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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회향 ‘한국의 불화’

기자명 법보신문

선인들의 숨결 담은
또 하나의 숭고한 ‘성보’
교계 내외 관심 지원 속
후속불사 역경 없길 희망

순천 선암사 담을 보신 분이 있으신지요.

몇 해 전 취재차 선암사를 찾았을 때 고졸하면서도 담백한 담을 따라 산책한 적이 있습니다. 약 4~5미터 지날 때마다 무너진 담 옆에 기왓장과 나뭇가지 등의 부스러기가 가지런히 놓여있었습니다. 언뜻, 그 부스러기 내용물들은 똑같아 보였지만 같은 기왓장이라 해도 일정 거리에 따라 색깔이나, 모양이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 사연을 한 스님에게 물었는데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사찰 재정 형편이 닿는 대로 목재를 사와 전각을 지었는데 담 역시 불사가 이뤄질 때마다 쌓았기에 세월의 흔적이 스며있는 것입니다.”

담 한 뼘도 일순간에 쌓은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타임캡슐’에 버금가는 ‘타임 산사 담’이라고 해야 할까요?

‘한국의 불화 40권 완간’ 소식을 접하면서 옛 선인들의 불사를 향한 지고지순한 마음이 다가오며 그 산사의 담이 아련히 그려졌습니다.

우리나라 대표 화승이신 석정 스님과 범하 스님의 원력, 그리고 사찰과 학계 관계분들의 협조 속에서 20년 불사가 드디어 회향했습니다. 보통 우리는 회향을 말할 때 ‘원만회향’이라 하는데 이 불사의 규모를 볼 때 분명 원만하게 진행된 일은 아니리라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물론 외부기관의 도움도 없이 성보문화재연구원이 단독으로 추진한 사업이었고, 출간에 소요되는 비용 마련을 위해 석정 스님은 평생 그린 작품을 희사했을 정도이니 그 고난은 현장에 있지 못한 우리로서는 짐작하기조차 어렵습니다.

1989년 석정 스님의 발원과 함께 ‘전국불화조사단’이 발족되면서 사전 조사와 함께 준비 작업에 박차를 가했고, 1995년 황수영, 한병삼, 정영호, 홍윤식, 장충식 중진학자를 중심으로 한 ‘한국의 불화 편찬위원회’도 꾸려졌습니다.

1996년 ‘통도사’와 ‘직지사’ 를 담은 네 권의『한국의 불화 』를 처음으로 선보인 성보문화재연구원은 2000년 1차분 20권을 출간한데 이어 2007년 4월, 20권을 마저 발행함으로써 『한국의 불화』 전권을 완간했습니다.

전국 사찰에 봉안돼 있는 불화를 일목요연하게 집대성한 이 작업은 불교미술사 연구에 큰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옛 화승들의 탱화를 향한 열정과 이를 성보로 숭상한 불자들의 마음일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불사는 선인들이 남긴 1000년의 숨결을 담은 또 하나의 ‘성보’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1000년간 이어온 화승들의 불사가 이로써 회향된 것이라 한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성보문화재연구원은 북한, 해외, 조계종 이외의 종단 불화를 담는 것은 물론 불화를 좀 더 대중 앞으로 다가가게 하는 주제별 단행본도 후속작업으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후속 불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라도 지난 역경을 되풀이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종단과 학계의 협조도 계속 이어져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불교계 내외의 재정지원이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사부대중의 지대한 관심과 지원을 기대합니다.

고즈넉한 산사의 담을 따라 산책하듯 『한국의 불화』속을 걸어보십시오. 꽃잎을 스치는 바람소리처럼 부처님 법음이 들려올 것입니다.  

       

penshoot@beopbo.com
채한기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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