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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주 장편소설 - 인연 51

기자명 법보신문

제 10장 오대산 연비

“옳은 중노릇을 하기 위해 연비하려 합니다.
법을 따르는 결정심을 갖고자 연비하려 합니다.
숙세 업장을 없애기 위해 연비하려 합니다.”

서대 염불암은 참나무 껍질로 지붕을 얼기설기 덮은 너와집 암자인데, 겉모양만 봐서는 화전민들이 밭뙈기를 찾아 임시로 지은 움막 같았다. 그러나 서대 염불암을 창건한 연대는 수 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조선 초기의 문신 권근의 수정암 중창기가 발견됨으로 해서 서대 염불암이 한때는 수정암으로 불렸던 사실도 밝혀졌던 것이다.

서대 염불암의 성소(聖所)는 우통수라는 샘이었다. 우통수는 암자 수행자들에게는 감로의 샘인 동시에 남한강 발원지로서 기호지방 중생들에게는 생명의 젖줄이었다. 우통수에서 흐른 물 한 줄기가 수많은 골짜기 물과 합수하여 마침내 남한강이 되기 때문이었다.

일타는 혜암과 때때로 우통수 샘물을 길어 마가목차를 마셨다. 오대산에 자생하는 마가목 가지나 마가목의 붉은 열매를 말려 찻물에 우려낸 것이 마가목차였다. 깊은 산 냉한 곳에서 정진하다 보면 기침을 자주하여 기관지가 나빠지기 마련인데 마가목차를 자주 마시면 그런 잔병이 사라졌다.

“일타스님, 이것 한 사발 드시구려.”
“한약입니까.”
“마가목차입니다. 피로회복에 그만입니다.”

일타는 마가목차를 처음 마셔보고는 쓴맛을 다셨다. 뒷맛이 쓰고 시금털털했다.

“오대산에서는 이 차를 드십니까.”
“산중은 일교차가 크고 냉한 곳입니다. 새벽에 참선하다 보면 얼음 같은 찬 기운이 목덜미로 들어와 기침이 나오고 또 그런 상태에서 염불하다 보면 목을 상하지요. 그러나 이 마가목차를 장복하면 그런 증세가 차츰 사라집니다.”

오대산에서 건강하게 정진하려면 마가목차를 자주 마셔야 된다고 권하는 혜암에게 일타는 합장하며 고마움을 나타냈다.

“혜암스님, 감사합니다. 스님께서 밤새 방에 들지 않고 밤이슬을 맞으며 행선하면서도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을 알겠습니다.”

“서대에서 적멸보궁까지 오가며 밤을 새우면서도 견디는 것은 아마 마가목차 효험이 아닌가 싶습니다. 스님도 장좌불와를 하시고 있으니 마가목차를 자주 마셔야 됩니다.”

혜암은 이미 하루 한 끼 생식만 하는 오후불식을 하고 있었다. 장좌불와에다 오후불식을 하는 두타행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두타행이란 부처님 제자인 가섭존자 이래 중국선종의 초조 달마와 이조 혜가, 삼조 승찬으로 이어져온 의식주에 대한 애착을 철저하게 끊은 무소유의 청정한 마음으로 정진하는 수행법을 뜻했다.

일타도 혜암을 따라 오후불식을 했다. 아침은 상원사에서 가볍게 죽을 한 사발 먹고, 점심 공양은 서대 염불암에서 혜암과 함께 해결하고, 저녁은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마가목차로 목을 적실뿐이었다.

일타가 공양주를 자청했다. 진주 응석사에서 공양주를 한 경험이 있으므로 변변찮은 재료를 가지고도 맛있게 만들 자신이 있었다. 혜암은 생식을 하면서도 일타를 위해 오대산 산자락에서 자라난 곤드레의 어린 줄기와 입을 넣어 만든 곤드레나물밥을 지어 주었다.

“혜암스님, 밥이 향긋하고 담백합니다. 별미입니다.”
“별미라기보다는 절 부근의 화전민들은 양식이 부족하니까 곤드레 줄기와 잎을 넣어 밥을 짓는다고 합니다.”

곤드레도 고구마처럼 일종의 구황식물이었다. 그러나 일타는 곤드레를 넣고 끓인 된장국을 먹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스님, 국물 맛이 참 시원합니다.”
“우통수의 감로수 때문입니다.”

맛있는 공양도 수행자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 중의 하나였다. 일타는 흡족한 마음으로 공양할 때 외는 오관게를 떠올렸다.

한 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스며있고
한 톨의 곡식에도 만인의 노고가 담겨 있습니다.
이 음식으로 이 몸을 길러 몸과 마음을 바로 하고 청정하게 살겠습니다.
수고한 모든 이들이 선정 삼매로 밥을 삼아 법의 즐거움이 가득하여지이다.

일타는 ‘선정 삼매로 밥을 삼아 법의 즐거움을 가득하여지이다’에서 자신이 왜 오대산으로 왔는지 새삼 연비에 대한 결의를 다졌다.

