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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주 장편소설]66.

기자명 법보신문

“온산의 단풍이 불꽃보다 고우니
“삼라만상이 그 바탕을 온통 드러내는구나
“생도 공하고 사도 또한 공하니
“부처의 해인삼매 중에 미소 지으며 가노라.”


제 14장 인연
일타는 문수사 신도에게 『조선불교통사』에 기록된 균여대사의 얘기를 하고 있었다.
고려 초기의 일로 김해 나루터에 큰 삿갓을 쓴 한 대사가 어디론가 떠나려고 왔다갔다 서성이고 있었다. 마침 김해 목사가 나루터에 당도하여 범상치 않은 그 대사를 보고 물었다.
“어디 계시는 대사님이오.”

대사가 지팡이로 바다 건너 일본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소승은 과거세의 비바시불 당시에 맺은 인연으로 잠시 고려국에 와 있었소. 이제 인연이 다하여 저 바다로 건너가고자 하오.”
“바다 건너라면 왜국으로 가시겠다는 것입니까.”

그러나 김해 목사는 더 이상 대사와 얘기를 나눌 수 없었다. 대사가 바다 멀리 홀연히 사라져버렸기 때문이었다.
김해 목사는 바로 관아로 돌아와 자신이 겪은 일을 소상히 적어 장계를 올렸다. 장계의 내용대로 균여대사의 입적과 환생은 사실이었다. 김해 목사가 장계를 올리는 바로 그 시각에 균여대사는 입적하였고, 또한 균여대사의 원력대로 일본에서 태어나 화엄종주(華嚴宗主)로 환생했기 때문이었다.

그제야 문수사 신도는 일타가 세운 다음 생의 원력을 이해했다. 일타는 문수사에서 신도들을 상대로 법문하는 등 보스턴 시에서 3개월을 머문 후 추운 겨울이 되자, 하와이로 갔다. 하와이 대원사에는 일타를 평소 흠모하던 송광사 주지를 역임한 현호가 먼저 와 있었다.

현호는 일타에게 절을 올리고 나서는 말했다.
“구산 노장님께서 스님을 방장 후임으로 허락하셨는데 왜 스님께서는 거절하셨습니까.”
“난 방장을 맡을 만한 어른이 아니지요.”
“우리 절집을 보십시오. 모두가 도인 행세를 하고 다닙니다. 방장은 물론이고 절마다 조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잘못된 거 아닙니까.”
“나는 방장실보다 선객들이 화두를 잡고 있는 선방이 좋아요. 다음 생에도 수행자로 환생하려고 원력을 세웠어요.”

현호는 예나 지금이나 몹시 아쉬웠다. 구산의 허락을 받아 혜인과 함께 추진하려던 방장 추대가 일타의 거절로 물거품이 되고 만 까닭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선방으로만 돌던 현호가 판단하기에 일타만큼 기도와 염불과 참선과 다도를 갖춘 화엄의 선객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현호수좌, 은사스님이 입적하신지도 10년이 됐소. 참, 노장님의 열반송이 잊히지 않아요.”
일타는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구산의 열반송을 읊조렸다.

온산의 단풍이 불꽃보다 고우니
삼라만상이 그 바탕을 온통 드러내는구나
생도 공하고 사도 또한 공하니
부처의 해인삼매 중에 미소 지으며 가노라.
萬山霜葉紅於二月花
物物頭頭大機全彰
生也空也兮死也空
能仁海印三昧中微笑而逝

현호는 차를 우리다가 ‘참선 정진하라’는 구산의 사자후가 불현듯 떠올라 눈시울을 붉혔다. 구산이 입적하고 난 뒤 선객의 길을 접고, 잠시 곁길로 나갔던 시간이 후회스럽기도 했다.
“스님, 하와이에 계속 머무십시오. 저는 스님이 조실스님 같아 함께 정진하는 시간이 좋습니다.”
“봄이 되면 지족암으로 돌아가야지요.”
현호가 풋풋한 선객 시절을 그리워하자 일타가 말했다.
“현호수좌, 우리 수행자들은 선방 시절의 초심을 잊어선 안 됩니다. 시린 들판의 바람 앞에 서는 용기가 필요하지요.”

하와이에서 지족암으로 돌아온 일타는 봄을 한가로이 보냈다. 해마다 초파일이 되면 대원성 보살이 이끄는 연꽃모임 회원들에게 해주던 법문도 쉬었다. 스승의 건강을 걱정하던 상좌 혜관이 대원성 보살에게 공양물과 연등 값만 놓고 가라고 미리 주의를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상좌 혜관이 ‘외부인출입금지’를 막는데도 한계는 있었다. 지족암의 일주문을 굳게 잠가 보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지족암으로 들이닥치는 신도들을 일타가 굳이 피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일타는 건강이 좋았을 때처럼 누구든지 자애롭게 맞아들였다. 일주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 중에는 신문사 기자도 있었는데, 기자가 인터뷰 끝에 ‘많은 제자 중에 뛰어난 상좌가 누구냐’고 까다롭게 물어왔을 때도 오히려 일타는 차를 권하며 대답해주었던 것이다.

