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찬주 장편소설 -인연 61.

기자명 법보신문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닌 너는 어디서 주워 왔노.”
“저를 속이지 말고 스님 살림살이를 내보이십시오.”
“이놈 보그래이. 덕산탁발화(德山托鉢話)를 일러라.”


제 13장 회향

고명인은 송광사 일주문 밖에 차를 세웠다. 혜국은 자신을 송광사까지 태워다 준 고명인에게 미안했던지 소리 없이 웃으며 말했다.

“이왕 왔으니 제가 송광사를 구경시켜드리겠습니다.”
“스님, 저는 송광사를 보러 온 것은 아닙니다.”

고명인은 송광사보다는 태백산 도솔암으로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도솔암으로 가서 단 며칠만이라도 참선을 해본 뒤 미국으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고 선생, 그렇다 하더라도 송광사는 우리나라 삼보사찰 중 하나입니다. 법당에 들러 참배를 하십시오. 향을 사르고 절을 하는 것도 좋은 인연을 맺는 일입니다. 복 짓는 일입니다.”

고명인은 혜국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향을 사르고 절을 하는 것도 좋은 인연을 맺는 일이라는 말에 마음을 바꾸었다. 더구나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자, 그런 망설임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저승을 떠돌고 있을 어머니의 혼과 이승에서보다 더 좋은 인연을 맺고 싶었다.

고명인은 입장권을 사지 않고 혜국을 따라 매표소를 통과했다. 매표소 직원은 혜국을 보더니 합장을 했다. 한 발 앞서 걷던 혜국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해인사 포교국장 소임을 보았던 혜각스님에게 들은 얘기입니다만 어머니 보살님 기도를 위해 해인사에 들렀다가 우리 스님이 어떤 분인지 관심을 갖게 됐다면서요.”
“사실은 저도 대학생 시절 어머니를 따라 해인사에 갔다가 일타 큰스님을 한번 뵌 적이 있습니다. 이런 저런 인연으로 그리 된 것 같습니다.”
혜국도 자신의 속가 어머니가 생각이 난 듯 걸음을 멈추고 길가의 풀잎 하나를 뜯더니 말했다.
“이 풀의 이름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모르겠습니다.”
“풀 초(草)에 까마귀 오(烏) 자를 쓰는 초오라는 독초입니다. 제가 도솔암 살 때 어느 날 봄 아침이었습니다. 나물인 줄 알고 뜯어 먹었지요. 파란 잎을 씹어서 넘기자마자 혀가 따끔따끔하고 똑 쏘더군요. 잠시 후에는 목이 끊어지는 것 같았어요. 곧 숨이 넘어갈 것 같아 ‘사람 살려, 사람 살려’ 하고 소리쳤지요. 그러고는 다리가 뒤로 휘청하면서 앞으로 거꾸러졌어요.”

혜국이 의식을 잃은 것은 그때부터였다. 거기까지만 기억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기억을 뛰어넘는 또 하나의 세계가 나타났다. 혜국의 의지와 상관없이 또 하나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내가 제주도로 어머니를 찾아가 있었습니다. 수행자가 부처님을 찾는 것이 도리인데 좀 뭐했습니다. 어찌됐건 아주 생생했어요. 어머니를 뵙자마자 ‘어머니, 저 왔습니다.’ 하고 인사를 드렸지요.”

그런데 살아생전에 보던 어머니와 태도가 달랐다. 혜국을 쳐다보지도 않고 키에 얹힌 쌀을 고르고 있기만 했다. 아들이 행방불명 됐다고 중얼거리더니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간다며 불공쌀을 추리고 있기만 했다.

“어머니가 왜 그러셨는지 이상했어요. 별 일이 다 있네, 싶었지요.”
고명인은 초오 잎을 한 잎 따 코끝에 대면서 말했다.
“스님, 외람되지만 제가 생각하기로는 그것은 이상한 꿈이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머니가 바로 부처님이니까 어머니를 찾으셨던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속가의 어머니 역시 아들이 행방불명 됐다고 불공쌀을 고르는 일 또한 이치에 맞습니다. 스님이 부처를 이뤘으니 속가의 아들은 행방불명 된 거나 마찬가지이지요. 제 말이 틀렸습니까.”
혜국은 소리 내어 웃더니 말했다.

