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흠 교수의 시로 읽는 불교] 34. 마음①-‘혜성가’
[이도흠 교수의 시로 읽는 불교] 34. 마음①-‘혜성가’
  • 법보신문
  • 승인 2007.11.27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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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혜성’ 한 단어 바꿔 길조로 찬탄

승려 낭도 융천사, 혜성 ‘길쓸별’로 표현
왜군 침략 헛소문에 동요된 민심 다독여

마음이란 무엇일까. 마음은 대상이 없이 존재하는가. 우주 삼라만상이 모두 마음이 지어낸 바라면, 마음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마음은 구체적인 현실도 바꿀 수 있는가. 마음이 땅의 질서는 물론 천상의 질서도 바꾸었던 이야기를 통해 마음을 알아보자.
신라 진평왕(眞平王: 579~632)대 초가을이다. 하늘에 혜성이 나타나 붉은 줄을 그리더니 신라 왕을 상징하는 심대성이란 별(전갈좌의 안티레스)을 스치고 지나갔다. 때마침 왜병이 침략한다는 소문도 들린다. 3천여 명의 낭도를 이끌고 금강산으로 산행을 떠나려던 거열랑, 실처랑, 보동랑 등 세 화랑의 무리는 당연히 산행을 파하고 만약에 있을 왜병의 침략에 대응한다. 이것만으로 못 미더워 융천사에게 의식을 행하라고 하고 여기서 융천사는 ‘혜성가’를 부른다.

“혜성이 왕의 별을 범했다”

옛날 동쪽 물가/건달파 놀던 성일랑 바라고/‘왜군도 온다’/봉화를 올린 변방의 수자리여//삼화(三花)가 산 오르신다는 말씀 듣고/달도 부지런히 밝히려는데/길쓸별 바라보고/‘혜성이여’ 사뢴 사람이 있구나//아,아! 달 아래 떠가버리더라/이에 어울릴 무슨 혜성의 기운이 있을고.//

옛날 동쪽 물가라 하였으니 초구(1연)는 과거의 사실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진평왕대보다 과거에 서라벌의 동쪽 해변에서 봉화지기가 저지른 실수를 지적하고 있다. 그는 신기루를, 그것도 신라인이 호국신인 건달파성으로 간주하는 것을 일본병의 선단이 바다를 건너 침략하는 것으로 착각하여 봉화를 올린 모양이다.

지금은 보기 어렵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겨울날 경상도 일대의 동해를 찾는 이들은 가끔씩 신기루를 만났던 모양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동해는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여 좋은 어장을 형성한다. 겨울에는 북한 한류가 거의 포항과 울진 인근까지 내려온다. 그러면 이것은 난류와 만나고, 자연히 그 해류가 품고 온 차가운 공기와 따뜻한 공기가 부딪히게 된다.

이로 수증기가 맺혀지고 수증기는 모여 신기루를 만든다. 여기에 햇빛이라도 들면 이 신기루는 아름다운 성 모양의 형상들을 그려낸다. 실제로 허종(許琮), 안축(安軸), 채수(蔡壽) 등 시인 묵객들이 동해 울진의 능허루, 통천의 총석정, 평해의 망양정 등을 찾아 이를 보고 “노한 물결 바다에 이니 눈서리인 듯 넘치고 신기루 공중에 뜨니 누각 중첩이라” 등으로 묘사하였다.

그러면 이 신기루가 어떻게 건달파성으로 변하였을까? 건달파(Gandharva)란 팔부중신(八部衆神)의 하나로 항상 부처님이 설법하는 자리에 나타나 올바른 불법을 찬탄하고 불교를 수호하는 제석(帝釋)의 천락신(天樂神)이다. 지상의 보배로운 산중에 있으면서 술과 고기는 먹지 않고 향기만 맡아 음신(陰神)을 돕고 기악(伎樂)을 맡은 향신(香神)으로 그 뜻이 변하여 악인(樂人), 혹은 배우를 칭하기도 했다. 또 이들 배우가 생업에 종사하지 않고 여러 집들의 음식의 향기를 찾아 그 집 문 밖에 가서 여러 기악을 베풀고 음식을 구걸했으므로 오늘날의 ‘건달’의 의미로 어의가 변했다.

건달파성이란 번역어로 심향성 신기루(尋香城 蜃氣樓)인데 건달파가 해가 뜰 때 환작술(幻作術)로 만든 신기루와 같은 것을 의미한다. 불법을 수호하는 건달파성은 불국토의 동쪽 앞 바다에 있다. 건달파가 사천왕천(四天王天) 중 동주(東洲) 지천국(持天國)의 다라타천왕(多羅天王)의 밑에서 이를 지키는 일을 하는 신장(神將)이기 때문이다.

신라인은 바로 이 땅 신라가 불법의 인연을 맺은 불국토이며 부처님과 보살이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신라인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들은 남산을 불국토로, 낭산을 수미산으로 삼았으며, 화랑을 미륵, 왕을 전륜성왕의 화신으로 보았다. 설화를 보아도 처음엔 불보살이 하늘에서 떨어졌으나 나중에는 이 땅 신라에서 솟아난다. 그러니 불국토인 신라 앞바다에 한류와 난류가 만나 이루어지는 성 모양의 신기루는 자연히 불국토를 지키는 건달파성이 된다.

