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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일 스님의 계율칼럼]

기자명 법보신문

지계제일 우파리 존자 이야기

우파리 존자는 부처님의 대표적인 큰 제자 10분 가운데 계율을 잘 지키기로 유명한 스님이다.
우파리 존자는 부처님께서 정하신 계율이 크든 작든 어기지 않았으며 또 모든 계율을 잘 암송하였다. 이런 까닭에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500명의 장로 스님들이 모여 결집할 때 제일 먼저 뽑히어 율을 암송하였다고 한다.

부처님 당시에는 계율을 바탕으로 생활했기 때문에 모든 스님들이 계율과 생활이 괴리되는 현상은 없었다. 그 가운데 우파리 존자는 더 더욱 계율을 준수하였으니 지계제일(持戒第一)이라는 칭송을 들었던 것이다.

공자가 사생아로 태어났고 게다가 젊을 때 직업이 장의사였기 때문에 예(禮)에 대해 깊은 관심이 있었다.
사생아이기 때문에 예의를 모른다고 사람들이 말할 수 있으므로 그의 일생은 예의를 공부하고 가르치는데 주력하였고, 장례의식의 복잡함을 늘 보고 들었기 때문에 예식의 중요함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우파리 존자의 철저한 계율정신은 그가 원래 귀족들의 이발사였기 때문에 공자처럼 자신의 출신성분을 극복하려는 노력이었는지도 모른다. 부처님께서 고향 카필라에 방문하신 후 많은 젊은이들이 유행처럼 출가하였다. 귀족이었던 아난다, 제바닷다 등 여러 귀족들이 출가하기 위해 우파리에게 머리를 깎았다. 그들의 머리를 깎아준 뒤 우파리가 자신도 그들을 따라 출가하기를 희망하자 그들은 흔연히 허락하였다. 부처님 앞에 간 귀족의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아만심을 없애기 위해 그들의 하인이었던 우파리를 먼저 출가하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부처님께서 그 간청을 허락하시어 우파리를 먼저 출가시켜서 윗자리에 앉게 하셨다.
우파리 뒤를 이어 출가한 귀족 젊은이들은 우파리를 향하여 예배하고 아랫자리에 앉았다는 것이다. 세계의 역사상 쿠데타 등으로 아랫사람이 왕이 되었을 경우에는 전에 윗자리에 있던 사람도 예를 표하는 일은 있다.

그러나 이처럼 귀족들이 자신들 스스로가 겸손과 하심을 위해 일부러 출가를 늦추어 평생을 자신들의 이발사였던 사람을 공경한다는 것은 오직 부처님교단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우파리 존자는 여러 귀족의 윗자리에 앉게 된 만큼 행동이 잘못되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기우렸을 것이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우파리 존자는 계율의 귀감으로서 만대의 모범이 되었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노력하는 사람은 마땅히 존경받을 만하다.

송광율 원장 도일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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