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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싯대-엽총 버리고 염주를 손에 쥐다

기자명 법보신문

중앙신도회 구 자 선 고문

“너는 인간에 있을 때에 아이들이 살생하고 고기 먹는 것을 돕거나 기뻐하였으니, 살생한 까닭에 목숨이 짧고, 기뻐한 까닭에 괴로우리라. 그리하여 똑같은 과보를 받고 지옥에 들리라.”

“그들을 내 몸과 바꾸어 비교해 보라. 남을 시켜 죽이게 해서도, 스스로 죽여서도 안 된다.”

천축사서 법문 듣고 불문에 입문

천축사 법당 한 쪽에 앉아 있던 중년의 한 남자가 움찔거렸다.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 멍한 눈빛에는 긴장감마저 서렸다. 떨리는 두 손은 연신 식은땀을 훔쳤다. 이대로는 안 된다. 중년의 한 남자는 그 길로 산신각에 올랐다. 참회하고 또 참회했다. 다신 살생하지 않겠노라고. 당시 마흔 아홉이었던 중앙신도회 구자선(72·덕암) 고문은 그렇게 불제자의 삶을 서원했다.

1937년 전북 부안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전쟁 이후 열일곱에 서울로 상경했다. 가진 것이라곤 꽉 움켜쥔 두 주먹밖에 없었지만 잘 살아보리라는 그의 신념은 당찼다. 스물일곱에 한 여자와 백년가약을 맺고 그녀를 평생의 반려자로 맞이했다. 가족을 위해 자신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렸다. 돌아볼 여유란 없었다. 억척같이 돈을 모았다. 노력은 결실을 가져왔고 1960년 후반 맨손으로 (주)태우주택을 일구었다. 크고 작은 일을 구별하지 않고 주어진 일에 항상 최선을 다했다. 큰 물질을 얻고 나자 주위에선 자수성가 했다는 말도 들렸다. 듣기에 싫지 않았다. 성실한 노력의 대가라고 생각했다. 여유는 그의 삶을 윤택하고 풍요롭게 해주는 것 같았다. 그는 이곳저곳으로 사냥과 낚시를 다니며 노력의 대가를 누리고 있었다.

“어머니와 아내가 모두 신심 깊은 불자입니다. 전 당시에 교회에 다녔지요. 낚시와 사냥이 좋아 다녔는데 집에서 반대가 심했어요. 그냥 사냥을 좀 했기로서니 그게 나쁜 것인지 몰랐지요. 아내가 만류하며 불교를 권하더군요. 무작정 천축사로 갔는데 그곳에서 들은 법문은  20여 년 동안의 제 삶을 바꾸기에 충분했어요.”

재미로 낚시나 사냥을 하고 새와 물고기를 잡는 행위는 모든 생명을 육도의 중생으로 파악하는 불법에는 더할 수 없는 죄악이다. 그는 일타 스님에게 덕암(德庵)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오계를 수지하고 다시는 살생하지 않으리라 서원했다. 그 날 새벽부터 기도에 들어갔다. 그 동안 뭇 생명을 살생한 업장을 평생 참회할 각오였다. 동이 트기도 전 새벽 3시. 집 한 쪽에 마련한 기도방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천수경』『금강경』을 독경하고 사경, 그리고 108배 참회를 마치면 동이 텄다. 여기에 성치 않은 몸으로 25년 동안 자신의 옆을 지켜준 아내를 위한 기도도 시작했다. 강산이 두 번 바뀌어도 그의 아침은 늘 이렇게 찾아왔다.

이미 총기류는 태릉선수촌에 기증하고 사업도 하나 둘 씩 정리한 그였다. 옷차림도 잠바에 운동화 차림으로 바꿨다. 행동거지에 꾸밈이나 삿된 것을 하나씩 버렸다. 그리고 소유에 대한 집착도 차츰 내려놓았다. 그리고 소리 소문 없이 바라밀 첫 번째 수행 덕목인 보시를 실천했다. 아내의 쾌유 또한 기원하며.

