⑥ 영광 불갑사
⑥ 영광 불갑사
  • 법보신문
  • 승인 2007.04.09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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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불교의 장엄함이 이 같았을까
<사진설명>영광 모악산 중턱에서 바라본 불갑사의 모습이 단아하고 가지런하다. 20여 동의 전각들이 잘 정돈돼 있는 불갑사.

영광 모악산 중턱에서 바라본 불갑사(佛甲寺, 주지 만당)는 그 이름과 같이 제불사(諸佛寺)의 으뜸도량(불갑)이었다. 20여개 달하는 도량과 요사채들이 어깨동무를 한 듯 가지런히 정돈된 모습은 어느 본사의 사격에도 버금갈 정도이다. 숲에 갇혀 숲 전체의 모습을 보지 못하듯 경내에 있으면 불갑사 전체의 장엄함도 확인할 수가 없다. 백제 침류왕 원년(384년) 천축의 마라난타 존자가 남중국 동진을 거쳐 영광 땅 법성포로 들어와 이곳에 첫 도량을 지어 정토신앙과 염불로서 법을 설했을 당시의 희유함도 도량 곳곳에서 배어나오는 듯하다.

15년여 만에 4만평 가람 복원

기실 불갑사는 고려말 각진국사가 주석할 당시엔 제자 1000여명이 몰려들어 총림을 이루기도 했으며 조선말만 하더라도 설두대사와 금화선사에 의해 도량 정비와 중수를 거듭하면서 대찰로서의 명맥을 이어왔다. 그러나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불갑의 위엄은 크게 위축되었으며 1970년대에 들어서야 고불총림 방장 수산 지종 스님과 유나 지선 스님이 주석하면서 전각에 대한 번와, 개연 등 불사와 함께 범종루를 조성, 지금의 복원 불사를 위한 기틀을 다졌다.

그리고 주지 만당 스님이 은사이자, 방장인 지종 스님을 시봉하면서 총무 소임을 맡은 1990년대 중반기에서부터 2001년 주지로 취임한 이후 2007년 현재까지 옛 사격을 되찾기 위한 대작 불사를 추진,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고불성보박물관을 비롯한 청풍각, 금강문, 일주문, 관음전 등 전각 불사와 4만평 일대의 도량 주위를 정비하고 수로를 내고 축대를 쌓는 불사가 차곡차곡 진행되면서 불갑사는 호남을 대표하는 명찰로서의 위의를 구족하게 되었다. 불갑사가 도와 영광군, 문화재청 등과 연계해 추진해 온 대대적인 복원 불사는 지나온 1600여년의 문화와 역사를 올곧게 담고 새로운 1000년을 준비하는 불사로, 현재까지 120억여원에 달하는 정재가 투입됐다.

옛 사격을 되찾기까지 불과 15년도 안 되는 세월이 걸렸다. 예닐곱에 불과했던 전각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을 정도로 왜소했던 사격을 복원하기까지, 불사의 규모를 따지면 무척 짧은 시간이 아닐 수 없다. 불갑사의 궁극적인 목표는 백제 불교 최초 도래성지인 법성포를 끼고 있는 영광 전체를 불국토로 일구는 것이다. 전라도 지역의 불교를 하나로 모으고 군과 연계, 법성포 일대 1만 4000여평에 마란난타 존자상을 세우고 탑원과 만다라 광장 등을 조성하는 9년간의 성역화 불사의 중심에도 불갑사가 있었다. 법성포의 성역화 불사는 지난해 5월 13일 회향했다. 영광군의 불자들은 물론 군과 지역 주민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으리라.

“지역과 하나 되지 않으면 이젠 사찰도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군의 공무원들과 자꾸 만나 복원에 대해 이야기 하고 법성포와 불갑사가 갖는 문화적인 의미, 영광을 활성화하기 위한 복원의 필요성을 설명하기 위해 발품을 팔았습니다.”