“혜암스님, 곤드레나물밥을 먹고 나니 발심이 됩니다.”
“내일 또 곤드레나물밥을 드실 겁니까.”
“아닙니다. 스님과 같이 생식을 하겠습니다.”

일타가 날마다 적멸보궁으로 가서 하루 3천배씩 절하기 시작한 지 7일째 되는 날이었다. 마침내 일타는 적멸보궁의 부처님 진신사리 전에서 원력을 세웠다.

‘부처님, 사문 일타는 세 가지의 원력을 세워 연비하려 합니다. 옳은 중노릇을 하기 위해 연비하려 합니다. 법을 따르는 결정심을 갖고자 연비하려 합니다. 숙세 업장을 없애기 위해 연비하려 합니다.’

일타는 연비에 앞서 허공에 가득한 불보살에게 자신의 원력을 고하는 발원문도 지었다.

허공과 같은 법신에 절하오며
평등한 일심으로 간절히 아룁니다.
오직 크나큰 자비를 드리우시어
저의 미한 구름을 열어주소서.
길이 세간을 떠나
영원히 번뇌를 벗고
아주 오랜 숙세의 빚을
한 순간에 갚아 마치리이다.
지금 이 법을 통하여
신심을 완전히 결정짓겠나이다.
(하략)
稽首如空 等一痛切
唯垂加被 開我迷雲
長揖世間 永脫諸漏
無始宿債 一時酬畢
今者於泫 決定信心

일타는 엄지를 제외한 오른손 네 손가락을 고무줄로 친친 묶은 다음 붕대를 감았다. 그런 뒤 미리 준비한 초에 불을 붙여 촛농을 만들어 붕대에 골고루 떨어뜨렸다. 촛농은 붕대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윽고 네 손가락은 촛농덩어리가 되었다.

사위가 갑자기 캄캄해지고 멀리서 울던 소쩍새 울음소리도 그쳤다.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보니 별들이 자취를 감춘 채 보이지 않았다. 먹구름장이 날아와 하늘을 덮고 있었다. 일타는 마지막으로 촛농을 떨어뜨린 붕대에 기름을 묻혔다.

새벽 1시쯤이었다. 일타는 칠흑같은 세상에 불을 켜는 심정으로 성냥을 그어 자신의 손에 붙였다. 그러자 붕대를 감은 손가락이 어둠을 밝히는 등처럼 활활 타올랐다. 붕대를 감지 않은 엄지가 뜨거울 뿐, 정작 타는 네 손가락은 따끈하고 얼얼한 느낌을 줄 따름이었다. 네 손가락에 대한 애착이 떨어져버린 탓인지 고통스럽지 않았다. 손가락에 붙은 불이 산바람을 타고 일렁이며 기세 좋게 타올랐다. 불꽃이 촛농을 녹이며 춤을 추었다. 일타는 연비삼매에 빠져들었다.

‘손가락이라는 것도 고깃덩어리에 불과하구나. 멋지게 타는 고깃덩어리구나.’

일타는 신심의 불꽃이 욕망과 집착과 삼독(三毒)을 붙잡아온 손가락을 태우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손가락이야말로 욕망을 붙들고 집착을 붙들고 삼독을 붙들어온 화매(禍媒)였구나. 이 손가락이 없어짐으로 해서 나는 오늘부터 욕망과 집착과 삼독으로부터 자유로우리라.’

손가락에 한번 붙은 불은 1시간 이상 동안 계속해서 탔다. 일타는 손가락이 타는 동안 발원문을 가지고 염불도 하고, 원력을 다지며 기도도 했다. 하늘은 여전히 캄캄했고, 비가 오려는 듯 산중의 공기는 축축해지고 있었다.

사자암에서 새벽예불을 하기 위해 올라온 한 젊은 스님이 일타의 연비하는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라 물러섰다. 그러자 뒤에 선 노스님이 제지했다. 일타가 상원사에 온 날 밤중에 종각에서 만났던 그 노스님이었다. 두 스님은 적멸보궁을 향해서 합장하고는 바로 돌아섰다. 노스님이 말했다.

“가세. 서대 염불암에 온 수좌일세. 오랜 만에 보는 소신공양이구먼. 저 수좌의 소신공양이 오늘 새벽예불이라고 여기면 되네.”
“노장님, 소신공양은 왜 하는 겁니까.”
“부처님 법대로 살겠다는 맹세이지.”
“자신을 학대하다니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학대가 아니라 중으로서 자신과의 약속 같은 것이지. 저 수좌의 얼굴을 보았는가.”
“미처 보지 못했습니다.”
“어서 보고 오게.

노스님의 말에 젊은 스님은 다시 적멸보궁으로 올라가 일타를 보고는 내려왔다.

“어떻든가.”
“신심 그 자체였습니다.”
“바로 보았네. 사람노릇 하지 않고 중노릇 잘하겠다는 그런 얼굴이었을 것이네.”
“수좌의 법명이 궁금합니다.”
“일타수좌지. 통도사 중이네. 일주일 전인가. 밤중에 진부에서 달려와 종각에 쓰러진 모습을 보았지. 얼마나 절박했으면 그랬겠나. 머리에 불이 붙은 듯하지 않고서는 잘 살 수 없는 것이 중노릇이네.”

