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규 변호사의 실크로드 견문기]①
[이상규 변호사의 실크로드 견문기]①
  • 법보신문
  • 승인 2008.01.14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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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라집·달마 구도길 거슬러 가다

유럽과 중도, 서아시아, 중국 사이의 상품 교역의 통로였던 실크로드는 다양한 문물과 문화의 통로이기도 했다.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 또한 이 길을 통해 오늘날의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을 거쳐 중국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불자들에게 실크로드는 상품 교역의 통로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학산 이상규 변호사는 지난해 4월 75세라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불교가 전해진 자취를 거슬러 실크로드를 탐방했다. 본지는 그의 실크로드 대장정을 4회에 걸쳐 연재한다.

 

<사진설명> 실크로드는 인도 동북부로부터 광막한 사막과 험준하기 짝이 없는 산맥들로 가로막힌 중국의 서역을 거쳐 당시 중국의 수도인 장안까지 불교를 전하고 발전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법보신문 자료사진)


중국과 유럽을 연결한 고대 대상(隊商)들의 통로 실크로드(silk road). 실크로드는 중국의 비단을 유럽으로 가져가고 유럽에서 호박(琥珀) 등의 보석을 중국으로 가져온 데서 착안해서 독일의 지리학자인 리히트호펜이 붙인 이름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는 중동이나 유럽의 상인들이 중국에서 많이 나는 비취나 옥을 교역의 대상으로 삼았던 데에서 제이드로드(jade road)로 불리기도 했다.

시안(西安, 당시의 長安)에서 시작하는 실크로드는 란조우(蘭州)와 쥬추안(酒泉)을 거쳐 둔황(敦煌)에 이르게 되고, 그곳에서 천산산맥과 타클라마칸사막을 사이에 두고 천산북로(天山北路), 천산남로(天山南路)와 서역남로(西域南路)로 나뉜다. 천산북로는 투르판과 우룸치를 거쳐 천산산맥의 북쪽을 통해 사마르칸트에 이르고 그곳에서 아시아 중부를 가로질러 멀리 터키에 이른다. 천산남로는 천산산맥의 남쪽 기슭과 타클라마칸사막의 북쪽을 타고 막수(阿克蘇)를 거쳐 서진한다. 서역남로는 타클라마칸사막의 남쪽과 곤륜산맥의 북쪽을 타고 서남하하여 호탄과 카시기르를 거쳐 아프가니시탄의 카불로 이어진다.

투르판에서 얀치(焉耆)로 내려가면 코라(庫爾勒)에서 천산남로와 만나는 길이 있다. 결국 우리가 말하는 실크로드는 둔황에서 세 가닥으로 나뉘는데, 천산북로의 거점의 하나인 투르판에서 갈라져 내려온 길이 천산남로와 만나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의 서역에서 실크로드의 거점이 되는 곳은 둔황과 투르판이라고 할 수 있다. 실크로드 가운데 불법 전달의 중요한 구실을 한 것은 아프가니스탄의 카불을 거쳐 파키스탄과 인도로 통하는 천산남로와 서역남로인 셈이다.

실크로드는 원래 서아시아, 중동 및 유럽과 중국 사이의 상품교역을 위한 통로로서의 구실을 한 것이나, 길이 트이고 사람의 왕래가 빈번해지면서 여러 곳의 문물이 교류됐으니 그 길을 따라 종교가 전파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다. 중동의 이슬람교가 당시 중국의 장안까지 진출한 것이 그 좋은 예이다. 불교도 오늘날의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을 거쳐 주로 천산남로를 따라 중국에 흘러들어간 셈이다.

험준한 불모의 땅 실크로드

<사진설명> 실크로드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으로서 영화를 누린 시안. 사진은 시안의 상징 가운데 하나인 자은사 대안탑.

