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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두군혜의 일본 유학으로 이별

기자명 법보신문

한달여 답장 없자 석달만에 귀국
국민당에 쫓겨 아가씨 집에 피신

성숙은 김산에게 “자네가 아직 여인을 만나지 못해서 그렇지, 아마도 자네가 연애를 한다면 나보다 훨씬 더할 것”이라며 스님의 신분으로 수행을 했던 자신이 연애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상황을 설명하며 이해를 구했다.

성숙은 그러면서도 전과 다름없이 열심히 활동했으나, 그의 풍부한 학식과 순수한 열정에 눌려 그동안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반대파 사람들은 “김충창은 지나치게 낭만적이어서 독립투쟁과 혁명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김산은 성숙을 이해하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결국 성숙을 지지하고 두 연인을 돕기까지 했던 김산은 성숙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혁명가도 남자이고 인간이지 않은가. 어찌되었건 너희들이 반대해도 두 사람의 연애는 계속될 것이니 더 이상 비난하지 말라. 그리고 지금 너희들은 너희들에게 호감을 갖고 접근하는 아가씨가 아무도 없기 때문에 질투하고 있는 것”이라며 성숙을 옹호하고 나섰다.

하지만 김산은 밖으로 이렇게 성숙을 지지하면서도 두 사람의 연애가 계속될 경우 혁명운동에 미칠 악영향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오성륜과 함께 두 사람의 연애를 끝내게 할 방법을 찾기로 했다. 오성륜은 모스크바에서 활동하다가 1926년 겨울 광동으로 오면서 성숙과 김산을 찾아왔다. 세 사람은 북경에서부터 남다른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성숙은 정치이론가였고 오성륜은 실천행동가였으며 김산은 이들 두 사람의 제자인 동시에 혁명 동지의 관계였다. 따라서 모스크바에서 돌아온 오성륜이 이들 둘을 찾은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런 두 사람이 성숙의 연애를 중단시킬 방안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앉은 것이다. 해결책은 단 하나, 광동 아가씨가 당초 예정대로 유학을 가는 것 뿐이었다. 드디어 김산은 성숙도 모르게 두군혜를 만났다. 그리고 “지금 조선청년들은 생사를 걸고 혁명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자칫 행보를 잘못할 경우 조선청년들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우리들의 앞날을 책임지고 이끌어야 할 충창 동지가 아가씨에게 마음을 빼앗겨서 할 일을 다하지 못하고 있어 걱정이 많습니다. 잠시 유학을 다녀오시면 그동안 이곳 사정도 정리될 것 같은데 어떠십니까”하면서 두군혜의 생각을 물었다.

성숙을 만나면서 조선의 상황이나 광동에 있는 조선청년들이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자세하게 알고 있었던 두군혜는 김산의 말에 고개를 숙였다. 이어 며칠 후 성숙에게 예정된 유학 길에 오를 것을 통보하고 일본으로 떠났다. 그러나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서 성숙을 사랑하는 아가씨의 마음까지 멀어진 것은 아니었다. 아가씨는 매일같이 편지를 보내 성숙의 안위를 묻고 사랑을 확인했다. 그렇게 두 달여가 지난 어느 날 성숙은 국공전쟁이 진행중인 무한의 사정을 살피기 위해 비밀리에 광동을 떠났다. 그러면서 3주 가량 두군혜의 편지에 답장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성숙으로부터 답장이 끊기자 초조해진 두군혜는 한 달을 참지 못하고 일본 유학 석 달만에 다시 광동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같은 시간 좌익을 돕기 위해 무한을 방문중이던 성숙은 전세가 여의치 못한 상황을 확인한 후 다시 광동으로 돌아왔고, 1927년 12월 국공분열로 인해 발생한 광동꼬뮨에 가담해 시가전을 지도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미 국민당 군대에 밀려 좌익은 무자비하게 진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성숙은 12월 13일 중산대에서 열린 한국인 모임에서 혁명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200여명의 동지들을 규합했으나, 전세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애인인 두군혜의 집으로 피신해 몸을 숨겨야만 했다. 

sjs8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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