만당 스님의 설명처럼 법성포 성역화 불사에는 영광군과 불자, 주민들의 정성이 깃들어 있다. 성역화 불사 회향날, 영광과 전국에서 모여든 5000여 사부대중이 함께 축하하고 기뻐한 까닭도 불갑사와 영광이 한 가족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발품 팔며 영광과 하나되다

불갑사가 영광과 하나 되기 위한 노력 중에는 영광의 아픔을 나누려는 실천행도 있다. 영광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바로 ‘원자력발전소’이다. 원자력발전소 때문에 영광지역에서 나는 굴비 이외의 농산물은 잘 팔리지 않거나 싸게 매매되고 있다. 불갑사 만당 스님과 불자들은 이러한 주민들의 고충을 잘 알기에 방사성폐기물처분장 유치 반대 운동에도 적극 동참했었다.

6만여명 안팎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영광에서 불교(32.6%)는 두 번째 종교이다. 2005년 통계청의 종교인구 통계자료에 따르면 개신교세가 35.5%로 으뜸이다. 사찰이 주인이 되어 영광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하나로 묶을 만한 문화 축제 하나 없었던 이곳에서 불갑사는 93년부터 지난해까지 한해도 거르지 않고 부처님오신날 제등행렬을 봉행하고 있다. 부처님오신날을 축하하는 마당에는 500여명의 영광군민과 불자들이 동참하고 있으며 불갑사는 불자들이 십시일반으로 모금한 성금 600만원을 소년소녀가장 등 불우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으로 보시하고 있다.

봉축 땐 불우 청소년에 장학금

막대한 공적 자금이 집행되고 있는 복원 불사는 재정 집행이 투명한데다, 불갑사의 사적기에 바탕을 두고 미술사학자 등 문화재 전문가들의 철저한 고증을 거쳐 빈틈없이 추진되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불갑사에 대한 영광군과 군민들의 신뢰 또한 높아졌다. 영광군은 불갑사의 대작 불사에 화답하듯 2005년 90억원을 들여 사하촌 일대를 대대적으로 정비, 공원화했다.

백제의 찬란했던 불교문화를 재현하기 위한 불갑사의 대작 불사는 포교 면에서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90년대 초에 비해 불갑사를 찾는 불자 수는 대략 500% 이상 성장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신도회(1300여 세대)를 비롯, 2000년에 개원한 마라난타불교대학(30명), 대학 동문회(150명), 자비도량참법, 영광원자력발전소의 선우회-홍불회 등 신행 모임들도 정기적으로 수행, 정진을 하며 진성 불자로 거듭나고 있다. 2007년 4월 현재 등록 신도 수는 대략 4000여 세대 안팎에 달한다.

사명(寺名) 자체에 부처님의 도량 중 으뜸이란 의미를 담고 있는 불갑사는 이제 수행도량으로서의 사격을 갖추기 위한 마무리 불사에 입재한다. 20여명 이상이 상주하면서 참선 수행할 수 있는 상설 수련도량인 설선당 불사를 연내 착공할 예정이며 단면만도 140여평에 달하는 9층 목탑과 목탑을 둘러싸고 있는 회랑을 일주문에서 대웅전으로 향하는 공터에 3000여평 규모로 조성한다. 높이만도 70여m를 웃도는 9층 목탑 주위에는 130칸의 방사를 갖춘 ‘ㅁ’자 형태의 회랑이 건립돼 하루 200여명 이상의 불자들이 머물면서 수행 정진할 수 있게 된다. 영광군과 협의해 추진하는 목탑 건립 불사에는 400억원이상이 투입될 예정이며 2008년 상반기 중 목탑 불사에 착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천년 수행도량으로 발돋움 발원

1600여년 전, 마라난타 존자가 정토신앙과 염불 정진을 하며 법을 홍포했던 당시는 국왕까지도 친히 존자를 궁궐로 영접해 법을 구할 정도로 구도열이 높았다. 그 때의 정진 열기는 필시 봄바람을 타고 태산을 태우는 화마만큼이나 거세고 뜨거웠을 것이다. 백제 불교문화의 꽃인 불갑사의 목탑 도량에서 염불하고 참선한다면 백제 불교 당시의, 마라난타 존자를 스승으로 받들며 정진했던 백제인들의 수행 열기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지 않을까. 9층 목탑이 건립되는 날, 불갑사는 새로운 1000년을 위한 불갑으로 화현한다.