따라서 초구는 “옛날 동해안에 나타나는 신기루가 신라를 지켜주는 호국신인 건달파성인지도 모르고 왜군의 선단(船團)으로 착각하여 봉화를 올린 변방이 있었어라.”로 해독된다. 진평왕대에 혜성이 심대성을 범하는 일이 일어나기 전의 어느 시절에 동해변의 봉화지기가 동해 안에 나타나는 신기루, 그것도 신라를 지켜주는 호국신의 구실을 하는 건달파성을 보고 왜군의 선단으로 착각하여 봉화를 올리는 바람에 신라가 온통 난리였으나 나중에 알고 보니 한갓 해프닝에 불과하였던 일을 융천사는 상기시키고 있다.

승구(2연)에서, 삼화(三花)는 『삼국유사』의 맥락과 관련지을 때 거열랑 실처랑, 보동랑 등 세 화랑의 무리 3천여 명을 뜻한다. “산 오르신다”는 “그 당시 대표적 유오지(遊娛地)이자 소사(小祀)의 대상이었던 금강산으로 산행을 간다.”이다. 풍류도라 불리는 화랑은 원래 신라적 샤머니즘이라 할 풍류도 사상에 따라 산천이 아름다운 곳을 찾아가 거기에 깃든 신께 제사를 지내는 집단이었다. 아름다운 산천에서 풍류를 즐기는 가운데 자연스레 호연지기를 길렀고 삼국통일 전쟁 과정 중에서 이들은 산천에 대한 신앙을 조국 산천에 대한 사랑으로 바꾸어 이를 실천으로 옮겨 호국집단화한 것이다.

풍류도-불교 융합한 세계관

융천사는 신라의 고유신앙인 풍류도(風流道)를 불교와 융합한 풍류만다라의 세계관을 지향한 자다. 풍류도를 따르는 무리란 뜻으로 풍류도(風流徒)라고도 한 화랑도는 천상계의 조화와 원융의 상징으로 달을 숭배하였다. 노래 속에서 달은 화랑이 가는 길을 훤히 밝혀주는 길잡이다. ‘부지런히 밝힌다’는 것은 달이 이를 적극적으로 수행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삼화의 산 오르신다는 말 듣고 달도 부지런히 밝히려는데’는 “세 화랑의 무리가 금강산으로 산행을 떠나자 천상의 원융과 조화의 상징인 달이 화랑이 가는 길을 두루 비추며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는데”라는 의미이다.

이런 상황에 혜성이 심대성을 범하는 천상계의 혼란이 일어난다. 천상의 질서와 지상의 질서를 동일시한 당대 신라인에게 혜성이 심대성을 범했다는 것은 국가의 혼란, 더 나아가 불법과 인간의 괴리, 세계와 인간과의 부조화를 의미한다. 이런 세계의 혼란에 대해 화랑이 산행을 멈추고 직접 맞서는 현실적 대응을 취한다. 그러나 현실적 대응만으로는 불안하다. 다음의 방법은 문화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이 소임을 당시에 화랑의 정신적 지주이자 집사제자(執事弟子)의 위치를 점했던 승려낭도 융천사가 맡는다.

천지변화도 마음이 해석

그는 이 난국을 어떻게 해결하였을까? 하늘에 나타난 혜성을 혹성이거나 운성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것은 일식을 미리 예측할 정도로 천문 관측술이 발달한 신라에서는 용납되지 않는다. 마침내 융천사는 천체의 일종인 혜성을 인정하면서도 혜성의 흉조성을 없앨 수 있는 묘안을 생각해낸다.

‘혜성’이나 ‘길쓸별’이나 다 혜성의 현상에서 비롯된 기호들이다. 혜성이 하늘에 붉은 줄을 긋는 기능이 흉조의 은유를 형성한다면, 빗자루 모양의 생김새는 ‘빗자루’ 또는 ‘빗자루 모양의 것’으로 의미를 옮긴다. 실제로 혜성을 신라 당시에 ‘소성(掃星)’이라고도 표기하였다. 융천사는 이에 착안하여 혜성의 이름을 바꾸어 버린다. 흉조의 의미를 갖는 혜성을 ‘길쓸별’이라고 불러주어 혜성에서 부정적 의미를 거세시키고 있다. 이로 혜성은 하늘에 붉은 줄을 그어주는 불길한 별이 아니라 사람이 가는 길, 그것도 화랑이 가는 길을 쓸어주는 길조의 별로 다시 태어난다.

이와 더불어 쳐들어오려던 왜병 또한 아무런 소득 없이(無功而退) 물러간다. 따라서 노래에서는 “화랑이 가는 길을 쓸어주는 길한 별을 보고 흉조의 상징인 혜성이라고 아뢴 사람이 있구나.”로 외치고 있다. 『삼국유사』의 관련 기록에서는 당연히, “괴이한 별은 곧 사라지고 일본병마저 돌아가버렸다.”’라고 말한다.
〈다음 호에 계속〉

이도흠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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