“상좌가 많다 보니 참 여러 가지 사람이 있어요. 선방에서 공부하는 사람, 기도와 수행을 잘하는 사람, 학문하는 사람, 사판 일을 하는 사람 등 아주 복잡합니다. 굳이 몇 명을 거명한다면 혜인, 혜국, 혜규, 돈각, 도융, 돈수, 향적, 선혜, 법타, 법일, 현소, 돈명 등이 있어요. 그러나 나는 참선 수행하는 상좌들을 제일로 치고 있습니다.”

일타는 사람을 만나고 있거나 만나지 않고 있거나 늘 분주하게 시간을 보냈다. 마음이 한가로울 뿐 결코 몸이 한가로운 것은 아니었다. 빨래를 하거나, 지족암 마당을 쓸거나, 신도들의 이름 쓰인 부분에다 새 종이를 가위로 오려 붙이거나, 지나가는 흰 구름이나 새로 핀 꽃을 보고 시를 짓거나, 밤에는 멀리서 온 상좌의 이부자리를 펴거나 잠시도 쉬지 않고 순간순간을 곡진하게 살았다. 오랜 만에 찾아온 상좌들과 인사는 늘 정해져 있었다.

“스님, 화두 잘 됩니까.”
“너도 화두 잘 챙겨야 한다.”
일타의 화두는 예나 지금이나 ‘부처님이 대중에게 꽃을 들어 보인 뜻’을 묻는 세존염화(世尊拈花)였다.

그해 여름.
그날도 일타는 상좌와 함께 도량 청소를 하고 있었다. 일타는 방으로 들어와 선반 위에 쌓인 먼지를 닦기 시작했다. 선반에는 환속한 상좌에게 선물 받은 도자기들이 놓여 있었다. 일타는 연비하여 손가락이 없는 오른손으로 먼지 묻은 도자기를 들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도자기가 뭉툭한 손에서 미끄러지더니 선반에 부딪치며 깨어졌고, 예리한 사금파리가 일타의 왼쪽 손목을 쳤다. 순식간에 왼손 정맥 다섯 개가 끊어졌고 붉은 피가 방바닥을 적셨다.
한 시자가 쫓아와 일타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일타는 깨어져 흩어진 도자기 조각을 줍고 있었다.

“청소를 마저 해야지.”
“스님, 지금 병원으로 가셔야 합니다.”
일타는 담담했다.
“내가 깨뜨린 것이냐. 도자기가 깨진 것이냐.”
일타는 제 명(命)을 다한 도자기를 보면서 자신의 입적이 더 가깝게 다가왔음을 떠올렸다. 그러니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일타는 왼손 손목에 붕대를 감아 피를 멈추게 한 뒤 시자와 함께 방바닥에 흘린 피를 다 닦았다. 뒤늦게 달려온 시자들이 일타에게 간청했다.
“큰스님, 지금 대구 큰 병원으로 가셔야 합니다. 서두르셔야 합니다.”
“별 것 아니다. 고령에도 병원이 있으니 그곳으로 가자구나. 봉합수술만 받으면 될 것이다. 그러니 크게 걱정 말아라.”

그런데 시골의 작은 병원의 의사는 봉합수술을 하면서 의료사고를 내고 말았다. 정맥과 동맥을 잘못 이어 왼손 전체를 못 쓰게 만들어버렸다. 상좌들과 신도들의 걱정은 여느 때와 달랐다. 단순한 상처가 아니라 생명이 위급한 상황이었다.
할 수 없이 일타는 상좌들의 성화와 읍소를 받아들였다. 재수술을 받기 위해 일본 자혜병원으로 갔다. 그러나 일타는 자신의 입적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입원 자체를 시큰둥하게 여겼다. 처음부터 봉합수술이 잘못되었으므로 재수술도 불완전했다. 결과는 절망적이었다. 병원을 나서면 곧 절명할 수도 있었다.

그래도 일타는 결코 초조해 하거나 낙담하지 않았다. 의사들이 몸에 해롭다며 먹지 말라는 꿀도 태연스럽게 먹었다. 자혜병원에 입원하도록 주선한 백흥암 육문(六文)이 애를 태웠다. 육문은 어린 시절부터 의문이 나면 일타에게 물었고, 일타 역시 육문을 어린 동생처럼 자상하게 대해주곤 했던 것이다. 한 성깔 있는 육문이 참지 못하고 타박했다.

“꿀을 드시지 말라고 했는데 왜 그러십니까.”
“육문스님, 안 먹을게. 요것만 먹고 안 먹을게”
일타는 육문이 병실을 나가고 난 뒤에야 웃음을 터트렸다.
“허허허. 죽을 날은 정해진 거고 먹고 싶은 건 무대에 있을 때 먹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면서 다시 꿀을 떠먹으려던 일타는 육문이 병실에 들어오자 숟가락을 감추었다.
“아이구, 육문스님 또 바가지 긁을라. 그만 먹자.”
일타는 육문이나 간병하는 육문의 재가신도 반야심 보살이 자리를 비우고 없을 때는 유서를 한자 한자 적어 내려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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