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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부산 혜원정사 주지 원 허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중생의 고통 치유되는 그 자리가 불국토

혼잡한 부산의 연산로터리에서 연산터널 방향의 도로를 가다 보면 터널 진입 직전에 작은 샛길이 있다. 초행에 발견하기란 쉬운 길이 아니며 차량으로 갈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샛길의 진입에 성공해서 조금만 오르다 보면 ‘넒은 세상, 밝은 마음, 맑은 불교’라는 글귀가 사찰임을 안내한다. 깊은 산 길 끝에서 암자를 만나듯 반갑고 설레는 순간이다.

산문을 대신하는 천왕문이 위엄을 자랑하고 그림 같은 능선이 대웅보전의 지붕과 조화를 이루는 이곳은 쌍계사 조실 고산 스님이 1975년 개산한 혜원정사다.

개산 당시 지은 ‘묘봉산’이라는 뒷산의 명칭은 30년의 세월을 넘어 사찰 입구를 ‘묘봉로’로, 연산중학교의 체육관까지 ‘묘봉관’으로 만들었다. 비단 이름만이 아니다. 혜원정사는 부산의 으뜸 포교를 톡톡히 해내며 지역민들에게도 마음의 쉼터로 정착한 지 오래다.

마침 사찰에 위치한 선재어린이집으로 등교하는 원아들이 봉고를 타고 도착한다. 어린이들을 제일 먼저 반기는 사람은 혜원정사 주지 원허 스님. 이웃집 아저씨마냥 어린이들과 격의 없이 인사하는 스님을 보고 처음에는 구참 신도들이 “스님에게 저런 면이 있었나?”며 놀랐다고 한다. 그만큼 스님은 부산 최고의 포교도량 책임자와 철저한 수선납자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오버랩 된다. 그런 스님의 면모는 출가당시 수행자라는 한 길만을 바라본 굳은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대입을 앞둔 고3시절의 가을, 또래들처럼 진학을 고민하던 스님은 배낭을 메고 무작정 시외버스와 완행열차에 몸을 싣고 쌍계사를 찾아갔다. 가톨릭이 모태신앙이었던, 절에 다니는 절친한 친구의 권유에도 법당에 한번 들어가지 않았던 자신이 이유 없이 절에 가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출가인연 이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을 듯하다.

새벽의 찹찹한 공기를 가르며 대웅전 앞에 섰을 때 생전 처음 본 법당 안의 부처님은 묘한 편안함을 주었다. 한참을 서 있다 지리산을 발길 닿는 대로 오르 내린 스님은 늦은 밤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친구를 불러냈다. 그 길로 대학을 포기하고 불교 공부에 입문한 것이다.

“인재 불사가 가장 큰 포교”

“『지장경』을 수도 없이 읽었습니다. 그 때 부산 보타암에 주석하던 전 종정 고암 스님을 친견했는데 스님께서 ‘조상이 천도됐다’고 툭 한 마디 던지셨어요. 그런데 그 말씀에 온 몸으로 느낀 전율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스님은 현 부산불교신도회 공병수 회장을 따라 전국의 사찰을 참배하며 불교 공부에 깊이를 더해 갔다. 그리고 출가를 결심한 후, 속가의 아버지에게만 알리고 어머니 몰래 집을 빠져나와 쌍계사를 찾아간 지 3일 만에 머리를 깎고 행자가 됐다. 그리고 뒤도, 옆도 돌아보지 않는 출가자의 삶을 시작했다.

영세 가정에 장학금 전달

스님은 행자 시절 1년 동안 고산 스님을 시봉했다. 당시 행자가 여럿 있었지만 고산 스님은 유독 스님에게 행자 시절에 지켜야 할 사항, 어른을 모시는 방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줬다. 수행자의 길을 올곧게 걸어 갈, 그리고 포교 일선에서 활약할 스님의 미래를 미리 내다보신 것이었을까. 그 인연으로 해인사 강원을 졸업한 후 소임자가 필요하다는 부름을 받아 1993년 부산 혜원정사에서 총무를 지냈다.

