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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체 골절 딛고 ‘관음’된 이문희 씨

기자명 법보신문

조계종사회복지재단화목회
이 문 희 팀장
“가피와 고통, 한 생각에 달렸지요”

<사진설명>이문희 보살은 “아만심으로 가득했던 과거를 참회하기 위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줄 뿐 아직은 참회하고 정진할 것이 많은 범부”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극심한 고통에 한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직 살아 쉼 쉬고 있다는 사실에 짧은 안도의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그러나 이내 한숨은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몸서리치는 긴 신음으로 바뀌었다. 숨을 쉰다는 것, 심장이 멈추지 않고 뛰고 있다는 것이 증오스러울 만큼 고통은 온몸 구석구석을 엄습했다.

이문희(55·금강심) 보살이 사고를 당한 것은 부처님오신날을 하루 앞둔 1996년 5월 23일. 법당을 장식할 꽃을 마련해 집으로 향하는 길에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났다. 버스에 올라 요금을 지불하려는 순간 대형 유조차가 버스 뒷면을 들이받으면서 이 보살은 그대로 밖으로 튕겨 굴러 떨어졌고, 연석에 머리를 부딪쳐 의식을 잃고 말았다. 설상가상 버스가 추돌 충격에 앞쪽으로 밀리면서 뒷바퀴가 그의 하반신을 밟고 지나가는 끔찍한 사고가 일어났다. 몇날 며칠 사경을 헤매다 간신이 정신을 차려보니 하반신의 뼈라는 뼈는 모두 조각난 상태였고, 그로 인한 통증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경전에서 읽은 화탕지옥의 그것과도 같았으리라.

96년 교통사고로 하반신 골절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굵은 눈물방울과 함께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나지막한 염송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일념으로 관세음보살님을 찾으면 이 지옥 같은 고통에서 벗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일심으로 매달렸다. 그러나 고통은 좀처럼 그의 곁을 떠날 줄 몰랐고, 더욱이 영영 다시는 두 다리로 일어서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또 다른 고통만을 불러왔다.

서럽고 분한 마음에 가슴속에서 불덩이 같은 독기가 치밀어 올랐다. 지난 4년간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불제자가 돼야 한다는 일념으로 어려운 이들을 돌보는 일에 누구보다 앞장서왔다고 자부해온 그였다. 실제 1992년 당진 정토사 주지 선오 스님의 권유로 길음종합사회복지관 무료급식 봉사에 동참한 후 불교자원봉사연합회, 자비의집, 조계종복지재단 등 교계 봉사단체를 두루 섭렵하며 하루도 거르지 않고 봉사 현장을 찾아 자비를 실천했다. 뿐만 아니라 봉사자들과 틈틈이 금강경을 공부하고 염불 정진하며 신행과 수행활동에도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불자로서 부끄럼없이 살아 왔기에 부처님이 한없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실천해 왔는데 왜 하필 나에게 이런 끔직한 일이 발생해야 했는지…. 지난 4년간 헛품을 판 것 같아 억울하고 약이 올라 견딜 수가 없었어요. 부처님께 심한 배신감마저 들었었죠.”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좌절감과 배신감이 더해지자 이번엔 우울증이 괴롭혔다. 더욱이 자신이 아니면 영영 돌아가지 않을 것 같았던 봉사현장도 아무런 문제없이 운영된다는 소식은 존재감마저 잃게 만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살이라는 끔찍한 생각이 시도 때도 없이 엄습해 왔다. 자살은 어쩌면 고통의 바다를 헤매던 그에게 자비의 손길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극심한 고통에 자살마저 생각

병원생활을 시작한지 1년 6개월이 지났을 즈음, 문득 도봉산 망월암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처님께 따져 묻고 싶었다. 도대체 왜 이런 고통을 받아야만 하는지, 과연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몇 차례 수술로 조각난 뼛조각은 제법 자리를 잡아 정상에 가까운 모습을 되찾아 갔지만 발걸음을 옮기기란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처럼 더디기만 했다. 이 또한 고통이었다.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굵은 눈물방울은 뚝뚝 떨어졌고, 얼굴은 일그러졌다. 이런 그가 도봉산을 오르겠다고 하니 병원에서 허락할리 만무한 일이었다.

“생 때를 써 병원장에게 겨우 허락을 받고 도봉산 망월암을 향해 올랐습니다. 채 몇 걸음 떼기도 전에 온몸은 쏟아지는 눈물과 땀방울들로 흠뻑 젖어버렸어요. 건강한 몸이면 40분이면 오를 거리를 쓰러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6시간 만에 기어이 올랐어요. 그때 그 성취감은 지금도 눈앞에 펼쳐지듯 생생하기만 합니다.”

