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⑩ 조계총림 송광사 율원장 지 현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계행이 바로 자비 일으키는 바라밀의 원천”

부처님은 계행의 중요성을 생명에 비유하곤 하셨다. 『열반경』에서 부처님은 계행을 바다를 건너는 생명줄인 구명부대에 비유하셨고, 수행자들에게는 계율을 타협의 대상으로 보지 말 것을 당부했다. 바다에 떠 있는 배에 물이 샌다면 그 구멍이 아무리 작다 할지라도 결국 배는 침몰할 것이 자명한 일. 부처님이 편리에 따라 파계를 합리화 하지 말라 이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또 계는 계, 정, 혜 삼학에서 알 수 있듯 정, 혜를 증득할 수 있는 원천이기도 하다. 계율의 중함이 이러하니 여기에 몇 마디 말을 보탠 들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조계총림 송광사 율원장 지현 스님. 시대를 대표하는 율사 중 한 분인 스님의 삶을 더듬다 보면 가물거리던 계행의 실체가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스님은 근엄한 율사이면서도 포교와 불사에 있어 여느 스님 못지않은 왕성한 활동력을 보이고 있다. 어린이와 복지, 포교 등 다양한 분야의 불사를 추진하면서도 한 점 흐트러짐이 없는 스님의 모습에서 계행을 통한 수행의 힘을 느끼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스님은 일주일 중 절반을 부산에서, 나머지 절반을 송광사에서 보내고 있다. 총림의 율원장 으로 허허로운 일상에 묻힐 만도 하건만, 부산의 다닥다닥 붙은 조밀한 집들 사이에 위치한 관음사에서 일주일의 절반을 보내는 것은 자타가 불이이고,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스님은 사회복지법인 ‘늘 기쁜 마을’을 설립하고 복지관을 운영하며 중생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있을 뿐 아니라 어린이 포교의 마지막 보루라 할 수 있는 사단법인 동련의 이사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일들을 하다 보니 과연 율사로서의 본분사인 지계 청정이 가능할 지 한편으로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천진불 양성의 일등공신

스님을 친견하기 위해 오른 관음사의 대웅전과 원통보전은 평일 오전인데도 정근하는 불자들로 발 딛을 틈조차 없었다. 제자들은 스승을 닮는다 했던가. 이들의 남다른 열기에 감화 돼 “불자들이 율사인 스님과 같이 모두들 지계제일 같다”고 말하자 스님은 손사래를 치며 그러한 시각을 바로 교정한다.

“계, 정, 혜는 부처님 제자가 되기를 서원한 불자라면 당연히 실천할 의무이지요. 요즈음 사람들은 율사를 아주 특별한 소임이라고 여기지만 어디 부처님 당시 율사라는 소임이 있었나요? 구분하고 나누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통점을 찾는 겁니다.”

스님은 율사라는 소임 자체를 마땅찮아 했다. 수행자가 물고기라면 계율은 물과 같은 것. 출가 수행자라면 계율이 몸에 체화 돼 따로 느끼지 못할 정도가 돼야 하는데 세태가 그렇지 못하니, 새삼스레 율사라는 소임이 부각되고 있다는 것이 스님의 생각이다. 그럼에도 스님은 스스로가 율사로 불리게 된 과정에 대해 “매듭을 지어서 단계를 오르기보다는 물이 흐르듯 따라 온 자리가 여기”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해인사 강원에서 수학할 당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해인 율원이 개설됐어요. 출가자로서 기본적으로 계율은 알아야 된다 싶어 강원을 졸업하고 바로 율원에 들어갔지요. 그 때 율원 학인들은 거의 매일 논강을 했습니다. 1년 뒤 7명 중에서 5명이 졸업했고 그 후 종단에 단일계단이 개설되면서 자연스럽게 심부름을 하게 됐지요.”

지현 스님은 출가 이후 줄 곧 계율과 밀접한 시간을 보냈다. 1981년 조계종 단일계단 설립 이후 1991년 행자교육원 설립과 각종 승가고시까지. 율사로서 스님의 모습은 조계종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스님은 1998년 송광사 율원장 소임을 맡게 됐다. 이후 근 10여년을 율원의 학제를 개편하고 총림 내 위상을 새롭게 정립하는 등 송광 율원이 조계종 대표 율원이 되기까지 적잖은 땀을 흘려야 했다.

스님이 율사가 되기까지에는 은사인 조계총림 방장 보성 스님의 덕화가 컸다. 충북 문경에서 봉암사를 놀이터 삼아 어린 시절을 보냈던 지현 스님은 성년을 눈앞에 둔 19세에 마음밭을 일구겠다는 일념으로 출가했다.

속리산 중사자암에서 행자 생활을 하며 퍼런 수행의 날을 벼리던 당시 지나가는 길에 암자에 들은 보성 방장 스님과의 만남은 말 그대로 일대사 인연이었다.

“스님이 우연히 중사자암에 들으셨는데 이제 막 출가자의 길을 걷고 있던 저를 그윽히 보시더니, 보현행원품과 예불대참회문을 손에 주시면서 상좌로 받아주셨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지중한 은혜이지요. 이후로 보현행원품은 출가 생활의 사표가 됐고, 예불대참회를 통한 절 수행은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인욕의 힘을 주는 명약이 됐지요.”

