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⑮ 도선사 주지 혜 자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산사 순례하며 108번뇌 털어냈지요”

8~9년여에 걸쳐 108산사를 순례하는 인욕의 수행 프로그램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도선사 108산사기도순례회가 지난 9월 13일 창립 1주년을 맞았다.

지난 1년간 108산사 순례회의 활동은 일거수일투족 세간의 관심거리였다. 매회 3700여명에 이르는 대규모 순례객, 도로를 가득 메운 버스의 행렬. 공격적 선교로 유명한 개신교와 기세등등하게 세를 확장하고 있는 가톨릭의 성장세를 보면서 느꼈던 불자들의 ‘패배주의’를 한방에 날린 그야말로 한국불교 신행 역사상 쾌거 중에 쾌거였다.

8~9년 걸리는 인욕 대장정

그러나 이런 외적인 부분보다 더욱 관심을 끈 것은 이들의 치열한 구도 열정이었다. 비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몰아치는 악천후 속에서도 한 달에 한 번 변함없이 산사를 찾았다. 참가 인원만 수천 명에 이르는 유례없는 엄청난 규모에도 언제나 질서 정연했고 신심은 한가지로 정갈했다. 일주문에 이르면 열을 지어 대오를 이뤘고 도량 안에 들어서면 108참회기도문과 신묘장구대다리를 독송하며 번뇌를 여의고 맑은 깨달음을 얻기를 손 모아 발원했다. 또 순례단원을 이끌고 있는 도선사 주지 혜자 스님의 인도로 절의 연혁을 따라 읽으며 도량 불사에 매진했던 과거와 현재의 지중한 인연공덕들의 고마움을 알알이 가슴에 아로새겼다.

특히 참가자들은 순례 때마다 혜자 스님으로부터 사찰명이 적힌 염주 알을 보시 받았다. 아마도 8~9년에 이르는 인욕의 대장정이 끝나고 나면 신심의 땀방울이 일궈낸 자랑스러운 108염주가 참가자 모두의 손에 들리게 될 것이다. 정혜결사가 옛 스님들의 결사였다면 108산사순례는 21세기 신행의 새 장을 여는 재가불자들의 목숨을 건 구도의 결사인 셈이다.

“신도들과 함께 부처님께 소풍가는 마음으로 108산사를 순례하며 108번뇌를 소멸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동참자가 생길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그러나 어느덧 108산사순례가 불교계를 대표하는 신행이 돼 버렸습니다. 유사한 단체들도 생기고, 각 지역에서 와달라는 러브콜도 쇄도하고. 그래서 고민도 깊어요. 중압감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요. 그래도 무사히 1주년 맞게 돼 다행입니다. 더욱 정진해야지요. 믿을 것이 부처님 밖에 더 있겠어요.”

출발은 소박했다. 세계 유일의 부처님 지골사리를 모시고 있는 중국 법문사와 자매결연을 맺고 돌아오는 길에 불현듯 108산사를 순례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당시 자매결연에 동참한 신도수가 108명. 스님이 직접 발로 써 내려간 『혜자 스님과 함께 마음으로 찾아가는 108산사』라는 책의 출판도 이 무렵이다.

“처음엔 108산사니까 108명으로 순례단원을 꾸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런 계획이 입소문을 타자 참여자들이 계속 늘어요. 1000명 2000명. 3000명. 그래서 1080명으로 늘려 잡았던 목표도 급하게 수정하게 했지요. 이런 우여곡절 끝에 대략 3700여명 정도가 매달 순례에 참여 하고 있습니다.”

스님에게 순례는 그야말로 고행의 연속이다. 숫자가 너무 많다보니 전국 각지에서 대형 버스 50~60대가 동원된다. 또 사찰의 협소한 장소 문제로 2~3차례 나눠서 사찰을 방문해야 한다. 스님은 사전답사까지 포함해, 같은 사찰을 한 달에 서너번씩은 가고 같은 법회를 그만큼 되풀이해야 한다. 참가자의 접수부터, 버스 대절, 순례부터 무사귀환까지. 스님의 일상은 그야말로 모두가 산사 순례의 연장선이다.

“개인적인 시간이 거의 없어요. 사찰의 각종 재일과 행사를 챙기고, 108산사 순례에 신경을 쓰다보면 도무지 다른 일에 여력을 쏟을 수가 없지요. 그래서 건강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8년 이상이 남은 대장정인데, 제가 쓰러지면 안 되지요. 순례에 참여한 모든 불자들의 손에 108염주가 들릴 때까지 아플래야 아플 수가 없어요.”

많은 사람들이 몰리면서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가 갈수록 높아갔다. 나이 상한제를 도입, 연세가 너무 많은 노보살들의 참여를 최대한 배제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러한 배려도 참가를 원하는 노보살들의 굳은 신심에 자꾸만 틈이 생겼다.

“하루는 연세가 지긋한 노보살님 몇 분이 저를 찾아요. 그리고 하소연을 하더군요. 순례를 못 가게 해서 서러워 한참을 울었다고. 마지막까지 108산사를 참배하며, 번뇌를 소멸하고 죽을 수 있게 도와 달라고. 마지막을 보람 있게 회향하고 싶다고 애원을 하더군요. 또 108염주가 완성되면 가보로 물려주겠다는 분도 계세요. 가슴이 찡하대요. 그래서 남모르게 순례단에 넣어 들였지요.”

