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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고한 城 의지해 ‘붓다의 미소’ 천년을 지키다

기자명 법보신문

사바세계의 마지막 정토 부탄을 가다
上 부탄의 관문 파로종

장엄한 히말라야 산맥의 중심부에 묻혀 스스로 수세기 동안 철저하게 다른 세계와의 소통을 거부해 온 나라 부탄. 1974년 이방인들에게 처음 속살을 내보인 부탄은 이후 여행자들에게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 돼 왔다. 오염되지 않은 환경, 경이로운 풍경과 건축물들, 붓다의 미소를 간직한 듯 맑고 선한 사람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수많은 수식어가 아니더라도 부탄은 누구에게나 미지의 나라, 언젠가 꼭 한번 가보고 싶은 나라임에 틀림없다. 9월 12일~13일 진각종 대표단을 따라 부탄을 탐방했다.  편집자

<사진설명>영화‘리틀부다’의 배경이 된 파로종. 웅장한 성벽에는 수세기 동안 자국의 영토와 전통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민초들의 피땀이 스며있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9월, 방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부탄으로 가는 길은 방콕을 경유하는 방법 외에도 인도의 델리나 네팔의 카트만두를 경유할 수 있다. 그러나 하늘 길을 이용해 부탄을 가기 위해서는 누구나 일주일에 2~3회 운행되는 부탄 국영비행기인 두룩 항공(Druk Air)을 이용해야 한다. 자국의 항공 산업을 지키기 위해 외국 항공사와의 제휴를 거절한 탓도 있지만 부탄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험준한 히말라야 산맥을 공중곡예 하듯 넘어야 하기에 익숙한 비행기술이 없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1980년대 부탄을 처음 찾은 유럽인들은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 모두 유서를 썼다고 한다. 때로는 짙게 깔린 구름을 헤치고 비행하다 보면 구름 위로 불현듯 나타나는 산들로 인해 사고가 잦았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기대와 걱정이 오가는 사이 비행기는 어느 새 높은 히말라야의 산들 사이로 작은 날개 짓을 하고 있었다. 마치 빽빽이 정열해 있는 거대한 산들에게 하늘 길을 허락 받은 듯했다. 비행기가 흔들흔들 산 사이를 사뿐히 지나자 화려한 연잎을 펼치듯 신비의 나라 부탄은 수줍은 듯 조심스럽게 이방인에게 깊은 숨결을 드러냈다. 산 사이로 거침없이 흐르는 계곡, 자연에 기대 살아가기 위해 민초들이 개간한 논과 밭. 그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전통가옥, 조촐하고 단아한 시골풍경은 우리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잠시 뒤 한참을 날아온 비행기가 부탄의 관문 파로 공항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국제공항이지만 모든 시설이 우리의 1970년대를 연상하듯 낙후돼 있었고, 전산화가 돼 있지 않아 입국수속도 일일이 손으로 진행됐다. 더욱이 한 사람 한 사람 일일이 입국허가서를 꼼꼼히 체크하는 터라 부탄을 찾은 이방인들은 한참을 뱀의 꼬리처럼 구불구불 길게 늘어서야만 했다.

연 관광객 1만명으로 제한

사실 신비의 나라 부탄을 찾는 것은 지구상의 어느 곳을 가는 것보다 어렵다. 급속하게 개방돼 자칫 자국의 전통문화가 훼손될 것을 우려한 부탄 정부가 연간 관광객의 수를 1만 명 내외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부탄 정부는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매일 의무적으로 200달러 정도를 내도록 하고 있다. 물론 관광객이 내는 경비 속에는 부탄에서의 숙박비와 교통비 그리고 관광 안내비 등이 포함돼 있지만, 잔뜩 기대감을 갖고 첫 발을 내디딘 외지인을 향해 ‘이래도 올래?’라며 조롱하는 것 같기도 하다. 현대 자본주의 사고방식에 익숙한 터라 이처럼 비싼 여비와 불편함까지 감수해가며 히말라야 오지에 오려는 사람들도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돈을 들고 밀려오는 관광객들을 애써 제한하는 부탄 정부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국의 전통문화와 자연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부탄 정부의 노력이 대견해 보이기까지 했다. 사실 남한의 절반에 해당하는 영토에 인구 80만 명이 전부인 작은 나라 부탄이 수백 년 동안 이어온 전통을 고스란히 후대들에게 물려주기 위해선 이것이 최상의 방안이었을지 모른다.

전통-환경 지키기 위한 자구책

<사진설명>파로종 내부 사원. 정방향으로 둘러싸인 회랑은 한적하면서도 고요해 명상적인 분위기를 짙게 풍기고 있다.

아무튼 현대 물질문명의 이기에서 한참 떨어져 있는 듯 우리의 시골 시외버스 터미널처럼 어두컴컴한 파로 공항을 벗어나자 청량한 바람이 얼굴을 스쳐 갔다. 난생 처음 보는 풍경과 말, 그리고 전통의상을 곱게 차려입은 사람들. 히말라야 산맥을 병풍삼아 오랜 기간 은둔의 삶을 살았던 부탄인들이 가지고 있는 토속의 향이 새삼 먼 이국의 땅에 와 있음을 실감케 했다.

