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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광섭 교수의 불교와 시간]①일상적 시간

기자명 법보신문

시간 측정 정밀해질수록 삶의 여유 신기루화

원자시계 등장으로 백만분의 1초도 공유
느긋한 삶에서 분초 다투는게 현대의 삶

<사진설명> 살바도르 달리(1904~1989)의 ‘시간의 눈’
시간이 무어냐고 물으면 무어라고 말해야 할지 막연해진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과학적 답으로는 ‘시계로 재는 것’ 정도가 아닐까 한다. 무엇이든 일정하게 규칙적으로 돌아가는 것이면 시간을 재는데 쓰일 수 있으므로 시계라 할 수 있겠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돌면 한 해가 되고, 달이 지구를 한 번 돌면 한 달이고, 지구가 자전을 한 번 하면 한 날(日)이 지난다. 우리에 친근한 해와 달과 지구가 년(年, 해), 월(月), 일(日, 날)의 시간단위를 자연스럽게 제공한다. 한 해는 대체로 12 달이므로 시간단위에 12진법이 들어왔고, 하루는 24시간으로 나뉘었다.

이와 같이 시간의 개념과 단위는 하늘의 현상으로부터 얻게 된 것이어서 자연스럽게 천시(天時)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고 본다. 시간과 대조적으로 공간의 개념은 땅과 밀접하여, 이를 연구하는 기하학은 ‘땅의 측정(geo-metry)’에서 발생하였다. 병법(兵法)이나 농업(農業, 오늘날에는 넓게 경영으로 볼 수 있다)에서도 천시(天時), 지리(地理), 인사(人事)를 중시했는데, 시간과 하늘의 밀접한 연관성을 나타내는 예라 하겠다. 이른바 사주(四柱)를 본다는 것도 사람의 운명(運命)이 태어난 ‘해, 달, 날, 시’의 4가지 시간의 위상 에 따라 결정된다는 생각이다. 이것 역시 인간의 운명은 하늘로부터 받는다는 것(天命)과 하늘의 뜻은 시간에 나투어진다는 것을 의식의 저변에 깔고 있다.

시간의 단위를 더 쪼개어 60분으로 나누는 일은 인간의 손으로 만드는 시계가 등장함으로써 일상화되는데, 오랫동안 해시계와 물시계가 여러 나라에서 쓰이게 되었다. 예로 앙부일귀는 세종 때 만든 해시계이다. 자격루(自擊漏) 역시 세종 때(1434년) 장영실, 이천, 김조 등이 만든 자동 물시계로 ‘시보장치’가 달렸으며, 국가의 새로운 ‘표준시계’로 채택됐었다. 여기서 ‘시보’, ‘표준’이란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시간과 산업(또는 경제)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는 낱말이며, 잠시 후 더 얘기하겠다.

산업이 발달하면서 시간의 정밀성이 초 단위까지 필요하게 되었고, 이를 뒷받침하는 시계는 금속기계산업의 발전과 더불어 가능해졌다. 이제는 장식용으로나 볼 수 있는 괘종시계와 태엽을 감아 쓰던 구식 손목시계들이 이들이다. 이들은 대체로 하루에 한 번 꼴로 태엽을 감아줘야 했고, 정확도도 하루에 몇 분 정도씩 떨어지기 일쑤였다. 그래도 이들은 근대과학의 비조인 갈릴레오 시대 때부터 산업화시기에 이르기까지 꽤 오랜 기간 사용되었다. 과학기술에 바탕하여 서구에서 발명되었고, 서구산업사회의 표징이라 할 수 있으며, 보통 사람들의 생활에 초 단위의 정확한 시간을 일상화시켰다.

20세기 후반부에 들어서자 반도체 등 양자물리적 기술이 발달되면서 산업기술은 정보기술 쪽으로 넘어가고 시간은 초정밀을 요하게 되었다. 이에 세슘(Cs)이란 원자가 방출하는 빛을 이용하는 원자시계가 출현하여 전 세계의 모든 시간을 100만분의 일 초 이내로 서로 맞추게 하며, 시간의 측정 정밀도 자체는 몇 조 분의 일초까지 가능하게 되었다. 산업이 발달하면서 시간측정의 정밀도가 함께 높아지는 이유는 모든 기계의 작동에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제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쉽게 비유를 들어 이를 설명해보자. 정류장에서 오고 가는 버스들의 교통관리에는 몇 십분쯤 틀리면 아주 불편하지만, 몇 분쯤 틀려도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분주한 지하철이나 KTX고속열차의 경우 제어판 시계가 몇 초 틀려버리면 대형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 더구나 비행기의 운행에는 몇 천분의 일초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로켓이나 인공위성에서는 훨씬 더 정밀한 시계가 필요하다.