스님은 계를 내리는 전계대화상을 맡고 있던 보성 방장 스님을 곁에서 모시면서 계율을 더욱 철저하게 지킬 수 밖에 없었고, 이런 분위기는 가랑비에 옷이 젖듯 스님을 자연스럽게 율원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이후 단일계단 수계식과 행자교육원, 송광사의 율원에서 소임을 맡게 되면서 율전을 펼치고 공부할 기회는 더욱 더 늘어났다. 그러면서 어느날 작은 울림이 가슴 속에서 터져 나왔다. “계, 정, 혜 삼학은 행복으로 가는 평등한 전제조건”이라는 점이 지식이 아닌 지혜로 터져 나온 것이다.

호스피스 양성해 자비행 실천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고 싶어하지요. 그러나 행복은 특별한 것이 아니예요. 지금 이 순간 느끼는 것이 곧 행복입니다. 행복은 연꽃과 같습니다. 연꽃의 어머니는 진흙이지요. 그러니까 행복의 사바세계가 어머니가 되겠지요. 진흙에서 시작하는 것이 바로 대승불교의 요체입니다.”

스님은 고고한 율사의 삶에서 진흙으로 돌아갈 것을 발원했다. 계율은 더러움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움을 깨끗함으로 정화시키는 것이 올바른 뜻일 터였다.

그렇게 해서 인연이 닿은 곳이 부산 관음사였다. 1989년 도심 포교의 깃발을 들고 홀로 돌진하는 무소의 뿔처럼 당당하게 진흙 속으로 발을 디딘 것이다. 스님은 관음사에 오자마자 어린이 법회부터 창단했다.

“어린이들은 어른의 아버지입니다. 어린이들의 맑은 눈동자를 통해 탐, 진, 치를 씻어 낼 수 있다는 사실에 어른들은 늘 감사해야 해요. 부처님과 가장 닮은 존재가 어린이입니다. 부처님을 만나는 일을 주저할 이유가 없었지요.”

각박한 현대사회에서는 어린이도 결코 천진불일 수 없다는 말들이 있다. 작은 마음에 급속하게 퍼지고 있는 이기와 물질 문명의 찌꺼기들이 동심을 갉아먹는 상황이다. 때문에 어린이 포교도 이제는 어른 포교만큼이나 어렵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스님은 단 한명의 불교신자도 없던 부처님 당시의 막막함을 생각하며 힘을 낸다고 한다. 이제는 든든한 교단이 있고, 고민을 나눌 도반도 있고, 불교를 외호하는 수많은 불자들이 있는데, 어린이 포교가 어렵다고 회피하는 것은 직무유기라는 것이 스님의 생각이다.

스님이 어려운 절 살림에도 10여년 전 부산 사하구 다대동의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에 두송종합사회복지관을 개원, 어려운 이웃들의 눈물을 닦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최근 스님의 관심은 호스피스 교육과 카운슬러 양성으로 향하고 있다. 호스피스만큼 자신의 삶을 겸허하게 그리고 감사하게 만드는 봉사도 드물다. 상담 또한 남의 처지를 통해 자신의 현재를 사랑하게 만드는 기회이기에 호스피스와 상담은 자신을 관하는 수행과 직결된다는 것이 스님의 지론이다. 자신에 대한 감사는 곧 타인에 대한 존경과 신뢰로 이어진다. 자신을 긍정하고 사랑할 수 있을 때 주위를 아낄 수 있다는 것 또한 만국 공용의 진리인 것이다.

스님이 불자들을 위해 직접 편집한 ‘행복한 삶을 위한 예경 명상’은 부산 지역 불자들 사이에서 톡톡한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프랑스 프럼빌리지에서 전세계 사람들을 교화하고 있는 틱낫한 스님의 저서를 바탕으로 구성된 예경 명상에는 삼귀의계, 다섯가지 마음다함 훈련법(오계), 보왕삼매론, 반야심경 등이 실려 있는데 관음사를 비롯해 사단법인 동련, 사회복지법인 늘기쁜마을 산하기관에서 아침 마다 암송된다.

“깨어있음이 위빠사나입니다. 그 깨어있음을 유지하는 것이 사마타입니다. 이것은 제가 만든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달라이 라마와 틱낫한 스님의 저서를 볼 때마다 똑 같은 가르침을 전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감사의 인사를 올리곤 하지요.”

“상담은 곧 나를 관하는 수행” 

스님은 ‘한국 불교’라고 내세울 것이 아니라 너와 나의 구분을 짓지 않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인류를 위한 보편타당한 진리”라고 확신한다. 2000년 달라이 라마를 친견한 것도, 2003년 틱낫한 스님의 한국 방문 시 부산 일정을 소화한 것도 그간의 믿음과 수행이 시절 인연으로 이어진 것이리라.

“행복은 아주 가까이에 있습니다. 이 순간 일상에서 느끼는 작은 기쁨들이 바로 행복입니다. 일상의 행복을 자주 경험할수록 우리의 삶은 극락의 세계로 다가갑니다. 그러한 삶을 살 때 부처님의 자리에 앉는 겁니다. 생활 전체가 선이고 지혜인 삶이 필요합니다. 어느 시간, 어느 장소에서건 계, 정, 혜가 항상 함께 하길 바랍니다.”

만법귀일 일귀하처. 수좌 스님들의 선방에만 화두가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하나로 아낌없이 중생계로 회향될 때, 그 모든 것이 또한 화두일 터이다. 율사에서 포교사, 복지사로 중생을 위한 스님의 애틋한 마음이 한여름 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청량수가 아닐까.  
 
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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