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⑨ 평택 명법사 화 정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포교 불모지 평택 불국토로 일군 무애보살

평택, 어린이, 복지, 봉사, 포교, 불사. 명법사 화정 스님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오버랩 되는 단어들이다. 한두 마디 단어로 쉽게 정의 내릴 수 있는 삶이 있을까만은 그래도 유독 스님의 삶에서 이렇게 많은 단어들이 한꺼번에 스치는 것은 관세음보살의 천수천안처럼 이들 분야에 스님의 자비 원력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기 때문이다.

스님이 포교의 텃밭을 일구고 있는 경기도 평택은 국내에서 선교사의 유입이 가장 빨랐던 지역으로 기독교의 텃세 또한 유달리 심한 곳이다. 설상가상, 지역 내 변변한 사찰 또한 없다보니 일 년에 한번 치르는 봉축행사마저도 지역 교회들의 항의와 견제로 눈치 아닌 눈치를 봐야하는 실정이었다.

그러던 평택에 몇 년 전부터 따뜻한 훈풍이 불고 있다. 45년 전 작은 인법당으로 도심 포교의 싹을 틔운 명법사가 꾸준한 불사 끝에 대지 2200여 평에 대규모 불교회관을 갖춘 평택 대표 도량으로 발돋움하면서 평택의 종교 지형에 일대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진앙으로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특히 결식학생 도시락 배달과 장학금 지원, 평택역 부랑인과 실직자 구호, 각종 재해로 실의에 빠진 이재민 돕기, 복지법인 건립 등 열성적인 봉사 활동은 지역민들에게 불교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덕분에 기독교의 도시 평택에도 불국토의 꿈이 조금씩 영글어 가고 있다.

특히 지난 98년 설립한 어린이집 ‘맑고 향기로운 연꽃동산’은 평택 최고 어린이집으로 현재는 지원자의 30~40%가 입학 날짜를 기다리며 대기해야 하는 평택 어머니들의 선망의 대상이 된지 오래다.

평택의 서울대는 ‘연꽃동산’

“대학 중에 서울대를 최고로 치잖아요. 평택에서는 연꽃동산이 그렇습니다. 어린이집으로 치면 서울대지요. 초등학교 선생님들도 아이가 유달리 똑똑해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연꽃동산을 다녔다고 대답한다고 해요. 연꽃동산이 초등학교 선생님들의 자녀가 가장 많이 다니는 어린이집인 것도 이런 이유이지요.”

연꽃동산의 경쟁력은 양질의 다채로운 프로그램에 있다. 마치 디즈니랜드의 꿈의 궁전이라도 온 듯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화려한 교육시설도 눈길을 끌지만 태권도, 중국어, 다도, 서예, 미술 등 수준 높은 강의들이 모두 무료로 운영된다. 또한 오로지 어린이 포교 원력으로 미술, 교육, 복지를 한꺼번에 전공한 원장 선생님 외에 각 강의를 맡은 이들 모두 무보수로 자신의 시간을 쪼개가며 새싹 포교에 헌신하고 있는 점은 다른 어린이집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연꽃동산만의 매력이다.

“어린이 포교는 절실한 문제였어요. 전에는 절에 다니는 아이들도 기독교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니다보니 아멘 소리를 절로 해요. 그때마다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았지요. 그래, 30년을 준비했습니다. 인재를 키우고 정재를 모으고. 생각해 보면 참 지난한 세월이었지요.”

처음부터 어린이집을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스님의 계획은 대한민국 최고의 유치원을 짓는 것. 호주머니에 돈을 쌓아놓고 다니는 처지가 아니었기에 편지봉투를 오려 메모지로 이용하며 억척스럽게 정재를 모았다. 그리고 마침내 400여 평 규모의 매머드 급 유치원 건립을 눈앞에 두게 됐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곳에서 난관에 부딪혔다. 진입로가 문제였다.  부지를 매입하지 않으면 나중에 두고두고 시비에 걸릴 일이었다. 스님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나는 듯 했다. 30년을 준비한 일이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알토란같은 재원들이 진입로 매입비용으로 고스란히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마치 잉태한 아기를 포기해야 하는 산모의 심정이라고나 할까. 스님은 일부 남은 재원의 활용을 놓고 밤새 고민했다. 100여 평 규모의 아담한 어린이집 연꽃동산은 그렇게 탄생됐다. 그러나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노력하는 이에게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는 법. 세상이 바뀌면서 어린이집이 유치원보다 중요한 보육시설로 떠오르면서 요즘은 오히려 연꽃동산이 어린이 포교에 더할 나위 없는 훌륭한 보금자리로 각광을 받고 있다.

“타종교 부모들도 연꽃동산에 자녀를 보냅니다. 교육 앞에서는 종교도 뒷전이에요. 절에서 운영하지만 교육환경이 좋으니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보내는 것이지요. 덕분에 이제는 교회 다니는 아이들 입에서도 반야심경이 절로 나오더라고요.”

그러나 어린이집보다 먼저 스님의 존재를 알린 건 복지의 차원을 넘어 수행이 돼 버린 명법사의 극성스런 봉사활동이다. 지난 88년 시작된 평택역 노숙자 독거노인을 위한 무료 급식을 시작으로 경로잔치, 결식아동 도시락 배달, 소년소녀가장 및 실직자 자녀 장학금 지원, 장애우 위안잔치, 삼풍백화점을 비롯한 각종 재난 구조 등 활동의 폭은 그 끝을 찾기 힘들 정도다.

