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소정 기자의 칙칙폭폭 인도순례]1. 반갑다 인도
[안소정 기자의 칙칙폭폭 인도순례]1. 반갑다 인도
  • 법보신문
  • 승인 2008.02.18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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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가지 모습 간직한 붓다의 땅에 서다
<사진설명> 페르시아 건축가 구미르자기의 지휘 아래 1565년 완성된 후마윤의 묘(Humayun Tomb). 중세 이슬람 건축의 표본이라 해도 좋을 만큼 균형미와 안정감으로 보는 이의 마음마저 차분하게 한다.

 붓다를 만나러 간다. 인도로 떠나는 길에 먼저 ‘마음’을 준비한다. 지저분한 겉모습이나 불결해 보이는 것을 그렇지 않다고 혹은 그럴 수도 있다고 수긍하는 마음. 물처럼 그릇의 색과 모양에 따라 변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단단히 풀어헤친다. 그동안 살며 무심결에 익혔던 몇 가지 습관과 버릇들도 누구 다른 사람에게 줘버린다.
낯선 나라에서 오는 여행객을 반길 그들과 교감하고자 허름한 운동복을 걸치고 무릎에 조그만 구멍이 뚫린 운동복을 넣은 괴나리봇짐 하나를 질러 맸다.

공항을 나서자 구걸하는 아이들

아직 이렇다 할 이룬 것 하나 없는 나이 서른이다. 한 그릇 두 그릇 해마다 의무적으로 먹어야 하는 떡국은 ‘어른이 되라’고 말하지만 아직은 멀기만 하다. 흔히들 그럴 때는 여행을 떠나라고 한다. 그리고 그곳은 운 좋게도 붓다의 나라 인도가 됐다. 그래서 이번 인도순례는 인생을 긴 여행으로 봤을 때 세상과 만나는 첫 경험이 된다.

인도는 정신과 마음을 혼미하게 한다. 대부분 여행자들이 그렇다고 수많은 책을 통해 눈에 못이 박히게 말하고 있다. 곧 내게도 불어 닥칠 ‘충격’을 상상하니 야릇한 떨림이 온몸을 휘감는다.

정오에 출발한 비행기가 한나절을 헉헉거리며 날아간다. 돌아오지 못한 우리네 옛 스님들이 수년 동안 걷고 또 걸었던 길 없는 길. 그 먼 길이 문명의 날개 덕분에 수월해졌지만 ‘나’라는 존재가 한없이 작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파란 하늘 하얀 구름 위를 쉼 없이 날아 우리보다 3시간 느리게 사는 이들의 품으로 간다. 랜딩기어 소리를 내며 델리공항으로 착륙을 시도한다. 이제 막 인도로 첫 걸음을 뗀 것이다.

인도와의 첫 만남은 까만 어둠. 잠에서 덜 깬 반쯤 감긴 눈으로 당도한 그곳은 밤의 가운데에 있었다. 역시 그들은 여행객들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공항을 빠져나오자마자 알 수 없는 언어로 양손을 내밀며 배고픔을 호소한다. 덜컥 겁이나 한발 물러섰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용기를 냈다. “나마스테.”

인도인에게 인사를 던졌다. 기내에서 수없이 속으로 연습했던 말이다. 땅에 내딛자마자 처음으로 눈이 마주친 인도인에게 건넨 그 말은 꽤 성공적이었다. 자연스럽지는 않지만 그래도 60점은 되는 것 같다. 예상치 못했는데 상대방도 웃으며 “나마스테”한다. 답인사를 받기까지는 찰나에 불과했지만 인사를 건넨 이는 천년같이 길다. 내심 한참을 망설여 뱉은 그 용기는 인도순례 내내 밝고 신나게 ‘나마스테’하게 해주었다. 고마웠다고 말 못했지만 공항 출구에서 만난 아기 안은 붉은색 사리의 여인 얼굴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후마윤 묘부터 시작된 여행

<사진설명>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높이 72.5m의 꾸뜹미나르

버스는 어두운 길을 따라 호텔에 일행들을 쏟아냈다. 선진국의 여느 호텔 못지않은 시설로 단장한 곳에서의 첫날밤. 새색시처럼 왠지 모를 긴장감으로 마음이 가라앉지 않고 들떠 두근거린다. 길고 긴 밤 이 생각 저 생각에 어느새 델리의 새벽이 코앞에 왔다.