하지만 공부에 대한 끈을 놓을 수 없었던 스님은 1년간의 총무를 마치고 해인율원에 입학했다. 율원은 출가수행자라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라는 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율원의 졸업과 함께 이번에는 혜원정사 주지가 맡겨졌다. 선방 행을 발원하던 스님은 소임에 대해 몇 번을 고사하다 “1년에 한 철 만이라도 공부하게 해 달라”는 조건을 걸고 주지 살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행자 교육 때 별명이 ‘독사대가리’였습니다. 강원에서도 ‘인간이 아니다’는 말을 듣고 살았지요. 어느날 중강 스님이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느끼는 바가 없느냐는 질문 하더군요. 그래서 ‘중이 그런 감수성에 빠져 있으면 어떻게 공부를 하겠습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수행 이외의 다른 생각은 모두 떨쳐 버리는 것이 제 나름의 수행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차가운 모습이 포교하는 데는 좋지 않더라구요. 주지를 맡은 이후에는 자주 웃고 농담도 곁들이게 됐죠. 수행자도 젊을 때는 용맹스럽게 정진해야 되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자비심으로 살아야 된다고 봅니다.”

‘나이 들어서 부드러워진다’는 스님의 말은 궁색한 변명이 아니다. 어린이법회에 가서 어린이들과 함께 박수치고 최신 곡의 안무를 외워서 청소년들에게 선보이기도 했다. 청년회에 가서는 현실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입시생을 둔 주부에게는 기도를 통해 신앙심을 고취하도록 이끌었다. 중생이 바라는 모습에 따라 32응신으로 나투셨다는 관세음보살처럼 스스로 카멜레온이 된 것이다.

“은사 스님께서는 항상 중생의 뜻을 따라서 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생활신조로 삼는 표현이 물위걸용지인 능위서타지인(勿爲乞容之人 能爲恕他之人)이라. 용서를 바라는 사람이 되지 말고 용서를 하는 사람이 되라는 말입니다. 용서 빌지 않는다는 것은 바른 삶을 살아가는 것이고 용서를 하라는 것은 용서하고 이해하는 사람이 되라는 의미지요.”

어떤 변신도 준비되어 있는 스님은 “사회가 고통받는 부분을 종교계가 치유하는 것이 법음을 전하는 길”이라는 소신으로 복지포교에 앞장서고 있다. 혜원정사 총무를 지낼 때부터 청소년 장학금 전달과 어르신 경로잔치, 타종교 복지시설 자원봉사 활동, 명절이웃돕기, 그리고 열린음악회 등 셀 수 없는 사업을 실천해왔다. 사회복지법인 혜원의 시작은 복지포교의 연장이다. 영도구노인복지회관의 수탁 당시 신설법인이지만 운영권을 딸 수 있었던 이유도 종교를 초월해 다져 온 그간의 복지 노하우 덕분이었다.

앞으로 스님이 주력할 분야는 인재불사와 노인복지다. 스님의 인재불사는 일 년 내내 이어진다. 재단법인 고산장학회를 통해 연산경찰서와 연제구청, 동사무소에서 장학금을 전하고 혜원정사와 인접한 연동초등학교와 연산중학교에서도 매년 부처님오신날을 전후해 각 학교의 재학생 5명에게 직접 장학금을 전달한다. 특히 연산중학교에서는 10년간 지속한 장학 사업으로 감사패를 수여받고 묘봉장학회를 설립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다. 매년 6월이면 4천여 명이 운집하는 혜원음악회에서는 1천 만 원의 기금을 마련해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전하고 설과 추석에도 영세 가정에 장학금이라는 명칭으로 후원을 이어오고 있다.

실버타운으로 회향처 제공할 터

“어린이집을 거쳐 간 장학금을 받은 이들이 앞으로 자라서 사회생활을 할 때 한번이라도 사찰에서 뛰어 놀던 장학금을 받았던 순간을 기억하고 바른 생각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것 자체가 포교”라는 스님은 실버타운의 건립도 발원하며 1인 1평 갖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실버타운은 어르신들에게 정신적으로 안정을 주고 신행활동을 통해서 건강한 회향으로 이끌 수 있는 시설이다.

10년이 넘게 도심포교를 하면서도 철저하게 계행을 지켜 온 스님은 1년에 한 철은 꼭 강원도 오대산의 상원사 선방에 방부를 들인다. 은사인 고산 스님과의 약속이기도 하거니와 이제 선방 행은 포교를 위한 재발심이다. 눈을 뜸과 동시에 잠들기 전까지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야 하는 도심 법당을 벗어나, 석 달 동안 내면을 챙기면서 수행자의 삶을 점검하는 시간. 비록 스님에게는 한 철이지만 정진 대중의 에너지가 더해지고 스님을 기다리는 불자들의 신심이 더해져서 두 배 세 배 큰 원력의 복지와 포교로 거듭난다.

혜원정사 마당에 계절을 만난 국화와 코스모스가 가득하다. 스님의 치열한 정진이 복지와 인재불사라는 회향(回香)이 되어 국화향보다 은근하고 풍성한 향기를 발하고 있다. 

부산=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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