그러나 나로서는 실크로드라고 하면 우선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불교일 수밖에 없다. 인도 동북부에서 발원한 불교가 크게 두 갈래의 길을 타고 중국에 유입되고,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은 누구나가 잘 아는 사실이다. 중국에 불교가 유입된 경로의 한 갈래는 육로를 타고 당시 중국의 수도인 장안에 이른 것이고, 다른 한 갈래는 해로를 통해 중국의 남쪽 연안에 상륙한 경로다. 이 가운데 주된 경로는 육로인 실크로드다.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시기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주장이 있는데 그 하나는 기원 65년 초왕의 령에 의한 봉불설이고, 다른 하나는 기원 67년 명제에 의한 구법설이다. 개인적으로 후자가 정설인 것 같다. 불교의 전래를 계기로 3세기경부터 실크로드를 통해 전법과 구법을 위한 승려의 왕래가 차츰 빈번해졌으니, 축법호(竺法護: 265), 불도징(佛圖澄: 310), 구마라집(鳩摩羅什: 401), 구나발다라(求那跋陀羅: 435) 및 보리달마(菩提達磨: 493) 등은 중국을 찾아온 인도 승려의 대표적인 예이고, 법현(法顯: 405), 현장(玄: 630), 의정(義淨: 672) 및 혜일(慧日: 702) 등은 구법(求法)을 위해서 인도를 찾은 중국 승려의 대표적인 예이다.

이들이 모두 실크로드를 통해서 왕래했다는 것은 기록을 통해서 밝혀진 일이다. 오늘날 불교문화적인 면에서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는 투르판의 베이제크릭 석굴과 둔황석굴이 두 갈래 실크로드인 천산남로와 서역남로의 교차점에 위치하고 있는 것도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주로 중국을 통했으므로 우리나라는 중국에 전래된 불교가 거의 300년이란 긴 세월을 지나는 사이에 당시 중국에 널리 퍼진 도교와 유교의 영향을 받아 적지 않게 중국화한 불교를 전수한 셈이다. 원측(圓測), 의상(義湘), 자장(慈藏) 등의 예에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당 등 중국에 유학하여 불교에 관한 연구를 하고 계속 그곳에 머물거나 귀국하여 불교를 홍포한 탓으로 우리나라의 불교는 다분히 중국적 불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혜초(慧超)는 예외였으니,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으로도 알 수 있듯이 실크로드를 거쳐 인도에까지 유학한 후 당시 장안에서 대표적인 밀교 승려로 활동하였던 예가 그것이다. 아무튼, 실크로드는 우리의 불교문화사적인 면에서도 그 의의가 크다고 아니할 수 없다.

나는 오래전부터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 동북부로부터 광막한 사막과 험준하기 짝이 없는 산맥들로 가로막힌 중국의 서역을 거쳐 당시 중국의 수도인 장안까지 불교를 전하고 발전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실크로드를 그 일부나마 직접 밟아보고 싶은 생각을 가져왔다.

사실 실크로드는 그곳은 인간의 발길을 거부하고 생물이 숨 쉬는 것을 시기하는 험준하기 짝이 없는 불모의 땅이다. 북쪽은 알타이산맥으로 러시아와 차단되고, 그 바로 밑은 황막한 고비사막이 전개되며, 그 남쪽을 험준한 티안샨산맥이 병풍처럼 뻗어 있다. 또 그 바로 남쪽 기슭부터 망망대해와도 같은 타클라마칸사막이 펼쳐져 있고, 그 남쪽에는 다시 쿤룬산맥이라는 거대한 산맥이 담을 쌓고 있는 서역 땅이다. 이야말로 처음부터 인간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위에 나열한 산맥이나 사막 모두 그 삭막함과 험준함이 우리의 상상을 훨씬 넘는 것인데, 하물며 그러한 산맥과 사막들이 겹겹이 중첩되어 있으니 말이다.