“봉사는 뜻만 있다고 되는 일은 아닙니다. 봉사할 사람도 있어야 하고 재원도 모아야 하고. 그래, 10여년 넘게 복지기금을 한푼 두푼 모았지요. 신도들에게도 복지비를 따로 걷었어요. 그랬더니 처음엔 괴물 스님, 괴짜 스님 하며 모두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군요.”

소외 노인 위해 보살선원 건립

그러나 자신의 호주머니부터 털어가며 보살의 마음으로 헌신하는 스님의 모습에 감화를 받은 신도들도 하나 둘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평범한 불자의 삶이 대승보살의 원력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명법사에 32개의 신도 모임이 활동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경전의 이름을 딴 이들 모임은 사찰 운영에서 각종 구호와 봉사 활동까지 서로 유기적으로 협력하며 더불어 보살의 길을 걷고 있다. 특히 15명 정도로 구성된 보현행원단은 화정 스님의 자랑이다. 긴급한 구호 활동이나 극한에 몰린 불우이웃을 위해 언제든지 투입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는 사실상의 결사단체다. 또 상당수의 신도들이 기독교의 십일조처럼 매달 월급의 10%를 보시하는 것도 명법사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이다.

그러나 명법사가 평택의 대표 사찰로 거듭나기까지는 감당하기 힘든 시련의 연속이었다.

이제는 신도들을 위한 불교회관까지 갖춘 여법한 도량으로 변모했지만 당시 명법사는 조그만 암자에 불과했고 건물 또한 무허가였다. 더구나 땅은 양성 이 씨 문중의 종중 땅. 설상가상으로 터마저도 중앙공원 부지로 묶여 있었다. 이러다보니 끊임없이 철거위기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삼선승가대학에서 화엄경을 배울 때 도반들이 저보고 그러더군요. 화엄경을 읽는 것이 아니라 맛있게 씹고 있다고. 그 정도로 화엄경에 심취해 있었지요. 화엄경을 읽으면 마치 모든 경전의 글귀가 마음에 환히 비치는 것 같았어요. 23세부터 화두를 잡았는데, 나름대로 꼬리를 잡았으니 화엄경이 얼마나 맛있게 읽혔겠어요. 그래, 화엄경을 눈이 아닌 발로 읽어보자는 취지로 명법사로 내려와 신도들과 함께 봉사와 포교에 전념했지요. 그런데 명법사 허가 문제가 목에 턱하니 걸린 거라. 무허가에, 종중 땅에 도저히 해결할 길이 없었지요.”

절의 허가 문제로 고민을 거듭하다 스님은 어느 날 심장마비로 거짓말처럼 죽어버렸다. 오래 전부터 심부전증이라는 지병을 앓고 있었고 여기에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절벽이 다가오자 몸이 그만 세상의 끈을 놔버린 것이다.

“숨도 쉬어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 이것이 죽는 거구나 했지요. 그러면서 생각을 했습니다. 왜 죽게 됐을까. 말과 행동이 같은 ‘정말’같은 삶을 살려고 스님이 됐는데 왜 죽게 됐을까. 순간 머리가 주장자에 얻어맞은 것처럼 꽝 하더군요. 23살 때 수덕사 혜암 스님께 받았던 화두 곡불장직(曲不藏直)이 확 터져버린 거라. 굽은 것 안에 곧은 것이 들어있으니 이것이 무엇인가. 본래 선도 악도 끊어진 자리가 본체일 터인데, 그동안 나를 세우니 상대가 있었던 것이고, 이것이 모든 고통의 원인이었던거지요.”

악을 수용하지 않는 선은 선일 수 없고, 옳은 것도 그릇 것을 포용하지 않으면 옳을 수 없다. 스님은 순간 자신을 ‘탁’ 놔버렸다. 그러자 갑자기 끊어졌던 숨이 쉬어지고 마음이 편안해 졌다. 그러나 스님은 죽었다고 생각했다. 편안해진 몸을 느끼며 죽음이 참 편안하구나 느꼈다. 허나 얼마 후 주변의 소음을 들으며 자신이 살았음을 자각할 수 있었다.
 
나를 버리자, 도저히 풀 수 없을 것 같던 명법사의 문제도 절로 풀리기 시작했다. 그토록 발로 뛰며 읽었던 화엄경의 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의 세계가 그대로 이뤄진 것이다.

죽음 직전 비로소 화두 풀어

“항상 힘들었어요. 쉬운 일이 별로 없었지요. 그렇지만 이제는 마음먹은 대로, 뜻한 대로 되지 않는 일이 없어요.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가 이런 것이겠지요.”

스님은 지난해 1월 세종문화회관에서 ‘구국음악회 부모은중경’공연을 가졌다. 명법사 대작불사와 스님의 남다른 수행 여정을 회향하는 일종의 사은회 자리였다.

스님은 최근 경기도 안성 공도면에 요양원 보살선원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요양원에 굳이 선원의 이름을 붙인 것은 요양원이 주는 몰인정한 느낌을 배제하기 위해서다. 이곳에 자식은 있으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소위 차상위 계층의 노인들을 모실 예정이다.

그러나 스님의 마음속엔 또 다른 생각이 담겨 있다. 보살행을 실천하다 함께 늙어버린 신도들에게 마지막 수행처를 마련해 주고자 하는 애틋한 마음이 그것이다.

스님은 명법사 신용협동조합 설립을 꿈꾸고 있다. 이곳을 통해 사회를 더 맑고 아름답게 가꿀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불을 지피고 있기 때문이다.

물은 깊을수록 소리가 적은 법이다. 화정 스님의 원력에 평택은 조용하지만 거역할 수 없는 힘으로 조금씩 불국토의 땅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김형규 기자 kimh@beopbo.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