“고 선생, 돌아가신 어머니 보살님을 그리워한 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저처럼 독초를 씹어 삼키지는 마십시오.”

실제로 혜국은 도솔암에서 부처의 경지를 체험하기에 이르렀다. 졸음을 이기려고 철발우를 머리에 이고 가부좌를 틀었다. 졸면 철발우가 머리에서 떨어져 무릎을 찧었다. 철발우에 담긴 물이 엎질러져 옷을 적셨다. 그래도 혜국은 낙담하지 하지 않고 철발우를 머리에 이고 ‘어째서, 어째서……’ 하고 화두를 붙잡고 앉아 버텼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8시 반쯤이었다. 그날도 물을 가득 담은 철발우를 머리에 얹고 가부좌를 틀었는데, 시간과 공간이 사라지고 오롯이 화두를 든 마음만 남은 있는 경지를 체험했다. 순식간에 하룻밤이 지나가고 아침 해가 눈부시게 뜨고 있었다. 장엄한 일출의 풍광이었었다. 혜국은 환희심이 들어 벌떡 일어나 사자처럼 포효했다. 그러자 철발우가 굴러 떨어져 쿵! 하는 소리가 났다. 발우가 떨어지는 소리이기도 했지만 화두를 든 자신이 찰나 간에 풍비박산 나는 소리였다.

혜국은 사지(死地)에서 탈출한 사람처럼 ‘이제 됐구나!’ 하고 도솔암 방문을 박차고 나가 온 산을 헤매고 다녔다. 빈 산중을 낄낄거리며 달리던 혜국은 산토끼와 다람쥐는 물론 살아있는 유정물(有情物)을 향해서 ‘이놈들아, 바로 너희도 부처가 될 수 있다.’ 하고 소리쳤다.

그 길로 혜국은 해인사 백련암으로 갔다. 성철에게 자신이 깨친 경지를 알리기 위해서였다. 1973년도의 일이었다. 도솔암으로 들어가 한 번도 머리를 깎아본 적이 없는 봉두난발의 혜국은 성철에게 삼배를 올리고 난 뒤 말했다.

“큰스님, 약속한 일을 마치고 왔습니다.”
“뭐라꼬, 니가 깨달았다 이 말이가. 그래, 그렇다면 어흥! 이 소리가 어디에서 나왔노.”
“스님, 그 소리 가지고 몇 명이나 속여 먹었습니까. 그 말에 제가 속을 줄 압니까. 속지 않습니다.”
성철이 멈칫하더니 다시 물었다.

“유(有)도 아니고 무(無)도 아닌 너는 어디서 주워 왔노.”
“스님, 그런 거로 저를 속이지 말고 스님 살림살이를 내보이십시오.”
“이놈 보그래이. 덕산탁발화(德山托鉢話)를 일러라.”
이 말에 혜국은 대답을 못했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멍해졌다. 덕산탁발화를 들이미는데 도망갈 길이 꽉 막혀버렸다. ‘덕산탁발화’를 알음알이로는 설명할 수 있는데, 성철이 요구하는 바는 그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덕산탁발화.

그것이 공안(公案)이 된 내력은 이러했다. 하루는 덕산이 공양시간이 아닌데 발우를 들고 공양간으로 향했다. 공양주 소임을 보던 설봉이 말했다.
“조실스님, 종도 치지 않고 북도 치지 않았는데 어디로 가십니까.”
덕산은 대답하지 않고 조실채로 갔다. 설봉이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조실스님이 말후구(末後句; 선의 마지막 관문)를 모르시다니. 말후구를 모르면서 어떻게 조실스님이란 말인가.”
설봉의 말을 들은 선방의 암두가 말했다.

“예로부터 말후구를 모르면 조실 될 자격이 없다.”
설봉과 덕산의 얘기를 전해들은 산중 대중들이 웅성거렸다. 그러자 시자가 덕산에게 고자질을 했다. 덕산은 불같이 화를 내며 두 스님을 불러들였다. 이에 설봉과 암두가 조실채로 들어가 인사를 드리며 말했다.

