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도일 스님의 계율칼럼]

기자명 법보신문

스님이 법문 못하는 것은 직무유기

일본인들은 형식이 뛰어나면 내용의 부족함을 메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외형의 중요함을 강조하는 것이 그들의 생활 곳곳에 배여있다. 예를 들어 형식을 벗었다는 선종의 영향을 받은 다도(茶道)는 오히려 일본적 형식미의 대표적인 의식이다. 이러한 다도의 형식은 한국은 물론 차의 본고장인 중국이 모방할 정도로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유교에서 교육받은 사람을 평가할 때 신언서판(身言書判)의 네 가지로 그 기준을 정한다. 기준의 첫째에 해당하는 신(身)은 품위 있는 행동을 요구한 것이다. 승려다운 행동을 뜻할 때 흔히 팔만사천 세행(細行)을 말하게 되는데 이것은 올바르고 품격 있는 자세를 칭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출가한 사람에게 무조건 5년 동안 계율을 배우도록 한 것을 보면 교육의 기본은 역시 몸가짐이 아닌가 한다. 초기교단을 이끄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던 수보리존자와 목련존자도 아삿지라는 스님의 뛰어난 위의에 감동되어 출가한 것이다. 또 많은 경전에서 부처님의 사자나 용과 같은 훌륭한 모습 때문에 멀리서부터 신심을 낸 이야기가 열거할 수 없을 만큼 기록되어있다.

율장의 내용 대부분이 출가자들이 비방 받지 않을 태도와 생활을 위한 것이다.
오늘날 부처님이 하라고 하신 승려노릇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출가자들이 많은 것은 바로 계율교육의 부재에 있다. 그러므로 경이나 선을 하기 전에 율장에 의거한 위의를 철저히 익히지 않으면 가사만 걸친 세속사람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불교가 내용면에서 뛰어나더라도 외형적 의식미가 제대로 구비되어 있지 않으면 일반 재가불자 입장에서는 종교적 감동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또 외형에만 치중하고 법을 배우는 것을 소홀하면 스님의 의무가운데 하나인 법을 전해주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기 쉽다.

스님으로서 법을 전할 수 없다면 직무유기나 다름이 없다. 포교당이나 사찰에서 설법을 잘하는 법사 스님을 구하기 힘들다는 푸념은 그간 부처님 말씀에 대한 교육이 부실했다는 증거가 된다.

기억을 못하기로 유명한 주리반특가 스님이 아라한과를 얻은 뒤 비구니에게 교계하라는 청을 받자, 그는 부처님 말씀을 한 게송밖에 외울 줄 모른다고 교계하는 것을 거절하였다. 거듭된 청에 의해 그는 비구니들에게 한가지의 게송만으로 교계하였다.

아라한과를 얻은 그는 자신이 깨달은 내용으로 충분히 설법할 수 있었지만, 교계를 할 때는 반드시 부처님의 말씀만으로 하였다. 이것은 누구든 법문을 하려면 부처님말씀을 외워서 그대로 전했던 전통에 따른 것이다. 내용과 위의를 함께 닦아 나가는 그러한 교육제도의 수립은 불법의 수명을 늘리는 일이다.

송광율원장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