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소정 기자의 칙칙폭폭 인도순례] 6.生死의 공존
[안소정 기자의 칙칙폭폭 인도순례] 6.生死의 공존
  • 법보신문
  • 승인 2008.03.24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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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앞에서 미소 짓는 이들을 보았는가
힌두인들은 강가 강에서 목욕하면 모든 죄가 사라져 윤회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사람들은 디아(Dia·꽃잎에 양초를 얹은 성구)에 소원을 담아 강가 강에 띄워 보낸다.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죽은 사람에 불을 붙이면 삽시간에 불이 붙어 불고기처럼 지글거린다. 곧 두 팔이 떨어지고 두 다리가 떨어진다. 몸의 기름이 장작 밑으로 흘러내린다. 시체는 겨우 2시간 만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타버린다. 너무나 허무하게. 그런데 두 주먹만 한 살덩이는 타지 않는다. 뼈마저 다 녹아버리는, 몇 천도의 열 속에서 한 갓 조그만 살덩이는 타지 않다가 4시간이 지난 후에야 불 속에 녹아든다. 과연 무엇일까. 살덩이, 그것은 바로 심장이다. 심장은 아주 오랫동안 타지 않는다. 그 이후 한동안 머릿속에서 이 말이 맴돌았다. ‘타지 않는다. 아주 오랫동안.’ 오늘은 그 심장이 나를 기다린다. 그 심장이 줄지어 타들어가는 곳으로 몸을 옮긴다.

삶을 향해 거침없이 발을 구르는 릭샤꾼 35세 ‘선재’ 씨.
깨달음을 얻은 붓다가 걸었던 길. 부다가야에서 첫 법문을 설하러 가는 중에 붓다는 이곳 바라나시도 지났다. 모진 비바람과 오열하는 태양, 밤낮없이 달려드는 짐승들, 발바닥에서는 피가 나고 물집이 터져 살점이 떨어져 나갔지만 붓다는 개의치 않았다. 붓다의 숨결이 깃든 이 길을 나도 밟는다. 얼마나 지났을까. 나의 체력과 인내심은 고작 이 정도였나. 릭샤를 타기로 마음을 바꿔먹었다.

검고 깡마른 얼굴에 작은 키, 삐쩍 마른 몸. 삶을 향해 거침없이 발을 구르는 그는 오늘 바라나시로 나를 안내해줄 다리가 되었다. 우연히도 이름이 ‘선재’라고 했다. 『화엄경』의 입법계품(入法界品)에 나오는 선재(善財) 동자로 그를 기억한다. 열심히 두 다리를 구르는 그의 콧잔등과 이마에 송골송골 이슬이 맺힌다. 지치지도 않는지 쉬지 않고 힘차게 근육을 움직인다. 35세의 선재는 학교에 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일은 릭샤를 모는 일뿐이란다. 7년 동안 이 일을 하며 처자식과 비하르에 사는 부모님까지 모두 8명을 부양하고 있다. 선재는 피와 같은 땀을 흘리며 하루에 100리를 달려야 우리 돈으로 3,000원을 번다. 혹여 내가 무거운걸까. 등이 휠 것 같은 그의 삶의 무게를 좀 덜 요량으로 엉덩이를 살짝 들어보지만 별 도움은 되지 않는 것 같다.

 

비좁은 시장 골목에서 과일과 채소를 바닥에 널어놓고 파는 상인들.
찢어질 것만 같은 바라나시 시장 골목.
‘영적인 빛이 넘치는 도시’라는 뜻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바라나시는 눈동자를 쉴 새 없이 굴리게 한다. 무너질 듯한 건물들 사이로 자동차들은 빵빵 울려대며 마주 달려오고, 싸이클 릭샤와 엔진이 달린 오토 릭샤가 그 사이를 점령한다. 그 공간을 비집고 상인들은 물건과 과일들을 널어놓는다. 그 나머지가 행인들 차지다. 2인치가 작은 청바지에 몸을 억지로 구겨 넣은, 잘못 건들면 ‘우두둑’하고 찢어질 것만 같은 골목이다.

