기대었듯이 사업 실패라는 고통을 봉정암에 기대어 씻고 싶었다. “과거의 종자인연은 무량겁이 지나도 멸하지 않는다”는 부처님의 말씀처럼 양 거사가 반야사를 찾은 것 역시 필연이며 부처님의 가피리라.

봉정암을 오르는 동안, 이런저런 고민과 걱정들이 끊임없이 그의 마음을 괴롭혔다. 무게도 없는 걱정은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일흔이 넘은 노보살님들도 잘 오르는 길인데 그는 자꾸만 뒤로 처졌다. 6시간을 훌쩍 넘어 도착했을 때에는 봉정암엔 이미 저녁예불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도착했다는 성취감을 느낄 새도 없이 반야사 주지 스님이 채근하는 바람에 양 거사는 곧바로 절을 시작해야만 했다.

봉정암 정진 뒤 불교 입문

“자기 마음 하나도 못 다스리니 자꾸 헛된 망상이 생기는 거예요. 그러니까 젊은 분이 노보살님들보다 뒤처지는 겁니다. 거사님은 먼저 마음을 다스리는 법부터 배우세요.”

몇 배나 한 것일까. 시간은 새벽을 향해 더디게만 흘러가고 있었다. 지겹고 힘겨웠다. 스님의 호통에 못 이겨 억지로 시작한 절. 하지만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이 굵어질수록 이상하게 마음은 편안해 졌다. 거짓말 같았다. 마치 지금껏 자신을 무겁게 짓누르던 고통이 땀방울에 섞여 밖으로 배설되는 듯, 그리고 몸을 낮추고 낮출수록 다른 이를 향해 토해내던 미움, 증오, 원망이라는 삼독심은 점차 사그라졌다. 절 할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가슴에서 따뜻한 온기가, 바닥에 닿은 오체에선 하심이 배어 나왔다. 일배 일배가 기적처럼 다가왔다. 절을 할수록 따뜻한 가슴으로 온갖 번뇌를 감싸 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까지 저는 모든 잘못의 원인을 밖에서만 찾고 해결하려 했어요. 마음이 조급해지니 일은 자꾸만 꼬이고, 결국 할 수 있는 것은 시간을 탓하고 다른 사람을 원망하는 것뿐이었지요. 그런데 봉정암에서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된 겁니다.”

봉정암에서 돌아온 그날 밤, 양 거사는 몇 달 만에 처음으로 깊은 잠에 빠졌다.

다음날 아침, 불교기초교육과정이 개설된 조계사를 찾았다. 믿기만 하고 알지 못하면 무명은 더욱 커지고, 알기만 하고 믿지 않으면 그릇된 사견이 자라는 법. 수행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초부터 하나씩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16년간 이어온 새벽예불과 108참회도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는 새벽예불을 마치기 전에는 물조차 입에 대지 않고 지방이나 해외 출장 중에도 근처 사찰을 찾아 새벽예불을 모셨다. 기초교리과정을 마친 후에는 불교대학과 불교대학원을 차례로 진학하며 불교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나갔다. 그리고 조계사 신도모임인 반야회에 가입해 신행과 포교활동을 병행하며 솔바위산악회를 만들어 전국의 산사를 찾아다녔다.

수행과 신행의 깊이가 깊어짐은 먼저 그의 얼굴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났다. 언제나 하심으로 상대를 대하니 얼굴에는 자연스레 미소와 편안함이 묻어나왔다. 그의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로 북적였고, 지지부진하기만 하던 사업도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낮추고 낮추니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모여들더라고요. 내가 조금 더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니 의외로 일이 풀리기 시작했고요.”

신행 깊어지면서 사업도 순탄

1999년, 2년 반 동안 이끌었던 반야회 회장 소임을 마칠 즈음에는 회사는 완전히 정상 괘도에 접어들었다. 그는 그동안의 모든 일들이 모두가 부처님의 가피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다고 말한다. 반야회 회장 소임을 끝으로 그는 절집에서 하는 일은 일체 관여하지 않다가 주변의 권유로 지난해 전국불교산악인연합회를 맡았다. 전국불교산악인연합회 총재 소임을 맡기 전까지 6년간 그는 산사를 찾아 다녔다. 그가 찾은 곳만도 족히 300여 곳이 넘는다.

“많은 것을 보고,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명산대찰이라고 하지만 몇몇 유명 사찰을 제외하고는 넉넉하지 못한 살림으로 어렵게 사찰을 운영하는 곳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전국불교산악인연합회 총재 취임식에서 회원들에게 열심히 정진하는 사찰을 찾아 작은 도움이라도 드리자고 제안했습니다.”

양 거사는 내년 말 전국불교산악인연합회 총재 소임을 회향하면 경영일선에서도 물러날 계획이다.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닌 또다른 목표에 도전하기 위한 새로운 출발이다. 그가 밝힌 인생의 마지막 목표에는 가까운 도반들과 전국의 사찰을 돌며 작은 도움을 주고,  노스님들을 모실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는 서원이 포함돼 있다.

“게으른 자에겐 미래가 없습니다. 움직일 수 있을 때 정진하세요. 자신을 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낮출 수 없을 만큼 낮추고, 용서하며 늘 베푸는 것입니다.”
그가 산을 오르면서 배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