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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흠 교수의 詩로 읽는 불교]30. 공(空)③-바쇼오의 하이쿠

기자명 법보신문

단단한 바위 속에
매미 소리 스며드는
‘불일불이’ 순간 포착

<사진설명>한가한 여름의 정적을 깨는 매미 소리. 하지만 정적은 깨지는 것이 아니라 소란한 매미소리 속으로 스며들 뿐이다.

출장 일로 엿새만에 집에 오니 서재 창밖으로 불이 붙었다. 가을의 절정에 서서 무상감에 함뿍 젖었다가 지난 여름을 추억하니 매미소리가 들린다. 매미는 정녕 사라지고 없는데 귓가엔 매미소리가 더욱 시끄럽다.

한적(閑寂)함이여 바위에 스며드는 매아미 소리
(閑かさや岩にしみ入る蟬の聲)

일본 최고의 하이쿠 시인인 마츠오 바쇼오(松尾芭蕉: 1644∼1694)가 동북지방의 입석사(立石寺)에서 지었다는 하이쿠다. 계절마다 만나게 되는 사물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 낱말로 압축한 시어인 계어는 ‘매미’로 매미 울음소리 들리는 한적한 산사가 배경 이미지 내지 맥락을 형성한다.

약동과 고요의 시적 대립

기레지(하이쿠에서 호흡을 끊고 잠시 쉬며 여백을 주는 시적 장치)는 “한가함이여(閑かさや)”로, 시에 여백을 만드는 동시에 선정을 하는 수도승처럼 가만히 머물러 무념무상에 젖게 하거나, 빈 종이에 그림을 그리듯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한 여름 한적한 산사에서 매미 울음소리를 제외하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정적은 더욱 짙어져 매미 울음소리마저 바위에 스며든다. 계어인 매미는 시간적 인접성을 갖는 여름과 한낮이라는 배경을 환기한다. 매미는 공간적으로 매미가 우는 나무나 숲과 환유관계를 이룬다.

바위와 매미소리는 시적 이미지가 대립되기에 이항대립관계를 형성한다. 바위가 무겁다면 매미는 가볍다. 바위가 고요히 머물러 있다면 매미는 부단히 움직인다. 바위가 무거운 무게로 대지를 내리누르고 있다면 매미는 날개를 달고 하늘로 상승한다. 바위가 고요한 정적을 유지하고 있다면 매미는 소란스럽게 울어댄다. 바위가 광물성의 이미지를 갖는다면 매미는 동물성의 이미지를 가지며, 바위가 결국 생명의 약동이 정지한 죽음을 의미한다면 매미는 삶의 활력으로 약동하는 생명(성)을 갖는다. 매미는 빨리 죽어버려 무상의 은유를 갖는다. 반면에 바위는 시간의 흐름에도 변하지 않아 상(常)의 은유를 형성한다.

양자의 대립을 “스며드는”이 이어주고 있다. 이 때문에 양자는 서로 불일불이(不一不二)의 공(空) 관계를 형성한다. 원효는 씨와 열매의 비유로 이를 설명한다. 씨는 스스로는 무엇이라 말할 수 없으나 열매와의 “차이”를 통하여 의미를 갖는다. 씨와 열매는 별개의 사물이므로 하나가 아니다(不一). 국광 씨에서는 국광사과를 맺고 홍옥씨에서는 홍옥사과가 나오듯, 씨의 유전자가 열매의 거의 모든 성질을 결정하고 열매는 또 자신의 유전자를 씨에 남기니 양자가 둘도 아니다(不二). 씨는 열매 없이 존재하지 못하므로 空하고 열매 또한 씨 없이 존재하지 못하므로 이 또한 공하다. 세계의 실체는 없는 것이다. 차이만 존재한다. 그러나 씨가 죽어 싹이 돋고 줄기가 나고 가지가 자라 꽃이 피면 열매를 맺고, 열매는 스스로 존재하지 못하지만 땅에 떨어져 썩으면 씨를 낸다. 세계는 홀로는 존재한다고 할 수 없지만 자신을 공(空)하다고 하여 타자를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씨는 스스로 공하나 썩어 열매를 맺는 것처럼 이것이 없으니 저것이 있고 저것이 없으니 이것이 있다. 또 씨가 있어 열매를 맺고 열매가 있으니 씨가 나오는 것처럼 이것이 있으므로 해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므로 해서 이것이 있다.

나·너 없지만 둘도 아니다

열매일 때는 씨가 없으므로 씨는 열매 속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씨일 때는 열매가 없으니 열매는 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않으므로 존재한다고 할 수 없고 늘 같지도 않고 끊어지지도 않으므로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멸하지 않으므로 존재하지 않는다 할 수 없고 나지 않으므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도 없다. 이처럼 공(空)이 생성 변화의 조건이 된다.

