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백봉 김기추 거사- 끝
40. 백봉 김기추 거사- 끝
  • 법보신문
  • 승인 2007.12.11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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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만 좇지 말고 참 주인공 되라”

백봉 김기추(1908~1985) 거사는 20세기 한국의 유마거사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그는 50세를 훌쩍 넘어 불교에 입문했지만 용맹정진으로 큰 깨달음을 얻었고, 이후 20여 년간을 후학지도와 중생교화에 힘쓴 탁월한 선지식이다.

일제치하와 6.25 등 격동의 세월을 살아야 했던 한국 사람치고 파란만장하지 않은 삶이 있을까만 백봉 거사만큼 고단했던 삶도 극히 드물 듯싶다.

1908년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1923년 부산 제2상업학교에 입학, 뒤늦게 설립한 일본계 학교를 ‘부산 제1상업학교’라고 부르는데 반발해 동맹휴학을 주도하다 퇴학당했다. 이후 본격적인 수난의 세월이 시작된다. 20세 때 부산청년동맹 3대 위원장직을 맡아 독립운동을 하다가 1931년 형무소에 수감되고, 만기출소 후에도 일경의 감시가 끊이질 않자 만주로 망명, 동만산업개발사를 설립해 운영하던 중 다시 구금됐다.

당시 만주는 일제의 잔학이 극에 이른 곳이었다. 백봉 거사가 살아생전 고백했던 것처럼 아무런 죄 없는 사람들을 고문과 폭력으로 반죽음을 만들거나 칼로 머리를 자르는 잔혹한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이런 상황에서 독립운동 전력이 있던 백봉 거사가 만주의 감옥에서 살아나온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해보였다. 당시 불교신자는 아니었지만 그는 사방의 벽에 빈틈이 없을 정도로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쓰고 염송했다. 그 때문일까. 기적이 일어났다. 불자였던 일본 간수의 도움을 받아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힘겹게 맞이한 해방. 그러나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간사장을 맡았던 그는 극빈자들에게 쌀을 무상으로 배급하다 또다시 감옥 생활을 하게 된다.

이런 백봉거사가 수행에 힘 쓴 것은 1963년 6월, 그의 나이 56세 때다. 충남 심우사에서 우연히 무자(無字) 화두를 접하고 용맹정진을 하던 그는 다음해 정월 『무문관』의 ‘비심비불(非心非佛)’이라는 글귀를 보고 큰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 때 방광(放光)을 했고 함께 정진했던 대중들이 삼배의 예를 올렸다고 한다.

그 후 백봉 거사는 재가수행단체인 보림회를 결성해 지도하는 등 재가수행 열풍을 일으키는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부산에 보림선원을 개설한 후에는 10년간 주석하며 남녀노소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대중을 오묘한 불교의 세계로 이끌었다.

20여 년간 수많은 사람들을 교화했던 그는 1985년 9월 16일(음력 8월 2일) 여름 철야정진 해제 법어를 마치고 자신의 방에서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침내 ‘모습놀이’를 거두고 적멸에 들었다.

▷독립운동 등으로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고, 특히 젊은 시절 만주 일본 헌병대로 끌려갔을 때 관세음보살 명호를 벽에 쓰고 부름으로써 살아났다고 들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신심이 깊으셨나요?
“그렇지는 않았지요. 내 주변에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없었고 나 또한 불교나 다른 종교를 그리 곱게 생각하지 않았으니까요. 허나 왜 관세음보살님의 명호를 그토록 간절히 외고 벽에 썼는지 그때는 알 수 없었지요. 이제와 돌이켜보면 내가 자비심을 발동시키면 바로 나 자신이 관세음보살로 바뀌는 대행기관이었던 게지요. 나와 관세음보살이 둘이 아니라는 것은 나와 파순이(악마)와도 둘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실제 그곳에서 나를 도와준 사토라는 헌병은 내게 관세음보살로 다가왔지만 그가 그동안 300여 명의 목을 쳤다는 점을 생각하면 파순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그럼 그 때 풀려나오면서부터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갖고 수행을 시작하신 건가요?
“그건 아니에요. 난 그 뒤에도 종교와는 무관하게 살아왔지요. 다만 현대사의 조류에 휩쓸려 모진 시련과 좌절을 겪으면서 인생의 무상함은 뼈저리게 느꼈고 알게 모르게 뭔가 인생의 진리를 찾아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만 자리 잡고 있었던 겁니다.”
▷그럼 수행과는 전혀 상관없이 살아오시다가 뒤늦게 참선을 시작하셨는데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나요?
“내 벗 중에 신원경이란 분이 계셨는데 그 분이 참선 수행을 열심히 하셨지요. 어느날 그 분이 내게 불법을 권하면서 ‘이것을 공부하면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을 하는 게 아니겠소. 그래서 내가 그 이유를 물으니 ‘지옥이 붙을 자리가 없는데 어떻게 지옥에 떨어지냐’고 말하더군요. 이 말에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지요. 지옥이 안 붙는다니…. 그래서 화두를 처음 붙잡게 된 것입니다. 내가 어리석기에 공부를 이룰 수 있었던 거지 똑똑했다면 결코 그렇지 못했을 거요.”
▷그럼 깨닫고 나니까 바뀐게 무엇인가요?
“산하대지가 전부 내 성품 속에서, 내 뱃속에서 밝기도 하고 어둡기도 했어요. 내가 바로 온누리의 주인공이었던 거지요. 또 자기 인연에 따라서, 자기 멋에 따라서 산은 산대로 물은 물대로 스스로가 밝았습니다(水水山山各自明).”
▷거사님께서는 “나는 인생 본래의 면목을 되찾기 위하여 번뇌와 진로(塵勞)가 전부인 이러한 인생을 거부한다. 나는 인생 본래의 영지(靈智)를 되찾기 위하여 생로와 병사가 전부인 이러한 인생을 거부한다. 나는 인생 본래의 평등을 되찾기 위하여 기복과 구명(救命)이 전부인 이러한 인생을 거부한다.”고 천명했습니다. 이렇게 ‘인생 선언’을 하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바다가 넓고 깊다 하기로서니 사량(思量)을 하던가요? 안 하기 때문에 온갖 어류가 더불어 삶을 한 가지로 굴리며 가는 것이지요. 인생도 이와 같아 오로지 뒤바뀐 새김을 여의고 모름지기 엇갈린 판가름을 쓸어내면 본래 나의 면목은 문득 나투나니 이에 인생은 나의 인생이기에 좋고 세계는 나의 세계이기에 좋은 것입니다. 인생 선언은 끝없는 허공으로 더불어 대도(大道)를 행하기 위한 새 출발을 한 것이지요.”
▷거사님은 살아생전 ‘한국의 유마’로 불리며 불같은 사자후를 통해 수많은 학인들을 제접해 인도하셨습니다. 실제 『유마경대강론』을 펴내신 것 보면 유마거사에 대한 관심도 컸던 것 같습니다.
“유마거사는 계급의 높낮음을 가리지 않으시고, 곳에 따라 기틀을 꾸미시고 연을 일으키되, 불가사의한 법문을 가로 세로 굴리신 법신(法身)대사이시지요. 권도(權道)와 정도(正道)를 아울러 쓰시되 속계에 초연하시고 사(事)와 이(理)를 거두어 쓰시되 법계를 초출하신 대철인이시니 어찌 경외감을 갖지 않겠습니까.”
▷유마거사께선 하나의 등을 켜서 백천등을 밝히셨는데 그 유마거사의 진신은 이제 어디에 계실까요?
“허허, 꼭 만나 뵙고자 하는 외고집이 있거든 허공을 향하여 한 걸음 내어 디디세요. 그 곳에는 흰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유마 거사님이 눈을 껌벅이며 계실 것입니다.”
▷현대인들에게 당부하실 말씀이 있으신지요?
“세인(世人)들은 덮어놓고 불법을 어렵다고만 논평 할 뿐 아니라 더욱이나 견성이란 옛 책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자구(字句)처럼 신비롭게만 단정을 짓는 것이, 가장 사리에 밝은 현대인으로서의 올바른 지성인인양 자처하려는 경향이 있지요.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인생문제의 해결은 제각각의 수행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니 사람으로 태어나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불생불멸의 바다로 키를 돌려 깨닫기를 간곡히 당부 드립니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백봉 거사 어록

