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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광동에서 유학한국혁명청년회 창립

기자명 법보신문

독립운동 계파간 결속에 주력
‘혁명운동’ 창간, 주필로 활약

1925년 겨울. 성숙이 혁명 활동을 위해 광동으로 떠날 때 김산(장지락) 역시 동행을 결심했으나, 서로 다른 길을 택해 독립운동에 매진하기로 하고 아쉬운 이별을 했다. 성숙이 광동으로 활동 근거지를 옮길 무렵 광동은 시베리아나 만주 등 곳곳에서 옮겨오는 조선 청년들의 발길로 분주했다. 이른바 광동꼬뮨의 서곡이 울리고 있었던 것이다.

성숙이 봉선사를 떠나 북경으로 유학한 1923년, 중국에서는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이 형성되었었다. 북경 민국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그해 11월 국민당과 공산당이 합작하는 소위 ‘국공(國共)합작’이 이뤄졌고, 소련의 지원을 받으며 광동을 중심으로 봉건군벌을 타파하려는 북벌주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소련의 군사·정치 고문이 광동에 도착했으며 장개석을 교장으로 하고 주은래가 정치부 주임을 맡은 황포군관학교가 세워졌다. 따라서 광동은 중국의 정치변혁이 꿈틀거리는 활화산이 되어 있었고, 중국에서 일어난 이 새로운 열기가 일제로부터 빼앗긴 조국을 해방시키는 첫 걸음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된 많은 조선인들이 광동으로 모여들고 있었던 것이다.

성숙은 이러한 시기인 1925년 겨울 광동에 도착해 국립 중산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는 한편 소위 중국혁명을 이루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대륙의 급진적 혁명가들과 교분을 쌓아갔다. 중산대학에서 자신의 공부에 매진하면서 조선 학생들을 만나 자주 토론을 벌이기도 했던 성숙은 조선인들이 이곳 광동에서 서로 계파를 형성하고 독자적 활동을 전개하는 과정을 보며 단일화의 필요성을 느꼈다. 당시 광동에는 의열단 단원을 비롯해 만주의 독립군 400여 명이 의용병으로 왔고, 러시아 10월 혁명 이후 시베리아에서 무장 게릴라 활동을 하던 100여명도 와 있었다. 그리고 모스크바 한인 유학생 수 십 명이 보로딘(소련에서 파견된 중국고문단의 고문)의 소련 고문단 일행에 섞여 도착하기도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항일에 대한 생각이 같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나 지리적으로 다양한 배경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각 집단간의 갈등을 피할 수는 없었다. 성숙은 이들을 보면서 통일된 지도부 결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의열단 리더인 김약산과 손을 잡고 조선인들의 분열상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26년 늦은 봄, 조선인들로 구성된 각 집단과 정파를 대표하는 중앙동맹체 성격의 유학한국혁명청년회를 결성하고 창립대회를 열었다.

유학한국혁명청년회 창립대회는 성공적으로 치러졌고, 창립대회 자리에서만 300명의 조선인들이 회원으로 가입했다. 창립대회에서 연맹의 중앙위원으로 선출된 사람들은 대부분 공산주의자였으나, 성숙과 김약산 등 공산주의자가 아닌 몇명도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성숙은 유학한국혁명청년회 창립 이후 민족주의 사상에 근거해서 활발하게 독립의 당위성을 설파했고, 연맹이 기관지 『혁명운동』을 창간하면서 자연스럽게 대중의 추천과 동의로 주필이 되었다. 성숙은 이 때도 북경에서 창일당과 의열단원으로 활동할 당시 이용하던 김충창이라는 가명을 쓰고 있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미 창일당 기관지 『혁명』을 통해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고, 그가 주필을 맡아 기관지를 발행하는데 이론이 없었다.

북경에서 함께 활동하다가 헤어졌던 김산도 이 단체에 가입해 간사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고, 둘은 또 다시 기관지 발행 작업을 같이 하게 됐다. 성숙은 이때부터 연맹의 활동에 필요한 여러 가지 선언들의 기초를 만들었다. 그리고 『혁명운동』을 통해 “일본 제국주의 정책에 반대하며 피압박 민족의 해방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나섰다. 

sjs8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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