매일 사경과 108참회로 아침 열어

동국대 일산병원과 연대한 날마다 좋은 날 불교의료지원단 반갑다 연우야에 내과 진료 버스 기증, 조계사 삼존불과 일주문 불사 때 신도회 고문 자격으로 회장단과 불사금 보시 등등 그가 손을 내민 곳은 여러 곳이다. 또 반갑다 연우야에는 곧 치과 치료 전문 버스도 기증할 예정이다. 여기에 대한불교군불교후원회 이사장 소임을 맡아 군포교를 하는 이들의 발걸음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뿐만 아니다. 조계사 신도회 고문인 그는 2006년 9월 거사림회를 준비해 올 1월 창립시켜 신도들의 신행까지 챙겼다. 게다가 지난해 7월 적지 않은 나이에 수해로 삶의 터전을 잃은 수재민을 위로하기 위해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신기리, 마평리, 속사리 등에서 수해복구활동을 펼쳤다. 부처를 닮으려는 그의 행보는 불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 자비의 울타리를 만들어 놓고 있다.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더 물어도 고개를 저으며 묵묵부답이다. 돌아온 답은 보시의 철칙. 절대로 부처님 법에 의한 일이 아니면 10원 한 푼 보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처님 법이란 바로 정토사회 구현. 그의 신념은 손자, 손녀들에게 불호령이었다. 외국서 공부하고 있지만 방학 때면 국내로 돌아와 꼭 봉사활동을 해야 한다. 할아버지의 말대로 손자, 손녀들은 불교의료봉사단체에서 통역을 비롯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기자 양반, 자꾸 뭘 물어보시는 거예요. 필요한 곳에 가진 것을 조금 나누고 있을 뿐인데. 그리고 살생 업장 소멸하고 아내가 건강하라고 기도하는데 내가 뭐가 잘났다고.”
잘난 게 없다고 했다. 범부다. 허나 그는 잘났다. 우리는 이미 소유의 노예다. 가지지 않으면 불안하다. 뭔가 부족하면 끊임없이 갈망한다. 그러나 그것을 얻고 나면 다른 부족한 것들이 느껴지고 욕망들이 고개를 치켜든다. 자본과 소유, 결핍의 틀 안에서 자유롭기란 어렵다. 세상은 그곳에서 탈락해 자유로운 이를 ‘낙오자’로 덧칠한다.

그는 ‘낙오자’다. 예부터 보기 드문 나이라는 일흔. 어느새 일흔 살을 넘긴 그에게 ‘낙오자’란 말은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죽음이 가까워지는 나이에 누구라도 소유에 대한 집착은 버릴 수 있다고 할지도 모른다.

만족은 끝을 모른다. 그도 사업을 하면서 만족을 몰랐다. 이윤을 창출해야 하는 사업을 하다 보니 욕심이 곳곳에서 생기더란다. 현상과 본질을 바르게 보는 안목이 없으면 유혹에 빠지게 마련. 그는 수도 없이 유혹의 구렁텅이에서 허우적 거려봤다. 허나 불교와의 인연은 그에게 참회와 함께 안목을 길러줬다. 비단 만족은 나이의 적고 많음을 떠나 얻기가 힘들다. 그러나 그는 물질이 현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6년 전 회사 정리절차에 들어가 갖고 있던 개인재산까지 대부분 매각해 정리했던 것이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마음이죠. 내 마음이 평안해야 참 행복은 찾아옵니다. 그것은 바로 진실한 참회부터 시작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끊임없이 정진하고 기도하면 평온한 마음은 자연히 따라옵니다. 평상심을 갖게 되는 겁니다.”

봉사-불사-포교 삼박자 신행

그가 웃는다. 웃음은 얼굴에 파인 주름 고랑을 타고 얼굴 전체로 번진다. 한 할아버지가 살생의 업장을 소멸하고 아내의 건강을 빌며 모두가 부처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서원으로 황혼을 맞고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섰다. 그를 만난 11월 3일 화창했던 일요일 오후, 해도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었다. 날씨가 쌀쌀해진다. “웃으실 때 정말 주름이 멋지시다.” 정수리를 푹 찌르며 가슴에 덜컥 화두를 던졌다. “기자 양반, 행복한가요?”
 
최호승 기자 sshoutoo@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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