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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 목소리 시각장애인 시름 덜다

기자명 법보신문

녹음도서 제작 은석초 연화불교어린이회

“이 녹음도서는 은석초등학교 불교연화어린이가 시각장애인과 환자 등 글을 읽을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낭독 봉사를 한 것입니다.”

장난기 가득한 동자승들이 복숭아를 먹고 있는 그림이 눈에 확 들어오는 CD위에 새겨진 문구다. 무슨 CD일까. 제목은 ‘녹음도서 어린이 불교성전’. 오디오에 CD를 넣으면 통통 튀는 찬불가를 배경으로 법구경의 ‘비둘기 부부’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구연동화 같다. 비록 전문가와 같은 능숙함은 없지만 또박또박 읽어 내려고 안간힘을 쓴 흔적이 밴 목소리는 귀에 쏙쏙 들어온다. 때 묻지 않은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미소가 절로 배어난다.
CD의 목소리 주인공들은 서울 은석 초등학교 불교반 연화어린이회 어린이들. 지난 11월 7일과 15일 두 차례에 걸쳐 전문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CD는 총 6000부가 제작됐다. 낭랑한 아이들의 목소리가 첫 선을 보인 11월 26일, CD는 장애인복지관과 군부대, 불교 유치원 등 전국 250여 곳에 무료로 배포됐다.

어린이들이 시각장애인을 위한 녹음도서를 직접 제작해 전국에 배포한 것은 국내 최초다. 이웃 종교를 포함해도 이런 선례는 없었다. 기성 배우나 전문 성우를 기용해 선교용 CD를 만들었을 뿐이다. 간혹 일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교회 등에서 소장용이나 기념용 CD 등을 제작하는 경우는 있었다.

아이들 직접 녹음 전국 250곳 보시

“이 음반은 늘 법회에서 강조해왔던 ‘나눔’을 아이들이 ‘실천’으로 옮기는 과정입니다. 지식을 몸으로 실천하면 보람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죠. 말로만 듣던 것들을 힘든 과정 속에서 이뤄냈을 때, 또 내 땀방울에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진짜 살아있는 교육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실 녹음 자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 아닌 남을 위하는 마음을 배웠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죠.”

‘녹음도서’라는 ‘작품’을 만들어 내는 모든 과정을 총 지휘한 연화어린이회 지도법사 송현 스님은 “진정한 교육이란 아이들이 몸으로 체험하며 얻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에 배포된 CD들은 연화어린이회의 두 번째 결과물이다. 첫 번째는 이미 지난 2005년 시각장애인 도서관과 맹인불자회, 전국의 복지관 등 50여 곳에 보내져 화제가 됐던 바 있다. 당시에는 연화어린이회에서 활동하고 있던 아이들 12명이 녹음에 참가했다.

비구니 스님이 대장이 되어 장난기 줄줄 흐르는 초등학생들을 데리고 진행하는 작업이었기에 우여곡절도 많았다. 음반제작이나 녹음 등에는 소위 까막눈이었기 때문이다. 민감한 녹음용 마이크는 아이들의 잘못된 발음이나 습관을 눈감아 주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쯤이야 문제될 것이 없었다. 진정한 어려움은 CD제작에 필요한 모든 과정과 준비를 지도법사 스님과 지도교사들이 감당해야 한다는데 있었다.

불교전래동화를 CD로 녹음하자는 계획은 세웠는데, 저작권이라는 생각지 못한 걸림돌이 있었다. 한 고비를 넘겼다 싶으면 코앞에 또 다른 고비가 예고 없이 앞을 가로막기 일쑤였다. 시각장애인 도서관 내에 마련된 녹음실에서 무료로 CD를 제작할 수 있다는 말에 찾아갔더니 전문 성우가 아니라는 이유로 퇴짜도 맞았다. 담당자에게 아쉬운 소리도 해보고 구슬려도 봤지만 도무지 말이 통하질 않았다. 결국 연화어린이회 학부모들과 스님, 교사들이 십시일반으로 자금을 마련해 고비를 돌파하기로 했다.