18개월 만에 뵙는 부처님은 여전히 한없이 자비로운 미소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털썩 법당에 주저앉았다. 삼배를 올리고 싶었지만 다리가 굽어지지 않아 도저히 절을 할 수 없었다.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부처님께 한껏 따질 태세로 기세 등등 오른 망월암, 그러나 막상 부처님을 대면하고 나니 알 수 없는 설움이 북받쳐 올랐다. 사실 그가 망월암에 오른 진짜 이유는 부처님께 기대어 위로를 받고 싶어서일지도….

“그렇게 실컷 울고 나니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 졌어요. 거짓말 같았죠. 지금껏 제 주의를 맴돌던 좌절감과 배신감, 우울증이 한순간 눈물방울에 섞여 밖으로 배설된 듯 마음이 차분해지는 거예요. 그러자 자연스레 지금까지 제가 살아온 모습들을 되돌아보게 되더군요.”

망월암에 올라 참회-정진

얼마나 지났을까. 그토록 괴롭히던 고통의 근원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마음속에는 부끄러움만이 가득 자리하고 있었다. 그토록 자부했던 과거의 선행들, 그것은 본래의 내가 아닌 ‘나’라는 이름의 빈껍데기가 행한 가식이었으며 상(相)을 내기 위한 행위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굽어지지 않는 다리를 억지로 접어 부처님께 머리를 숙였다. 두 뺨을 타고 뜨거운 물줄기가 하염없이 흘러 내렸다. 결코 고통 때문이 아니다. 참회의 발로인 것이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앞에 그녀는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을 염송하며 참회를 이어갔다.

“고통의 원인이 나에게 있음을 알게 된 이상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명확해 지더군요. 제가 지은 모든 죄를 참회하기 전에는 결코 이 고통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둘러 퇴원한 후 매일 같이 망월암을 오르며 참회의 기도를 올리며 부처님의 올바른 제자가 될 것을 발원했습니다. 매일 산행을 한 덕분인지 주변의 우려와는 달리 건강도 빠르게 회복했어요. 아마도 저의 아만심(我慢心)을 깨우쳐 주기 위해 부처님께서 가장 빠른 길을 택하신 것 같아요. 모든 게 가피라고 생각합니다.”

1998년 10월 이문희 보살은 봉사현장에 복귀했다. 마음의 변화는 그의 얼굴과 행동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났다. 언제나 하심으로 상대를 대하니 얼굴에는 자연스레 미소가 배어났고 행동에는 상대를 배려하는 편안함이 묻어났다.

“돌이켜 보건데 예전의 제 모습은 ‘뻣뻣’ 그 자체였어요. 남을 돕는다는 우쭐한 생각에 머리를 숙일 줄 몰랐고 그러다 보니 어르신들에게 함부로 말하거나 행동한 일이 다반사였어요. 하지만 현장에 복귀해서는 항상 망월암에서의 발심을 되새기며 지극히 낮은 자세로 어르신들을 대접하기 위해 날마다 정진하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보살의 수첩은 이런저런 간단한 메모들을 비롯해 한 달 동안 자원봉사 스케줄로 빽빽하다. ‘길음종합사회복지관, 백련장학회, 송이봉사단, 조계종복지재단, 불교자원봉사연합회, 자비의집, 경희의료원, 고대의료원, 서울대의료원, 생명나눔실천본부….’ 거기에 주말이면 군부대를 찾아 엄마의 마음으로 아들 같은 장병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 보시한다.

“아직은 정진하는 범부일 뿐”

“봉사를 많이 한다고요? 에이~ 봉사 아니에요. 아만심으로 가득했던 과거를 참회하기 위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뿐이에요. 불심이 깊다고요? 아직 공부가 덜 돼 불쑥불쑥 화를 내기도 하는데요. 아직은 참회하고 정진할 것이 많은 범부일 뿐이에요.”

매일 아침 그는 부처님께 자신과 모든 사람의 건강을 기원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건강만 있으면 도움이 필요한 어디든지 달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워 실천으로 옮기는 불자들이 더욱 늘어나기를 서원한다고 했다. 이 세상을 불국토로 만드는 것도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력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란다. 부처님께서도 ‘수많은 경전을 외울지라도 실천하지 않으면 수행자가 아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어떤 일이든 공덕 아닌 것이 없으며 가피 아닌 게 없다는 그녀의 말에서 인욕바라밀을 증득한 수행자를 보는 듯했다.
 
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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