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8. 비상민족대표자대회 결성 제안

기자명 법보신문

동필무에 연합국회의 소식 듣고
김구에게 이승만 자격 박탈 요구

성숙은 예정에 없던 청년운동가의 방문에 순간 여러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으나, 이내 흐뭇한 마음이 되어 손수 차를 끓여 대접했다. 성숙은 이때까지만 해도 광동꼬뮨 사건으로 인해 소위 진짜 빨갱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말하고 행동하는 것 하나 하나에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김준엽 역시 공산주의에 대해 먼저 물었다. 성숙은 “내가 진짜 공산주의자라면 극좌파와 함께 연안으로 가서 투쟁을 했지, 여기서 국무위원을 하고 있을 이유가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국내의 절대 다수가 무산 대중인데 그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는 나라를 운영할 수가 없네, 그렇다고 해서 계급 투쟁이나 폭력혁명을 해서는 절대 안되네.”

성숙은 분명하게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힘을 모아 일본제국주의의 노예가 되어 있는 동족들을 해방시키는 것이 가장 급한 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김준엽은 외관상으로 스님과 같은 인상이면서도 말문을 열고 나서 보이는 성숙의 열정적인 모습에서 진심을 읽을 수 있었다.

며칠 후 임시정부 사무실에 나온 성숙은 임정요인들과 함께 깊은 시름에 잠겼다. 일본의 패망이 가까워지고 있으나, 임시정부가 연합국으로부터 교전단체의 자격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임시정부는 중국정부 이외의 다른 연합국으로부터 승인을 얻지 못하고 있어서 일본이 패전하더라도 정부의 기능을 인정받을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이때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보였다. 중국의 도움을 받아 1945년 4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연합국회의에 옵저버 자격으로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임정은 외교부장 조송앙을 사절단장으로 하고 주미 외교위원장 이승만을 부단장으로 선정해서 사절단을 구성했다. 그러나 시일이 너무 촉박해 중국에 있는 임정요인들의 미국행이 어려워졌고, 어쩔 수 없이 미국에 있는 이승만을 단장자격으로 참석토록 했다.

그런데 여기서 큰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미국의 공화당 사람들과 친분관계를 맺고 있던 이승만이 민주당 정부를 곤혹스럽게 하려는 공화당의 입김을 받아 소련을 비난하는 성명서를 연합국회의에서 돌렸던 것이다. 당시 동필무, 주은래 등 중국 고위 인사들과 친분관계가 있던 성숙은 연합국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온 동필무에게 이같은 소식을 전해들었다. 성숙은 가슴속에서 치미는 분노를  다스리고는 조소앙, 김원봉, 장건상과 이 문제를 협의했다. 그리고는 김구 주석에게 임정 국무위원회의 소집을 요청했다.

소련은 국제적으로 발언권이 컸고, 미국의 민주당 정부 역시 대일전에 소련을 끌어들이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었기 때문에 임시정부로서는 일본을 타도하고 해방을 앞당기기 위해 일시적으로라도 소련과 손을 잡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임시정부의 사절단장 자격으로 연합국회의에 참석한 이승만이 소련을 비난하고 나섰으니 임시정부 입장에서도 당혹스러울 뿐이었다. 그리고 연합국회의 이후 소련은 중경의 임시정부를 적대시하며 혹독하게 깎아 내리기 시작했다.

김구 주석 주재로 열린 국무위원회에서 성숙은 이승만을 주미 외교위원장에서 면직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임정은 해외 각지에 산재한 각종 반일 혁명단체의 대표자를 소집해 비상민족대표자대회를 조직하고 이 대회에서 의정원을 확대 개편하는 것은 물론, 국무위원회를 개선하여 임시정부를 미주 만주 시베리아 등지에 산재한 반일 혁명대중의 기반 위에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날 국무위원회에서는 이승만의 주미 외교위원장 자격을 박탈하는 것만 의결하고, 성숙이 주장한 임정 개혁안은 장시간 논란을 벌이고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sjs88@beopbo.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