영광=남배현 기자 nba7108@beopbo.com


“영광을 전법 으뜸고장으로 가꿀 터”
모악산 불갑사 주지 만 당 스님

“스님! 요즈음 불자들은 토요법회를 많이 원합니다. 주 5일제 근무가 정착돼 토요일에 정기 법회를 보고 주말을 가족과 함께 보내려는 게 대세입니다.”

“토요일요? 그런데 5일 근무하고 난 다음 날이라 피곤하지 않을 까요….”

영광에 사는 어느 주부 불자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는 모악산 불갑사 주지 만당〈사진〉 스님의 목소리가 나긋나긋하다. 아주 오래된 이웃을 대하듯 친근하다. 스님은 “불자들에게 스승(스님)이란 상을 내지 말아야 하며 늘 웃는 얼굴로 대해야 포교도, 불사도 원만하게 성취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91년 10월, 고시 공부를 위해 불갑사 천왕문에 들어섰을 때 스님의 마음에는 ‘편안함’과 ‘익숙함’이 다가왔다. 전생 그 어느 때인가 이곳에서 울력을 하고 참선을 했던 대중이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생에 출가자였다’는 믿음은 스님을 출가 수행자의 길로 이끌었다. 불갑사 대중 스님들이 ‘행자교육원이 있다는 데 머리 깎고 갈래’라며 한마디 권유하자, “그러지요”라고 화답하며 수행자가 되었다. 그리고 올해로 만 15년 동안 은사이자 고불총림 방장인 수산 지종 스님을 시봉하며 불갑사 복원 불사에 진력해 왔다.
 
“불사를 잘하는 방법이요, 우선 지방자치단체와 가까워져야 합니다. 그리고 전통문화재 복원에 빼어난 실력을 갖춘 전문 업체를 선택해야 하고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지원받은 불사금은 늘 투명하게 집행해야 합니다.”

지극히 평범하고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만당 스님은 “지방자치단체와 가까워지려면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야 하고 복원을 제대로 하려면 스님이 먼저 사찰의 고적기를 공부해 문화재 전문가가 되어야 하는 수고로움이 뒤 따른다”며 실천의 어려움을 설명한다. 120억여원이 투입된 불갑사 복원 불사를 추진하면서 스님은 항상 지자체의 복원금 지원 통장에서 복원 업체의 통장으로 공사 대금이 지출되도록 하고 있다.

만당 스님은 “복원 불사는 제대로 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반드시 도래하게 돼 있다”며 불사의 기획 단계에서마무리 단계에 이르기까지 꼼꼼히 챙기는 이유를 설명했다. 스님의 지독스런 ‘챙김’은 분명 불갑사가 불갑(佛甲)으로서의 사격을 되찾을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리라.


9층 목탑 복원, 수행도량으로 도약
불갑사의 청사진

1990년대 중반부터 중창, 복원 불사에 들어가 이제 3~4년 후면 도량의 외격을 갖추기 위한 대작 불사를 마무리하게 될 불갑사의 청사진은 전법과 포교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마라난타 존자가 법을 전하기 위해 첫 발을 내디뎠던 법성포와 존자가 처음으로 지었던 불갑사, 존자의 교화 마당이었던 영광 등 세 곳을 트라이앵글처럼 연계해 영광을 불국토로 변모시켜 나간다는 복안이다.

법성포 일대 성역화 불사는 지난해 5월 13일 이미 회향했으며 1900년대 초 우리나라 근대 불교의 첫 포교원격인 불갑사의 영광읍 포교원 원각사를 읍내에 복원하는 불사는 5년 이내에 마무리할 계획이다. 불갑사는 또 수행도량으로 거듭나기 위해 11개 이상의 방사와 세면실을 갖춘 설선당 건립 불사를 올 중반기께 착공할 예정이며 ‘ㅁ’자 형태의 회랑으로 둘러싸인 70여m 이상의 9층 목탑도 건립한다.

불갑사의 계획대로 원각사 및 9층 목탑을 건립하는 불사를 원만히 회향할 경우 영광에는 불갑사와 법성포, 원각사 등 3곳을 중심축으로 한 트라이앵글 포교망이 구축돼 전국 제일의 전법마당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된다. www.bulgapsa.org
061)352-8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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