노스님과 젊은 중이 적멸보궁을 관리하는 중대 사자암 마당에 들어서자 또 한 사람의 스님이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잠을 쫓기 위해 밤새 산길을 왔다 갔다 하는 혜암이었다. 행선 중인 혜암이 노스님에게 합장하자 노스님이 말했다.

“혜암 수좌 오늘은 보궁으로 가지 말고 돌아가시게.”
“보궁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일타수좌가 소신공양 중이네.”

혜암은 더 묻지 않고 북대 미륵암으로 가는 산길로 올라갔다. 혜암은 밤새 상원사 산내암자를 오가며 행선을 하고 있었다. 북대 미륵암은 고려시대 나옹선사가 왕사가 되기 전 누더기를 걸친 걸인 모습으로 숨어살던 암자였다. 그때 나옹선사가 스스로 지어 부르던 노래가 바로 토굴가였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동녘하늘에 구름장 사이로 허연 물빛이 돌았다. 날이 밝아지고 있었다. 일타가 자신의 오른손 네 손가락에 불을 붙인 지 서너 시간이 흐른 뒤였다. 하늘을 덮은 구름장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금세 장대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 일타의 손가락을 태우던 불길도 어느새 까물거렸다. 이윽고 그 작은 불씨마저 재로 변하자 손가락은 허연 뼈와 살갗이 탄 검은 숯만 남았다.

일타는 적멸보궁의 부처님 진신사리 전에 삼배를 올렸다. 그런 뒤 적멸보궁 안에서 대야 하나를 가져와 물을 담고 손가락에 타다 만 숯과 검댕을 떼어냈다. 철심 같은 허연 뼈가 드러나자 다시 붕대를 감았다. 일타는 대야의 물을 숲속에 버리고 난 뒤 다시 대야를 제자리에 엎어놓고 중얼거렸다.

“부처님, 사문 일타는 지어올린 발원문대로 부처님의 가피로 연비를 했습니다. 환희심을 내어 신나게 시작하고 마쳤습니다. 일념이 만년입니다. 한 시간이 지나간 것 같은데 벌써 서너 시간이 무심히 흘러 날이 샜습니다. 선정에 들었다가 이제 막 깨어난 듯합니다. 부처님, 사문 일타는 부처님 법을 통하여 신심을 완전히 결정짓겠나이다.”

그때였다. 적멸보궁 돌계단을 내려서려는데 문득 천둥 번개가 쳤다. 새벽 오대산이 번개불빛 속에 드러났다가 물러섰다. 천둥소리에 오대산 골짜기가 우렁우렁 울었다. 잠시 후에는 기어코 장대비가 쏟아졌다. 일타는 장대비를 피하지 않고 맞았다. 장대비는 금세 일타를 흠뻑 젖게 했다. 그러나 일타는 비를 맞을수록 가슴이 후련해짐을 느꼈다. 숙세의 업장이 한 켜 한 켜 씻어지는 듯했다.

“스님, 상처에 빗물이 들어가면 큰일 납니다.”
“다 무상하니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중대 사자암의 젊은 스님이 일타를 불렀지만 일타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장대비를 맞으며 그대로 지나쳤다. 그러나 서대 염불암으로 가는 산길로 들어서자 젊은 스님이 걱정한 대로 오른팔이 퉁퉁 붓기 시작했다. 화기가 서서히 고통으로 변했다. 통증이 칼로 후비는 듯했다. 일타는 왼손으로 오른팔을 붙들고 산길을 걸었다. 마치 다친 산짐승처럼 비틀거리며 걸었다. 고통이 오른팔만 아프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산불이 바람을 타고 이 곳 저 곳으로 붙듯 오장육부를 돌아다녔다.

장대비는 계속해서 내렸다. 나뭇잎을 두들기는 기세가 조금 꺾이기는 했지만 멈출 것 같지 않았다. 일타는 우통수에 이르러 찬 샘물을 두어 모금 마시고서는 정신을 차렸다. 지척에 서대 염불암의 너와집 지붕이 또렷하게 보였다.

“혜암스님.”

그러나 행선 중인 혜암이 암자 방안에 있을 리 없었다. 혜암도 장대비를 맞으며 오대산 산길을 왔다 갔다 걷고 있을 터였다. 일타는 암자 방문을 열고서는 잠시 망설였다. 고통스러워 누우면 잠이 들 것이고, 잠이 들면 장좌불와 수행은 깨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었다. 일타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제야 방안에 흰 사발 하나가 보였다. 빈 그릇이 아니었다. 마가목차가 한 사발 가득 든 그릇이었다. 혜암이 일타를 위해 우려 둔 마가목차 한 잔이 분명했다. 일타는 마가목차를 향해 합장했다. 그러자 숙세의 업장이 눈물로 변해 흘러내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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