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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추고 존중하면 자비의 마음 보여요”

기자명 법보신문
  • 인욕
  • 입력 2007.10.08 10:29
  • 댓글 0

명지전문대학 민 병 훈 초빙교수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오전 7시, 직장으로 향하는 민병훈(57·원명) 거사의 승용차 안. 은은한 독경소리 가득한 이곳은 움직이는 법당이다. 늘 그렇듯 천수경으로 시작된 아침 예불은 엔진의 온기가 사그라질 때까지 관세음보살 정근이 이어진다.

‘오늘 하루도 지극한 마음으로 살아갈 것을 부처님께 발원합니다.’

천생 불자인 그가 불교와 인연을 맺은 것은 세상일에 온통 몸과 마음을 빼앗겼던 20여 년 전의 일이다. 서울지하철공사에 재직하며 오로지 나와 가족만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을 때다.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는다는 불혹(不惑)의 나이 40, 불자라고 이름만 걸치고 있던 그에게 부처님과의 인연은 어느 날 불쑥 찾아왔다.

불연 맺은 후 이어지는 가피

1990년 봄 어느 날, 아내가 6개월 과정의 능인선원 불교대학 입학을 권유했다. 황혼을 함께 하기 위해서는 부부가 서로 주고받을 만한 공통의 소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불자로서 불교에 대해 최소한의 기본이라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던 차, 아내의 제안은 그의 귀를 솔깃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불자임을 당당히 밝히긴 했지만 그가 아는 것이라곤 부처님께 엎드려 절하고 소원을 비는 정도였으니 이참에 제대로 배워보고 싶었다.
 
“사찰이 아파트 단지, 그것도 상가 한 가운데 위치해 있다는 사실에 처음에는 의심을 품기도 했었죠. 그러나 지광 스님의 강의를 접하면서 이러한 의심은 곧 사라졌고, 오히려 도시민들을 위해 지척에 이러한 공간이 있어야한다는 점을 절감하게 됐어요. 후에 지하철법우회 법당을 시민들을 위한 열린 공간으로 개방한 것도 이러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인연의 끈은 무량겁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법, 불연은 연이어 그를 찾아왔다. 능인선원 불교대학을 졸업한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지하철공사 내에 불자모임을 조직하자는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민 거사를 비롯한 몇몇 간부사원들이 법우회 구성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동참 신청도 줄을 이었다. 그리고 108명이라는 이례적인 창립인원으로 1991년 5월 서울지하철법우회는 탄생했다.

“하루하루가 재밌고 신나는 날들이었죠. 당시는 모임 자체가 자유롭지 못했던 독재정권이 막을 내린 직후라 다양한 친목모임이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나던 시기였어요. 그중에서도 지하철법우회는 회원수가 400여명에 달할 정도로 직장 내에서 가장 알토란같은 단체로  왕성한 활동력을 자랑했습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 지하철법우회에도 위기는 찾아왔다. 1997년 외환위기로 명예 퇴직자가 속출하면서 회원 수가 급감, 법회 운영에 차질을 빚을 정도였다. 위기 탈출을 위해 법우회는 민 거사를 회장으로 추대했다.

“회장 소임을 수차례 고사했지만 회원들의 간청을 마냥 거절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법우회 활성화를 위해서는 직장 내 발언권도 무시할 수 없는데 부장인 제가 과연 지원 요청 한번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섰습니다. 게다가 개인적인 시간을 내기도 그리 녹록치 않은 위치 였고요.”

그러나 고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회장 취임 후 한 달 만에 종합사령실장으로 승진을 한 것이다. 필시 불법 홍포에 매진하라는 부처님의 가피가 분명했다. 그 역시 그렇게 믿고 법우회 활성화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대구지하철 참사 후 下心 새겨

가장 먼저 눈을 돌린 것은 직장 내에 부처님의 법음을 전하는 일이었다. 게다가 일반 시민들도 함께 불법을 접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터. 그렇게 탄생한 것이 지금은 지하철 역사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자비의 말씀(풍경소리)’ 게시판이다. 개신교계가 지하철 역내 ‘사랑의 편지’를 걸어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을 눈여겨 두었던 민 거사는 그 즉시 지하철공사 집행부에 건의해 승인을 받아냈다. 게다가 부산과 광주, 대구 등 지방 지하철 역사뿐만 아니라 전국의 철도역에도 ‘자비의 말씀’이 설치될 수 있도록 주도적 역할을 자청하고 나섰다. 그 결과 지방 지하철역과 철도역에는 개신교의 ‘사랑의 편지’보다 ‘자비의 말씀’이 먼저 게시될 수 있었다.

‘자비의 말씀’ 사업의 성공에도 법회 동참자는 여전히 제자리였다. 주요 원인 중 하나는 회원들의 근무 시간이 일정치 않고 수도권 각지에 산재된 특수한 근무환경으로 법회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 그래서 고안한 묘책이 인터넷 카페(cafe.daum.net/ssbwh)를 통한 신행활동이다. 매달 법문 내용을 요약해 법우들에게 제공하고, 사경과 염불, 수행 코너를 별도로 운영하는 등 회원들의 신심을 고취시킬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시도했다. 또 법요집 발간, 큰스님 초청법회, 회원 수계식,  자원봉사 등 단일 직장 신행모임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알찬 행사와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다양한 노력이 더해지면서 지하철법우회도 서서히 왕성한 옛 모습을 되찾아 갔습니다. 회원 하나하나가 노력한 덕분일 테지요. 그렇지만 당시는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2003년 2월 18일, 결코 지울 수 없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대구지하철 중앙로역에서 방화로 인한 대형화재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192명이 사망하고 148명이 부상을 당한 참사였다. 2월 25일 서울지하철법우회 법당이 위치한 잠실운동장역은 요령의 서러운 울음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대구지하철 참사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위령재가 봉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법우회 회원들은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하며 희상자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했고, 108배를 이어가며 고인의 넋을 위로했다. 민 거사 역시 부처님께 엎드려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참담하고 부끄러운 마음뿐이었다.

후학 양성하며 사회에 회향

“한 정신이상자의 방화로 빚어진 참사였지만 결국 이웃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관심이 만들어낸 인재였던 거예요. 지금껏 잊고 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그 순간 깨닫게 됐습니다.”

참회하고 또 참회했다. 대형 참사가 발생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도 컸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외치면서도 이웃의 아픔을 진정으로 돌보지 못한데 대한 참회의 마음이 더욱 컸다. 지금까지 법우회의 외형에 집착한 나머지 가장 중요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하나의 도구로만 활용한 것에 대한 참회였다. 그리고 낮추고 낮춰 더 이상 낮출 수 없을 때까지 낮아지겠다며 부처님 앞에서 절을 했다.

민 거사는 지난해 7월 기술본부장 소임을 끝으로 서울지하철공사를 퇴직하면서 8년여의 지하철법우회장 소임을 내려놓았다. 그는 현재 명지전문대학 초빙교수이자 대동기술단 부사장으로 후학 지도와 기술 전수에 진력하고 있다.

“지금도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법우회 법당을 찾아 지난 일들을 참회하고 초발심을 되새깁니다. 먼저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존중하세요. 진정한 마음이 이웃에 전해지면 그 역시 낮추고 자비로워집니다. 이웃에 불심을 전하는 길이 여기에 있습니다.”  
 
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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