바위와 매미 또한 별개의 것이니 불일(不一)이다. 그러나 매미소리가 “스며드는”을 통해 바위가 되니 둘도 아니다.(不二) 매미소리가 없으면 바위가 없고, 바위가 없으면 매미소리 또한 없다. 매미소리는 바위가 없이 존재하지 못하므로 공(空)하고, 바위는 매미소리가 없으면 존재하지 못하니 공(空)하다. 매미소리가 자신을 공하다고 소멸시키면 바위가 드러나고, 바위 또한 자신을 소멸시키면 매미소리가 드러난다.

매미의 가벼움은 바위로 스며들어 바위와 하나가 된다. 바위의 무거움은 매미의 날개를 달고 가벼워지고 매미의 가벼움은 바위에 스며들어 무거움을 갖는다. 부단히 움직이는 매미는 고요히 머물러 있는 바위로 들어가 바위에 역동성을 부여하고 매미 스스로는 정지성을 갖는다. 날개를 단 바위는 상승하여 비상하며, 바위로 들어간 매미는 하강의 안정을 얻는다. 매미의 따스한 피와 살이 스며들자 차가운 바위는 피가 흐르는 생명성을 갖고 매미는 바위의 차가움을 더한다. 매미의 약하고 부드러움이 바위에 들어가자 바위는 약함과 부드러움을 갖추어 더욱 강해진 바위로 거듭난다. 반대로 매미는 바위의 강하고 단단함을 겸비하게 된다. 결국 바위의 광물성에 매미의 동물성이 더해지고 매미의 동물성에 바위의 광물성이 혼융(混融)된다. 매미의 울음소리는 시끄럽기에 이는 소란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매미소리는 다른 소리를 삼킨다. 매미소리가 들림은 다른 소음으로부터 벗어났음을 뜻한다. 소란함이 오히려 정적이다. 매미는 생명이고 바위는 생명이 없는 광물질이다. 그런데 매미가 바위에 스며들어가 생명을 불어넣는다. 생명력이 담긴 매미 소리는 바위로 들어가 바위가 된다.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이가 1분 1초를 치열하게 의미로 반짝이는 삶을 살듯, 죽음으로 다가갈수록 삶은 더 풍요로워지니 죽음이 곧 삶이다. 삶은 죽음으로 가기 위해 신진대사를 하는 과정이니 삶이 바로 죽음이다. 그리하여 무상하고 공하기만 한 매미의 삶은 바위로 스며들어 영원성, 상(常)을 갖는다.

이런 관계를 갖는 앞에 기레, “한가함이여”’가 온다. 이는 여백을 형성한다. 이 여백을 채우는 단어들은 ‘한적, 한가, 정적, 적멸’ 등이다. 여백을 이런 낱말로 채우고 뒤 토막을 읽으면 이의 해석은 기레에 종속된다. 다시 말해, 앞에서 논한 바위와 매미의 대립관계가 형성하는 의미들은 ‘한적, 한가, 정적, 적멸’의 범위 안에서 해석된다.

여름날 山寺에 앉아 매미소리를 듣는다. 처음엔 그 소리가 시끄럽더니 더 앉아있으려니 그 소리가 주변의 모든 소리를 빨아들인다. 매미의 울음소리를 통해 오히려 정적을 느낀다. 바라보니 바위가 있다. 바위의 이미지는 매미소리와 대립적이다. 매미소리가 바위에 부딪힐 땐 깨달음과 깨닫지 못함, 진(眞)과 속(俗), 삶과 죽음, 이상과 현실이 대립한다. 그러나 이 대립은 곧 무너지고 매미소리가 바위를 뚫고 스며든다. 이 순간 매미 소리가 바위가 되며 정적, 곧 적멸의 세계를 이룬다. 깨달음과 깨닫지 못함, 진과 속, 삶과 죽음 또한 하나가 된다. 그리하여 무상에서 오는 슬픔(悲)을 극복하고 상(常)을 이룬다.

이처럼 몸의 깨달음을 한 후 기레, “한가함이여”를 읽으면 자연스레 정적, 곧 적멸에 이른다. 적멸은 삶의 고통을 떠난 침묵의 세계이다.

궁극적 실체와 대면하는 경계

무상의 굴레에서 벗어나 상(常)을 이룬 경지다. 모든 고통, 갈등과 대립을 초월한 세계이자 육신과 정신 모두에서 떠나 궁극적인 실체와 대면하는 경계이다. 생에서 일어나는 욕망과 번뇌를 초월한 세계이자 죽음의 공포와 불안으로부터도 초탈한 세계이다. 어떤 번뇌도, 대립도, 고통도 사라진 절대 침묵의 세계, 모든 것으로부터 해탈하여 더 이상 나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세계, 궁극의 세계이다. 그러기에 그곳은 닿으려 해도 닿을 수 없고 헤아리려 해도 헤아릴 수 없는, 아득하고 또 아득하나 온갖 미묘한 것들이 나오는 문(玄之又玄 衆妙之門)이다. 자신을 존재한다고, 자성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아집과 객관적인 실재를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법집(法執)을 떠난 곳에 공의 원리가 묘하게도 작용하고 있으니 진공(眞空)이 묘유(妙有)이다.

이도흠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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