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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터민들의 눈물서 관음의 자비 봅니다”

기자명 법보신문
  • 인욕
  • 입력 2007.09.03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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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교사단 통일분과위원장 허 정 희 포교사

2002년 9월, 조계종 포교사단의 탈북자 지원모임 결성 소식에 허정희(66·만덕행) 포교사는 누구보다 기뻐했다. 자신도 이제 소외된 이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불사에 기꺼이 동참할 수 있다는 반가움이 밀려왔다.

그는 1995년 포교사가 된 직후부터 소녀원 봉사팀, 염불 봉사팀 등에서 활동해 왔다. 그러나 맞지 않은 옷을 걸치고 있는 듯 마음은 언제나 불편하기만 했다. 비록 어린 나이이지만 범죄를 저지른 소년원 아이들을 상대하는 것도 그렇고, 망자와 비통에 잠긴 가족들을 대면하는 것도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또한 상(相)을 내는 모습이기에 부처님의 법을 전하는 제자로서 참회하며 마음을 다잡아 보기도 했으나 그때 일뿐, 불편한 속내는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포교사 역할에 회의감마저 생겨날 즈음, 자유를 찾아 북한을 탈출한 새터민 지원을 위해 통일분과위원회를 구성한다고 하니 반갑고 고마웠다.

“근기가 약해서인지 마음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어요. 그렇다고 누구한테 하소연할 수도 없는 일이고요. 그저 지금보다 마음 편히 동참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것 같아 선뜻 새터민 지원팀에 동참하게 됐어요.”

이생의 소명은 새터민의 어머니

허 포교사는 탈북자들의 사회 정착 지원 기관인 하나원의 문을 처음 두드린 그해 10월을 잊을 수 없다. 호기심과 두려움에 가슴은 두방망이질 쳤다. 처음부터 그들이 마음의 문을 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낯선 이방인에 대한 경계심은 생각보다 강했다. 시키고 묻는 것에는 스스럼없이 응해줘 잠시 희망을 품어봤다. 그러나 그것은 오랫동안 상명하복(上命下服) 식 교육만을 받아왔기 때문에 몸에 밴 모습이었다. 가슴이 저리고 아팠다. 두 달의 시간이 지나도록 그를 대하는 새터민들의 태도는 여전히 냉랭하기만 했다. 그 당시 그가 몸담은 곳은 하나원 성남분원, 여성 탈북자들이 모여 생활하는 곳이다. 일주일에 한 차례 봉행되는 법회에는 전체 100여명 중 겨우 대여섯 명이 동참할 뿐이었다.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부처님의 전법제자로서 더 이상 물러서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팀장 소임을 자청해 그날부터 주말은 물론 공휴일까지 꼬박 새터민들과 함께 보냈어요. 무작정 인사를 건네고 대화를 하며 법회에 나와 볼 것을 권유했습니다.”

옛 조사 스님네들도 춥고 배고파야 공부할 마음이 동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의 의지는 그만큼 강하고 간절했다. 지극 정성은 태산도 움직이는 법, 꽁꽁 얼어붙은 새터민들의 마음이 녹기 시작했다. 하나원에도 자연스레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법회 참여 인원이 하나 둘 늘더니 부처님오신날 즈음에는 30여명이 법석에 동참해 법당에 제법 훈기가 돌았다. 게다가 허 포교사를 ‘어머니’라 부르며 마음에 담아 두었던 고통과 고민을 상담해 오기도 했다. 드디어 포교사로서 성공의 길을 걷는 듯 뿌듯함이 밀려왔다.

“하루는 한 아이가 저에게 배고픔을 아느냐고 물어보더군요. 허리를 조르다 졸라, 더 이상 졸라지지 않는데도 배가 고파 울어본 적이 있느냐면서요. 그리고 자신의 가족들이 그렇게 눈앞에서 죽어갔다며 제 품에서 우는 거예요.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그것은 동정심에 흘리는 그런 눈물이 아니었어요. 부끄러움이었습니다. 지금껏 저는 이들을 돕는다는 자만감에 빠져 스스로의 행동에 만족하고 있었을 뿐이었던 거예요. 그 마음을 보니 어찌나 창피스러웠던지….”