음악에서도 역시 유사한 변화를 볼 수 있다. 조선조 초기의 영산회상이나 종묘제례악 등 궁중음악은 어찌나 느린 템포인지 바쁜 생활을 하는 우리의 속도감하고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그런데, 조선조 후기에 발달하기 시작한 산조는 느린 진양조 장단으로 시작하여 빠른 장단인 자진모리, 휘모리, 단모리 등으로 점점 빨라지는 템포의 구조를 갖추고 있다. 그래서 음악의 긴장감과 흥을 더해주고 듣는 이의 감정을 점차로 고조시키는 특징이 있다. 1978년에 김덕수 패가 처음 연주하기 시작한 사물놀이(꽹과리, 징, 장구, 북의 네 가지 악기)는 현란할 정도로 빠른 음악이다. 음악뿐만 아니라 춤 동작 역시 점점 빨라져서 오늘날엔 비보이 같이 곡예에 가까운 경이적인 춤이 나타났다. 이와 같이 문명의 발달과 삶의 템포는 함께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삶의 외적 환경이 이렇게 점점 빨라지는데, 우리의 신체적 리듬은 어떤가? 이것은 문명의 발달에 따라 함께 변해주질 못한다. 호흡은 대체로 일 분에 몇 번, 심장의 박동은 일 초에 한 번 정도이고 신경의 활동에서 분자들의 드나드는 회수는 초당 천 번 정도이다.

이러한 신체의 시간 특성은 몇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다름이 없는데, 바깥 환경은 자꾸만 빨리 돌아가므로 현대인은 ‘시간’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호흡이 빨라지고 마음에 안정을 쉽게 잃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선(禪)에서와 같이 호흡이 느려지면 마음이 느긋해지고, 심신의 건강을 되찾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다시 시간의 표준 문제로 돌아오자. 우리의 손목에 있는 시계나 컴퓨터의 시계들은 어떤 기준에 맞추어서 서로 같은 시각을 가리키도록 하는 것일까?

어느 나라의 시각을 정확히 알아서 기준을 정하고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일을 시간의 ‘표준 및 시보’체계라 한다. 이 일은 세종대왕 때 자격루를 표준시계 겸 시보장치로 했던 일의 현대화이며, 오늘날 이를 담당하는 기관이 한국표준연구원이다. 세슘 원자시계를 표준시계로 하고, 이 시간을 HLA라는 시보 방송국(단파 5MHz)에서 대한민국 표준시를 주야 24시간 연중무휴로 방송하고 있다. 또 ‘인터넷 시보’방식에 의하여 표준원 서버에 들어가면 개인 컴퓨터의 시간을 정확히 표준시에 맞추어 준다. 일반인들을 위하여 전화시보 체계도 갖추어 있다. 국번 없이 116을 걸면 음성으로 초 단위까지 알려준다. 지금 바로 전화를 걸어 자기의 시계가 대한민국 표준시를 정확히 가리키고 있는지 확인해보자. 표준시간은 정밀 산업의 기반이 되므로 각 국마다 표준기관에서 관리 및 연구를 하며, 국제적 협정에 의해 전지구적 표준시간이 유지된다.

옛날 사람들은 삶을 느긋하고 여유 있게 살았는데 문명이 발달한 오늘날엔 분초를 다투며 시간에 쫓기다시피 살고 있다. 이것은 막연한 느낌이 아니라 실제에 가깝다. 우리의 삶을 끌고 가는 기술문명은 전지구적 차원의 표준시간에 의하여 조금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는 빛의 속력으로 달리는 광통신 정보 기술이 극도로 발달하여 지구상 모두가 보편적 시간의 틀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끌려가고 있다. 시간이 이렇게 우리 모두를 다스리는 절대적 통치자로 군림하고 있는데, 어떻게 시간이 상대적일 수 있단 말인가? 다음 편에서 시간의 절대성과 상대성 그리고 대승불교의 공(空) 사상에 대하여 알아보자.

소광섭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소광섭 교수는  △서울대 물리학과 졸업 △미국 브라운대 박사 △독일 함부르크대 방문교수 △영국 캠브리지대 방문교수 △현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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