‘홀연히도 들리나니 종소리는 어디서 오나/ 까마득한 하늘이라 내 집안이 분명허이/ 한 입으로 삼천계를 고스란히 삼켰더니/ 물은 물은 뫼는 뫼는 스스로가 밝더구나.’
 (백봉거사 오도송)

“허공은 지혜가 없지만 여러분의 마음자리는 지혜가 있으니 바로 여러분이 허공의 주인공, 누리의 주인공입니다. ‘해말쑥한 성품 중에 산하대지 이루우고/ 또한 몸도 나투어서 울고 웃고 가노매라./ 당장의 마음이라 하늘땅의 임자인걸/ 멍청한 사람들은 몸 밖에서 찾는고야.’ 여러분이 바로 누리의 주인공인데, 이 사실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뼈대에다 살을 바르고 옷을 걸친 이 육신만을 ‘나’라고 하기 때문에 누리의 주인공이 못되는 거예요. 여러분이 ‘난 누리의 주인공이 아니다’라고 하더라도 그 아니라고 하는 놈이 누리의 주인공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잘났거나 못났거나 이 우주의 주인공인 것입니다.”
 (『도솔천에서 만납니다』 중에서)

“눈을 치켜뜨니 허공은 삼척(三尺)이요, 내려 뜨니 땅은 만장(萬丈)이로다. 삼척의 허공에는 끝이 없는 기미[幾]가 서리었고 만장의 땅에는 다함없는 모습[相]이 굴리어지니 이 실다움이냐, 이 헛됨이냐. 범부들의 상량(商量) 밖의 일이 아니던가. 이에 다달아 나는 백두산 천지로 목을 축이고 한라산 백록으로 수레를 끌게 하여 수미 고개에 앉으니, 보아라 보아라! 저기 만치에 엄청난 불기둥이 시방을 떠받치면서 삼세를 꿰뚫었으니 이 무슨 소식이랴. 이 소식인지라 바로 역대 조사와 선지식의 혓바닥 끝에서 뿜어내는 불기둥이니 어즈버야, 선(善)을 굴려서 악(惡)으로 바꿔놓되 그 악으로 하여금 고금의 성현을 가르치고, 악을 굴려서 선으로 바꿔놓되 그 선으로 하여금 시방의 중생을 건지는 불기둥이 아니던가.”
 (선문염송요론 중에서)

 

찬탄과 공경

“일찍이 수많은 선지식을 찾아다니면서 수행을 해왔지만 백봉거사처럼 분별이 뚝 떨어진 무심도인(無心道人)은 보지 못했다. 몸과 마음이 언제나 투명했던 그 분. 어떤 물음에도 손뼉을 치고 깔깔 웃으시던 천진한 그분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보림선원 조실 묵산 스님)
“백봉도인과의 만남은 내 인생의 방향을 전혀 다른 쪽으로 틀어놓았다. 밭에서 김을 매다 막걸리 한잔씩을 돌리며 ‘야! 막걸리잔 속에 우주가 있구나!’하시며 호탕하게 웃으시던 그분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성태용 건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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