그처럼 험준한 곳에 사람과 낙타가 한발 한발 밟아 만들어낸 길이 우리가 쉽게 말하는 실크로드인 것이다. 바로 그 길은 우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대할 수 있게 한 선인들의 발자취와 땀이 스민 곳이다.

따라서 나로서는 설사 그 때처럼 고된 발길을 옮기는 여행은 아니지만 적어도 실크로드의 거점이 되는 곳들에서 만이라도 그곳의 불교 유적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그 어딘가에 스며있을 선인들의 발자취를 따라 가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는 사이에 그 분들의 거룩한 구도와 전법의 정신과 체온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허기야 지금의 내 나이로 실크로드 여행을 꾸민다는 것이 예사로운 일은 아니다. 나의 건강을 염려해서겠지만, 내 여행계획을 듣고 만류하는 친지가 많았다. 혹자는 사막의 거센 모래 바람을 이야기하고, 어떤 이는 사막의 심한 일교차(日較差)를 걱정하며, 또 어떤 친구는 그곳의 음식 걱정을 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나로서는 친지들의 걱정이 고맙기는 해도 나의 여행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지는 못했다. 다만 사막의 모래 바람에 대비해 의학용 마스크를 준비하고, 일교차를 생각해 방한복도 챙겼다.

 

옛 장안 시안에 도착하다

이제 대한민국을 떠나 실크로드를 여행하는 일반적인 노정에 따라 시안에서부터 순례기를 서술하고자 한다. 요사이는 우룸치까지 항공 직항로가 개설돼 여행의 순서를 바꿔 실크로드를 여행할 수 있기도 하다.

비행기 편으로 베이징을 떠나 3시간 만에 시안에 도착했다. 나는 시안이 첫 걸음은 아니다. 우리나라와 중국 사이의 국교가 트이기 전인 1990년, 이미 이곳을 찾아 돌아본 일이 있기 때문에 이번이 두 번째인 셈이어서 아주 낮선 곳이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시안의 모습은 당시와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고층건물이 눈에 띠게 많아지고 자동차의 물결이 여느 서구의 도시와 다를 것이 없을 정도로 불어난 것은 이곳의 발 빠른 경제성장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현재의 시안은 샨시성(陝西省)의 수도로, 약 3000년의 역사를 가진 중국의 고도 장안을 가리킨다. 오늘날의 시안 동쪽에는 반포라는 신석기시대의 유적이 있었는데, 그곳은 황하의 상류인 웨이수이를 끼고 있는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어 주나라는 바로 그곳을 발판으로 장안 주변에 수도를 건설한 것이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후에도 역시 장안 근교인 함양에 아방궁을 비롯한 거대한 시설을 갖춘 도성을 건설했다. 장안이 제대로의 도성이 된 것은 한나라 때부터의 일이다. 그러나 장안이 명실 공히 장안으로서 자리 잡은 것은 수, 당 때에 이르러서의 일이고, 실크로드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으로서의 영화를 누린 것도 한, 수, 당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계속〉

 

 

 

 

이상규 변호사는


이상규(76·학산·사진) 변호사는 1980년 문교부 차관을 마지막으로 공직에서 은퇴한 후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원로 법조인이다. 19세 때 우연히 『반야심경 강의』를 통해 불교와 인연을 맺은 이 변호사는 1952년과 1953년 고등고시 행정과와 사법과에 합격한 후 미국과 영국에서 법학을 공부했으며 법제처 법제관, 국립중앙도서관장, 문교부 차관, 고려대 법대 교수, 대한변호사협회 변호사연수원장, 환태평양변호사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회갑을 넘기며 불교 공부에 몰두하기 시작한 이 변호사는 특히 경전 번역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그는 2000년 『금강경의 세상』을 시작으로 2004년에는 『아함경』 전권을 주제별로 재분류해 7권짜리 『전해 오는 부처의 가르침』을, 2006년에는 『부처, 몸소 말하다-아함경 새겨보기』를 펴내는 등 불경 번역과 연구, 수행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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