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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북경 당국으로부터 추방령 받아

기자명 법보신문

민족주의 사상 바탕 독립 주창
의열단에서 김원봉과 첫 만남

성숙은 창일당 기관지 『혁명』을 한글판으로 발행하기 위해 직접 판을 써서 석판으로 인쇄하는 작업에 심혈을 기울이면서 점차 시력을 잃어갔다. 보다못한 창일당 동지들이 치료를 권했음에도 차일피일 미루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아 자리에 주저앉는 일을 겪고서야 마지못해 병원을 찾았다.

성숙의 눈을 검사한 북경협화의과대학 의사는 “도대체 무슨 일을 했기에 눈이 이렇게 됐소. 조금만 늦었더라면 이대로 실명하고 말았을 것이오”라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말을 들으면서도 성숙은 그저 헛웃음만 지을 뿐, 머릿속으로는 기관지에 어떤 내용을 담을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이처럼 실명 위기에 이르면서까지 열정적으로 발행했던 『혁명』은 대부분 민족운동과 공산운동에 관한 내용으로 채워졌다. 민족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이론이 뒤섞이면서 일부에서는 성숙을 향해 공산주의자 또는 무정부주의자라고도 했고, 또 한편에서는 사회주의자라고도 했다. 그러나 성숙의 기본 사상은 언제나 민족주의였다. 본인 스스로도 “항상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생각하고 활동했지, 다른 어떤 이념을 근간으로 삼은바가 없었다”고 할 정도였다. 성숙이 민족주의적 입장을 택한 것은 지나치게 팽창하는 국제주의 사고를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당시 사회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은 민족주의를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로 폄하 하면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강조한 마르크시즘과 레닌이즘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성숙과 창일당 동지들은 “민족문제가 더 크며 민족이 독립된 뒤에나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있을 수 있지, 민족의 독립 없이 무엇이 되겠는가”를 역설했다. 그리고 “우리가 독립하기 위해서는 민족이 단결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논리를 기관지 『혁명』을 통해 펴 나가기 시작했다. 기관지는 처음 발행할 때 32쪽 분량으로 800부를 인쇄했다. 그러나 민족주의 정신에 입각한 성숙의 주옥같은 논리가 빛을 발하면서 6개월만에 3000명의 고정독자가 생겨났다. 또 이 『혁명』은 만주와 시베리아를 비롯해 멀리 호놀룰루, 캘리포니아, 유럽에 있는 조선 학생들에게 발송되었고, 조선에도 반입되면서 청년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기에 이르렀다. 성숙은 창일당에서 기관지를 발행하며 주옥같은 논설로 대중들을 설득해 나가는 한편, 고려유학회를 조직해 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또 신채호와 유우근의 추천으로 조선의열단에 참여해 선전부장으로 활동하는 등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을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이 무렵 의열단에서 만난 김원봉과 가까운 사이가 되어 항일 투쟁방식에 대해 많은 토론을 하기도 했다.

성숙을 자신의 이론적 스승으로 섬기며 창일당에서 함께 기관지를 발행하는 임무를 맡았던 김산(장지락)은 이 때의 성숙을 “검은 안경을 쓰고 나이보다 좀 노숙해 보이면서도 날카롭고 지적인 정신력을 뿜어내는 사람”으로 표현하며 흠모하기도 했다. 성숙은 또 수많은 논문을 기고하며 공산주의자와 민족주의자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질 때면 논리로 늘 상대를 압도했다.

그러나 창일당은 창당 2년 여 만에 위기에 봉착했다. 기관지 『혁명』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일본의 신경이 날카로워졌고, 급기야 일본이 공식적으로 북경 당국에 창일당 활동 제재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여기에 손문이 이끄는 국민혁명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가 더해지면서 결국 북경 당국으로부터 추방령을 받게 됐다. 이에 따라 창일당은 사실상 해산했고, 성숙은 북경에서의 활동을 접기로 결심하고 근거지를 광동성 광주시로 옮기기로 했다.
 
sjs8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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