본격적인 성지순례에 앞서 ‘후마윤의 묘(Humayun Tomb)’가 사람들을 반긴다. 델리의 도서관 계단에 넘어져 삶을 마감했다는 후마윤. 무굴제국 2대 불운한 황제였던 그의 첫 번째 아내 하지 베검이 선물한 마지막 사부곡(思夫曲)이 바로 이 무덤이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던 사랑. 사랑이란 이런 것일까. 기다려주지 않는 것. ‘이제 사랑해볼까’하면 어느새 저 멀리 물러서 있는 것. 하지 베검은 남편의 묘를 완성하며 우리에게 ‘후회 없이 사랑하라’는 말을 하고 남기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사랑에 지각하면 이렇게 덩그러니 아쉬움만이 존재한다고 말이다.

페르시아 건축가 구미르자기의 지휘 아래 1565년 완성된 이 묘는 사진보다 정교하고 웅장하다. 첨두형 아치 아래 붉은 사암의 벽돌 사이사이 격자무늬 창 속으로 은은하게 따사로운 태양이 내부를 비춘다. 중세 이슬람 건축의 표본이라 해도 좋을 만큼 균형미와 안정감으로 보는 이의 마음마저 차분하게 한다. 후마윤은 황제로는 실패였을지라도 남자로서는 성공인 셈이다.

버스로 20분 정도 이동하니 델리의 대표 상징물이자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높이 72.5m의 꾸뜹미나르가 보인다. 12세기 인도 델리술탄국의 5층 승전 탑인 꾸뜹미나르(Qutb Minar) 유적은 폐허가 주는 공허함에 또 다른 여운을 남긴다. 한 때 이슬람 사원과 다양한 건축물이 있던 거대한 유적지이었지만 대부분 파괴되어 흔적만이 존재한다. 마치 사막 한가운데에 내려다 놓은 듯하다. 쪼그리고 앉아 발밑의 붉은 흙을 만져본다. 부드럽다. 그 흙을 손등에 문질러본다. 그리고 그 손을 코에 대 본다. 흙냄새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따라오는 폴폴 날리는 먼지들은 우리에게 더 있다 가라고, 조금만 더 있다가 가라고 발목을 붙잡는다.

순례에 앞선 준비운동이 끝이 나고 마라톤 총성이 울려 퍼진다.
전생의 인연이 아니고서는 가기 어렵다는 인도성지순례. 그러나 이번 순례는 특별하다. 고행을 각오하고 배낭여행으로는 한 달, 버스순례로는 보름이상이 걸렸던 곳을 9일 만에 속성으로 마칠 수 있다. 그동안 이곳 땅을 디뎠던 이들이 일정표를 본다면 눈이 휘둥그레질만하다. 시간은 단축되고 마음 편히 안전까지 보장된다. 인도철도관광공사(IRCTC)의 노력으로 마련된 ‘마하 파리니르반 스페셜(Maha Parinirvan Special)’ 열차 덕분이다.

‘대열반(大涅槃)’을 뜻하는 이 열차는 이름이 곧 용도를 대변한다. 기존 열차를 외국인 순례전용으로 내부를 개조해 편안한 침대에 누워 밤새 성지로 달려가는, 정부차원에서 기획된 열차다. 과하다 싶은 승무원의 친절함과 철저한 보안, 도착예정 시간까지 보장된다. 인도에서 이 세 가지는 곧 최고를 의미한다.

붓다 곁 안내할 열차 ‘대열반’

열 명이 가면 10가지, 만 명이 가면 10,000가지 모습의 카멜레온 여행지. 돌고 돌아 다시 가고픈 곳 인도. 우리를 붓다의 곁으로 안내할 빨간 열차가 “어서 오십시오.”한다. 힘차게 발을 내디뎌 열차 계단에 오른다.

안소정 기자asj@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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