“조실스님, 저희들을 불렀습니까.”
“너희들이 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냐.”
그러자 설봉이 덕산의 귀에 대고 뭐라고 속삭였다. 이에 덕산이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맞다. 맞다.”
도대체 설봉이 덕산에게 무슨 말을 속삭였기에 덕산이 손뼉을 치면서 좋아라고 했을까, 라는 것이 덕산탁발화가 던지는 물음이었다.
어쨌든 혜국은 말문이 막혀 당황했다. 성철은 또 다시 다그쳤다.

“덕산스님이 왜 손뼉을 쳤는지 일러 보그래이!”
“스님, 환한데 모르겠습니다.”
“짜슥이 양심은 있구마. 환한데 모른다꼬. 환하다는 소리는 빼라! 너 태백산 가지 말고 여기 백련암 영각에 있그래이. 3년은 더 해야 되는기라.”

그러나 혜국은 백련암을 떠났다. 다른 선지식을 만나 자신이 깨달은 바를 점검받고 싶었고, 성철의 배려와 상관없이 스승의 눈치를 보는 백련암 수좌들 사정도 고려해서였다. 그래서 혜국은 백련암을 내려와 바로 통도사 극락암으로 가 경봉 앞에 꿇어앉았다.

극락암은 바닷물이 빠진 백사장처럼 조용했다. 선방 대중들이 모두 영축산 정상으로 산행 나가고 없었다. 혜국은 시자 송암을 따라 삼소굴로 들어가 82세의 경봉에게 절을 했다. 경봉은 누운 채 머리를 산적처럼 기른 혜국의 인사를 받고는 말했다.

“혜국이 깨달았다고. 손 내봐라.”
잠시 후 경봉이 혜국의 손을 때리며 물었다.

“이 소리가 네 손에서 났는가. 내 손에서 났는가.”
“아이고, 스님. 어린애 달래는 소리 마시고 스님 살림살이나 내놓으십시오. 무자 소식을 일러보십시오.”
“무자 소식 말이냐.”
경봉이 벌떡 일어나 혜국의 멱살을 잡고 거칠게 흔들었다.

“여사미거(驪事未去)에 마사도래(馬事到來)라. 일러라.”
혜국은 또 막혔다. ‘나귀의 일이 끝나지 않았는데 말의 일이 도래했다’는 공안에 또 다시 심장이 멈출 듯했고 숨이 턱에 걸렸다. 그러자 경봉이 타일렀다.

“혜국수좌! 내가 오 처사 나가라고 할기다. 그러니 극락암에 1천일만, 3년만 살기구마.”
혜국은 다시 극락암을 뛰어 나와 송광사로 갔다. 이번에는 조계산의 선지식 구산을 찾아가 절을 했다. 구산은 대뜸 혜국이 자신에게 온 의도를 알고 말했다.

“저 앞산에 바위가 눈이 열렸구나. 눈 열린 소식을 일러라.”
“눈 열린 소식을 이르라고 한 사람에게 물으십시오.”
이에 구산이 원을 그려놓고 대답하라 했고, 혜국은 즉시 답을 했다. 다시 구산이 경봉처럼 ‘여사미거에 마사도래’란 화두를 물어와 혜국이 말했다.

“노장님, 왜 똑같은 말을 묻습니까.”
혜국은 구산의 다그침이 시원치 않다고 여긴 나머지 또 물었다.

“노장님, 귀 좀 빌려 주십시오. 어떻게 모든 사람이 들으라고 말합니까.”
구산이 대답 대신에 혜국에게 자신의 귀를 내밀었다. 그 순간 혜국은 구산의 귀를 올려붙였고, 구산은 안타까운 듯 혀를 찼다.

“미친놈!”