여행기간 부탄의 이곳저곳을 안내할 현지 가이드와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 그리곤 파로 시내를 향해 조심스럽게 발을 옮겼다. 우리를 실은 9인승 봉고가 파로 공항을 빠져나와 30여분을 달리자 파로를 상징하는 파로종(Paro Dzong)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동화 속에서나 봤을 법한, 높이 20여 미터는 족히 넘어 보이는 거대한 성벽위로 층층이 쌓아올린 전각, 그리고 탑. 작은 산언덕에 자리 잡은 웅장한 파로종은 파로를 가로지르는 빠츄 강과 함께 한 폭의 수채화를 이루고 있었다. 이 같은 풍경은 1994년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바 있는 영화 ‘리틀부다’의 배경이 되면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부탄은 ‘종(Dzong)’의 나라로 대변된다. 모든 도시마다 거대한 종들이 5~6개 정도는 기본적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거대한 종의 이면에는 민초들의 가슴 아픈 애환이 담겨있다.

오래전부터 티베트, 인도, 네팔 등 이민족에게 사방을 둘러싸였던 부탄은 주변국들의 침략을 견뎌내야 했던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자국의 영토와 전통문화를 지키기 위해선 한없이 선량할 것만 같은 부탄인들조차 손에 농기구 대신 창과 칼을 들어야만 했다. 종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이민족의 침입을 대비해 주변의 돌들을 일일이 옮겨 쌓아 올린 요새인 셈이다. 전쟁이 시작되면 모든 부탄인들은 종에 모여 굳건히 성문을 닫고 죽기를 각오하고 항전을 불사했다. 15세기에 티베트의 침략에 맞서 건립된 파로종 역시 이런 전쟁의 흉터로 얼룩져 있다. 티베트와의 12회에 달하는 치열한 전투, 또 19세기 인도를 삼킨 것도 모자라 이곳까지 침략해 왔던 영국에 맞서 싸웠던 흔적들은 수세기 동안 자국의 영토와 전통을 지키기 위해 싸운 민초들의 훈장처럼 보였다. 이런 민초들의 피땀이 있었기에 부탄은 지금까지 단 한차례도 식민지가 된 적이 없었다.

현대에 들어 종은 행정기관 뿐 아니라 사찰의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다. 낮에는 지방 관청으로서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곳이지만 저녁이면 지역 주민들이 법회를 보는 신행공간이자 스님들이 되기 위해 공부하는 승가교육기관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히말라야에 감춰진 ‘정토’

<사진설명>국립박물관에서 바라본 파로 시내 전경.

가이드의 장황한 설명을 뒤로하고 파로종의 입구에 들어서자 전형적인 티베트 양식 사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3층 높이에 정방형으로 둘러싸인 회랑은 한적하면서도 고요해 명상적인 분위기를 짙게 풍기고 있었다. 빠듯한 일정은 파로종을 진득하게 보지 못하도록 했다. 애써 아쉬움을 접고 서둘러 대웅전 참배를 마치고 부탄의 역사와 전통문화를 한 눈에 알 수 있다는 국립박물관으로 향했다.

서울 용산에 세워진 우리의 국립박물관을 연상하면 외형과 내부 시설 면에서 초라하기 짝이 없지만 부탄의 국립박물관은 수세기 동안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부탄의 모든 것을 담고 있었다. 아직까지 전 인구의 80%가 농업에 종사할 정도로 농경문화를 꽃피어 왔으며 불교가 국교인 까닭에 박물관은 수세기 전 사용됐음직한 각종 농기구, 오래된 불상, 티베트어로 깨알같이 적혀 있는 경전 등의 문화재들로 즐비했다. 특히 부탄 사람들의 신심이 만들어 낸 전설의 사원인 탁상 사원을 그대로 재현한 모형은 오래도록 관람객의 발걸음 붙잡기에 충분했다.

미로를 헤매듯 어두운 전시관을 벗어나자 넓게 펼치진 파로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사실 1968년 이곳이 국립박물관으로 바뀌기 전까지 침략자를 감시하는 망루로 이용됐던 까닭에 이곳은 넓은 파로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더 유명했다.

청량한 바람을 한껏 들이마셨다. 잘 보전된 주변 자연환경과 고풍스런 사원들이 눈 안에 가득 들어온다. 다시 잘 정돈된 파로 시내를 굽어 봤다. 평온함이 물씬 풍긴다. 바쁜 일상에 쫓겨 짧은 여유도 찾을 수 없는 우리의 도시가 그 위로 오버랩 됐다. 아무런 걱정도 없어 보인다. 어쩌면 이곳이 사바에 남은 정토가 아닐는지….
 
파로=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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