스님의 계획을 전해들은 학교에서도 손을 보탰다. 그렇게 어렵사리 서대문의 ‘서라벌 녹음실’에서 녹음을 마쳤을 땐 그 동안의 고생과 설움이 울컥 솟아올랐다. 비로소 첫 작품들이 탄생했다. ‘꼬마 판다의 깨달음’, ‘이 땅에 오신 석가모니’라는 이름을 단 두 개의 녹음도서가 연화어린이회에게는 잊을 수 없는 첫 결과물이다.

부처님 말씀 주변에 전해 보람

첫 문을 열어놓고 나니 두 번째는 훨씬 쉬워졌다. 처음에는 힘들게 설득해서 간신히 이뤄냈던 과정들이었는데, 이번에는 “하겠다”고 말을 던지니 “좋다. 하자”고 답이 돌아왔다.

녹음과정도 한결 쉬워졌다.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연습시키는 데에도 요령이 붙었다. 역시 경험이 자산이었다. 첫 녹음에 참가했던 아이들 중 이번 녹음에 다시 참여한 일부 아이들의 도움도 컸다. 첫 녹음 당시 4학년이었던 유경현, 차재희, 이동규 어린이는 6학년이 되어 선배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아이들은 방과 후와 주말을 이용해 연습했다. 동화작가이기도 한 연화어린이회 지도교사 이슬기 선생님과 최주영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각자 맡은 분량을 충분히 소화해낼 수 있을 만큼 열심히 했다. 반복된 연습은 결과로 나타났다. 이번 녹음에서 아이들의 녹음시간은 두 차례 모두 30분을 넘지 않았다. 이른바 ‘원 테이크’라 불리는 ‘한 번에 녹음하기’가 가능한 수준. 녹음 감독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
혹시 연습이 너무 고되지는 않았을까. 걱정은 기우였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좋은 일하게 돼서 보람찼어요. 연습할 때도 재미있었고 녹음할 때도 재미있었어요. 연습도 하나도 안 힘들었는데요.”(3학년 김서연, 유경록 어린이)

“저번에는 아무 것도 모르고 해서 힘들다는 생각도 했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시각장애인들에게 내 목소리로 희망을 준다는 생각에 훨씬 열심히 했어요. 얼마나 보람 있는데요.”(5학년 박수빈 어린이)

이웃종교 포함 ‘최초’학교 전통 남길 것

송현 스님은 “천방지축 같던 아이들이 녹음을 준비하면서 달라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며 “누군가를 위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자세가 바뀌니 연습 태도도 진지하게 바뀌더라”고 말했다.

마이크 앞에서 직접 녹음을 해본 경험은 아이들의 꿈도 바꿔 놓고 있었다. 연화어린이회 관계자들은 “이번 녹음을 마치자마자 ‘아나운서가 되겠다’, ‘성우가 되고 싶다’는 아이들이 생기더라”며 “어릴 때의 경험이 인생을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사실을 이번에 새삼 느꼈다”고 전했다.

사실 힘에 부친다. 그러나 6년째 은석초등학교 아이들과 함께 하고 있는 송현 스님은 아이들의 마음에 불심의 씨앗을 심을 수 있기에, 아이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부처님의 말씀을 널리 알릴 수 있기에 이 일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계속 해야죠. 앞으로도 쭈~욱이요. 다른 선생님들이 3~4번만 만들면 학교의 전통이 될 수 있다고 하던데요? 저도 은석초등학교에 아름다운 전통이 이어지게 하고 싶어요. 이 CD들은 은석초등학교 녹음도서의 전통을 만들기 위한 시작인 셈이죠. 아무쪼록 힘든 과정 속에서 태어난 연꽃 같은 결과물들을 듣는 분들이 감사한 마음으로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스님이 좋아?”라고 물었다. 아이들이 “너무 좋다”며 벌떼처럼 너도나도 스님 품속으로 파고든다. 스님은 느닷없는 아이들의 포옹에 놀란 기색이 역력하다. 허나 곧 “항상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다”고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스님의 사랑에 아이들은 활짝 핀 연꽃이 되었다.

정하중 기자 raubone@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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