성철, 경봉, 구산 등 세 사람의 선지식을 만나 자신의 경계를 점검한 혜국은 전국을 만행했다. 누더기를 걸치고 머리를 긴 채 아무 데서나 자고 먹고 했다. 그러다 다시 도솔암으로 들어갔다가 구산의 부름을 받고 송광사 선방으로 갔다. 이후 몇 번을 더 송광사 선방을 들락거리다 나중에는 3년 결사를 마쳤다.

혜국은 구산을 얘기하면서 ‘참 놀라운 분’이란 말을 반복했다. 경내의 풍경소리가 들리자 구산이 더욱 간절하게 떠오른 듯 걸음을 멈추고 산길가의 유무정물에 합장하곤 했다. 그늘 진 산길 옆으로는 큰 개울이 얌전하게 흐르고 있었다. 해인사 초입의 홍류동 계곡의 거친 물살과는 대조적이었다. 구산이 제자를 사랑하는 듯한 모습처럼 계곡물은 동글동글한 바위를 적시며 흐르고 있었다.

“구산 노장님과의 인연은 지금 생각해 봐도 특별합니다. 노장님께서는 입적하실 때까지 사람을 시키거나 편지를 보내 저를 부르시곤 했습니다. 노장님께서 저를 직접 찾아오실 때도 있었고요. 함양 용추사 은신암으로 도망쳐 숨어 있을 때나, 소백산 토굴, 제주도 남국선원의 토굴에 있을 때도 당신이 직접 오시어 송광사 선방에 함께 살기를 원했어요. 3년 결사를 마치고 나서 조계산 상봉 밑 인월정사에서 겨울 한 철을 살 때였지요. 어느 날 치과를 가려고 나서는데 노장님이 어디를 가느냐고 묻길래 ‘하도 잠이 많아서 속이 상한 김에 나도 모르게 어금니를 물고 울다가 부러졌습니다.’ 하고 대답했지요. 뒷날 노장님께서 조용히 불러 갔더니 영원히 부러지지 않을 황금 어금니란 뜻의 금아(金牙)란 법호를 주시더군요.”

고명인은 세속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신뢰를 주고받고 살아온 혜국을 부럽게 쳐다보았다. 세속에서는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지만 선가에서는 법(진리)이 피보다 진하지 않나 싶었다.

“1977년도였을 겁니다. 입적하시기 얼마 전에도 불러서 갔더니 뭘 써놓고 저더러 가져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당신이 입던 누더기를 저한테 물려주시면서 ‘이건 네가 입고 살라’고 하셨습니다.”
“구산스님께서 무슨 글을 써 주었다는 것입니까.”
“우리 선가에서는 밀계(密啓)라고 합니다. 발설하면 온갖 시비가 생기지요.”
혜국은 고명인의 물음에 대답하기가 곤란한 듯 화제를 바꾸었다.
“지금도 저는 구산 노장님 제삿날에는 송광사에 오지 않더라도 노장님 계신 곳을 향해서 혼자서 향을 사르고 조촐한 의식을 치릅니다.”

그제야 고명인은 송광사에 온 혜국을 이해했다. 혜국은 자신을 이끌어준 여러 선지식들 중에서도 특히 구산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혜국은 대웅전으로 들어가 삼배를 하고 나오더니 바로 한 요사로 갔다. 3년 결사하면서 혜국 자신이 묵은 방인 모양이었다. 혜국은 마루턱에 걸터앉은 뒤 감개무량한 듯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뼈를 부수고 몸을 태우는 것이 정법이니
금아선자가 삼계의 사람들을 다 씹어 죽였구나
서쪽에서 온 소식을 나에게 전했으니
푸른 숲속 새벽 꾀꼬리 소리가 노파의 선일세.
碎骨焚身爲正法
金牙嚼殺三界人
西來消息固余囑
綠樹曉鶯老婆禪

순간, 고명인은 바로 이 게송이 구산으로부터 받은 밀계가 아닌가 싶어 물었다.

“스님, 지금 읊조린 게송을 전법게라고 하는 것입니까.”
“쓸데없는 소립니다. 일타스님이 저의 어머니 같았던 분이라면 구산스님은 아버지 같은 분이었습니다. 그런 분이 제게 무슨 말씀인들 못하셨겠습니까.” 

〈계속〉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