그날 밤 허 포교사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껍데기에 사로잡혀 상을 내는 데만 열중했던 자신의 과거를 부처님께 참회했다. 그마저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밀려와 마음을 경책했다. 그리고 인연의 끈이 다하는 날까지 하심하며 그들의 참다운 어머니가 될 것을 부처님께 발원하고 또 발원했다.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가장 큰 장애는 경제적인 문제. 동분서주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탈북자들에 대한 교계의 관심은 여전히 미비하기만 하고, 법회 후 공양 한 끼 대접하는 것조차 온전히 그의 주머니를 털어야만 가능했다. 개신교나 가톨릭으로 가면 공양은 물론 선물까지 한아름 받을 수 있지만 법당은 그저 마음 뿐이었다. 그래도 꼬박꼬박 법당을 찾는 딸들을 보면 어찌나 고맙던지 저절로 눈물이 흘렀다.

천도재 법석은 언제나 눈물바다

그러던 어느 날 몇몇 딸들이 부모님의 제사를 부탁해 왔다. 도망자 신분으로 지내다 보니 부모님의 사망 소식을 듣고도 8년째 한 번도 제사를 모시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가까운 지인들과 논의한 결과 새터민 전체를 위한 천도재를 봉행하는 것이 좋겠다는데 뜻을 같이했다. 그렇게 2003년 6월 처음 봉행된 천도재는 하나원 내 대표적 행사로 자리를 잡으며 두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봉행되고 있다.

“천도재가 봉행되는 날이면 족히 100여명은 모여 듭니다. 조용한 흐느낌으로 시작된 천도재는 언제나 눈물바다로 회향하곤 하지요. 그렇지만 천도재를 회향한 후 이들의 얼굴에는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뒤 맑게 개인 하늘처럼 밝은 기운이 감돕니다. 그 얼굴을 볼 때마다 함께 밝아집니다.”

탈북자들은 하나원에서 사회적응교육, 직업훈련 등을 받은 후 퇴소해 각자의 삶을 꾸려나간다. 그의 전화번호 수첩은 수백 명의 이름과 함께 전화번호들로 빼곡하다. 모두 하나원에서 맺은 인연들이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는 이들은 60여명. 퇴소 후 연락 한 번 못해본 이들도 많다.

무심해서가 아니다. 새터민들은 하나원 퇴소 후 신분 노출을 꺼려 전화번호를 수시로 바꾸기 때문에 대부분 먼저 연락이 오기 전에는 소식을 알 수 없다. 그렇다 보니 간혹 다른 사람을 통해 잘 살고 있다는 소식만 들어도 그저 반갑고 고마울 따름. 아이를 낳았다는 연락에 선물을 준비하기도 했지만, 곧바로 연락이 두절돼 전해주지 못한 적도 많다. 부처님께 엎드려 산모와 아이의 건강을 축원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어느새  친 딸을 그리워 하듯 두 눈에는 굵은 이슬이 맺히기 일쑤다.

연락이 닿는 딸들도 걱정이 되기는 마찬가지. 오랜 도피 생활과 긴장 속에 생활하다 보니 대부분이 위장병과 여성 질환으로 고생하고 있다. 잘 먹기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경제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그러지도 못한다. 무엇보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그로서도 도울 방법이 없는 가장 슬픈 일이다.

작은 관심이 이들에겐 큰 희망

“관세음보살님을 끊임없이 부릅니다. 대자대비의 천수천안으로 새터민 딸들의 고통을 어루만져 주기를 바라면서요. 새터민에 대한 불자들의 관심이 조금이라도 생겨나기를 기원합니다. 하나원을 퇴소할 즈음, 딸들은 신심 깊은 불자가 돼있지만 생활고와 외로움에 개종을 하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됩니다. 교계의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한 여름 폭염도 찬기운이 서린 바람 앞에 물러가고 있는 요즈음, 그에겐 또 하나의 걱정과 아픔이 밀려온다. 민족의 대명절 추석이 20여일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새터민들에게 추석은 떠나온 고향과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한없이 눈물을 흘릴 날이 될 것이다. 허 포교사는 수많은 불자들이 따뜻한 손으로 모든 새터민 딸들의 차가운 눈물을 닦아줄 그날을 그리며 지극한 마음으로 관세음보살을 부른다.
 
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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