실제로 스님의 가슴이 철렁하는 사건도 있었다. 순례 도중 노보살 한 분이 약간의 상처를 입은 것. 그런데 부랴부랴 병실에 입원시키고 보니, 공교롭게 병실의 방 번호가 108번이었다며 스님은 웃었다. 참으로 오묘한 부처님의 인연법이 아닐 수 없었다.

허나 108산사순례회의 활동이 단순히 불자들만의 이기적인 신행에 머물렀다면 이처럼 많은 이들의 뜨거운 박수와 호응을 얻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머리수로 신행 척도를 잰다면 개신교의 심령대부흥회를 어찌 능가할 수 있겠는가.

108산사순례회는 자신들만의 신행을 넘어 조금씩 중생의 팍팍한 삶에 시선을 맞췄다. 신행 중에서 보시만한 신행이 없고, 육바라밀의 으뜸도 역시 보시바라밀일 터였다. 108산사순례회의 ‘농촌 살리기 운동’과 ‘환경지킴이 활동’은 이렇게 시작됐다. 사찰 인근의 복지관에 모든 고통을 여의라는 뜻의 108만원을 보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농촌-환경-포교, 새 신행 창출

“지난해 3번째 순례지인 통도사 순례를 끝내고 주차된 차량으로 돌아오는데, 사람들이 너무 늦어요. 그래서 돌아봤더니, 삼삼오오 주변에 흩어져 농산물을 사고 있더군요. 그래서 야단을 쳤지요. 다른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왜 이렇게 늦느냐고. 그랬더니 보살들이 그래요. 서울로 돌아가면 남은 식구들을 위해 저녁 시장을 봐야 하는데, 모두가 중국산이어서 살 것이 없다고. 그래서 기왕 농촌에 왔으니, 이곳에서 청정 농산물을 사가려고 그런다고 하더군요. 순간 머릿속이 번쩍 하대요. 한미 FTA 체결로 농촌이 고해의 바다에 휩싸여 있는데 내가 참 무심했구나. 참회가 절로 됐지요.”

스님은 바로 실행에 옮겼다. 지난해 11월 29일 4번째 순례지인 송광사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농촌 살리기 운동에 돌입한 것이다. 108산사순례회는 이날 순천시와 송광사, 지역 농민과 농협을 연결, 송광사 일주문 앞에 지역 농산물 직거래장터를 열었다. 4000여 명에 이르는 순례객들이 고객이었다. 순례법회가 끝나자, 직거래장터는 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직접 구매하는 순례단원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덕분에 근심으로 자글거리던 농민들의 주름이 조금씩 기지개를 켰다.

포대화상처럼 곳곳에 희망을

순례지마다 직거래 장터를 개설, 농촌 살리기에 열정을 쏟고 있는 108산사순례회의 아름다운 보살행은 연일 매스컴을 장식했고, 순례에 사회 참여를 접목시킨 새로운 신행 풍속은 불자들의 가슴에 자긍심으로 나래를 폈다. 순례회는 이외에도 환경지킴이를 조직해 사찰 주변 환경을 정화하고, 환경컵을 나눠주며 환경 파괴를 가속화시키고 있는 1회용 종이컵 사용에 경종을 울리기도 했다.

“순례에 참여하는 이들은 모두 한 송이 연꽃입니다. 세상을 맑히는 연꽃 말입니다. 순례단원의 마음은 언제나 사랑과 자비로 넘쳐납니다. 불교에 대한 사랑, 농촌에 대한 사랑, 환경에 대한 사랑, 그리고 순례 때마다 인근 군부대에 4만여 개의 초코파이를 보시하고 있으니, 군에 대한 사랑도 실천하고 있는 셈이지요. 그야말로 4000송이 연꽃이 따로 없어요.”

108산사순례회는 지난 1년, 도선사를 시작으로 통도사, 해인사, 송광사, 경국사, 관촉사, 내소사, 도갑사, 신륵사, 낙산사, 봉정사, 수덕사 등 전국 각지의 주요 사찰 12곳을 차례로 순례했다. 그러나 이는 첫 걸음마일 뿐. 앞으로 7~8년에 걸쳐 백두에서 한라까지 96곳의 사찰을 더 순례해야 한다.

“버스로 이동해야 하는 까닭에 크고 작은 사고라도 날까 항상 노심초사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피 덕분인지 큰 사고 한번 나지 않고 1주년을 무사히 넘겼어요.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연꽃이 열매를 맺듯 순례단원 모두의 손에 108염주가 완성될 때까지 순례를 멈추지 않을 겁니다.”

부처님은 깨달음 이후 길에서 설법하고 길에서 잤으며 길에서 돌아가셨다. 아마도 세월이 흐르고 흐르면 마치 부처님이 남기신 불족석처럼 전국의 산하는 혜자 스님과 108산사순례회가 남긴 발자취로 깊게 낙인돼 있을 터이다.
 
김형규 기자 kimh@beopbo.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