그 길을 지나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곳, 죽음을 앞둔 이들이 미소 짓고 있다는 곳에 왔다. 영어로는 갠지스, 인도인에게는 강가(Ganga), 불교 경전에는 항하(恒河)로 불리는 곳에 멈춰 섰다.

‘헬로우’를 외치며 자신의 배를 타라고 거머리처럼 달라붙는 이들을 예상했건만 보트 투어를 권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아니 이게 웬일인가. 어찌 된 일인지 수소문해보니 ‘노 젓는 배가 아닌 엔진이 달린 배로 교체해 달라’며 나룻배 인부들이 집단 시위 중이란다. 유유히 배 한 채가 떠있다. 시위 중인 인부들이 탄 배다. 인도순례 중 거의 유일할 것 같던 호사는 저들의 배와 나 사이의 거리만큼이나 멀어져 버린다.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한가. 한 생각 바꾸면 이 광경 역시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한, 오히려 더 진귀한 일이 아닌가.

 

‘노 젓는 배가 아닌 엔진이 달린 배로 교체해 달라’며 집단 시위 중인 나룻배 인부들.
성스러운 물이라고 수없이 들어왔던 곳이기에 강가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본다.
힌두인들은 이 강가 강에서 목욕하면 모든 죄가 사라져 윤회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래서 평생 단 한 번이라도 이 성수에 몸을 담그거나 죽어서라도 몸을 적셔야 한다. 사람들이 의식을 치르며 머리를 푹 담그고 목욕하고 그 물을 마신 뒤 정성스레 물병에 물을 담는다. 붓다는 이를 보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강가 강에서 목욕함으로 해서 죄가 소멸하고 승천할 수 있다면 강가 강에서 사는 물고기들이 제일 먼저 승천했을 것이다’라고.

아무리 봐도 내 눈에는 똥물이기만 한 그 물을 성스럽게 여기는 그들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히말라야에서 흘러내린 물이 인도 평원을 거쳐 아무렇게나 버려진 쓰레기와 시체들의 잔해, 오물들에 섞여 눈과 코가 따갑다. 불구부정(不垢不淨)이라고 했던가. 깨끗한 것은 무엇이고 더러운 것은 또 무엇인가.

마니카르니카 가트(화장터) 가까이 다가선다. 자신의 차례가 오기를 누워서, 앉아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이고 옆으로는 엷은 천으로 둘둘 만 시신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대나무 사닥다리처럼 엮은 들것의 앞뒤로 두 사람이 붙어 시신을 강물에 세 번 적신 다음 장작더미 위에 놓는다. 시체에 불이 붙는다. 힌두인들의 ‘축제’가 시작된다. 사람들이 노래를 부른다. 몇 천 년 동안 쉼 없이 타고 있는 시체들의 불꽃이 보인다. 기름이 흐른다. 상주는 긴 장대를 들고 시신이 고루 타도록 연방 쑤셔댄다. 타지 않는 심장까지 불 속 깊이 쑤셔 넣는다. 마침내 모든 것이 타들어 가고 있다. 그 불꽃이 갠지스의 밤을 물들인다.

강가 강 주변에 디아(Dia·꽃잎에 양초를 얹은 성구)를 팔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 틈으로 한 아이가 있다. 열 두살, 이름은 ‘발루’다. 나도 힌두인이 돼 보자는 생각에 디아를 하나 집으니 잽싸게 불을 붙여준다. 그 디아에 소원을 담아 강가 강에 띄워 보내고 500루피를 내미니 잔돈이 없단다. 나도 잔돈이 없다는 몸짓을 보이니 한참을 생각하던 발루는 그냥 가라며 손짓해 보인다.

미안한 마음이 앞섰지만 하는 수 없었다. 돌아서 나오는데 영 찜찜해 일행에게 빚을 냈다. 그런데 휘둘러봐도 발루가 보이지 않는다. 그 넓은 강가에서 무작정 발루를 기다린다. 숙소로 돌아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웬일인지 보이지 않는다. 잠시 후 멀리 발루가 걸어온다. 열 살인 동생 줄리와 축 쳐진 어깨를 나란히 하고 나타났다. 바구니 속 디아는 거의 줄지 않고 그대로였다. 그에게 다가가 아까 주지 못한 돈 10루피를 주고 10루피 한 장을 더 내밀었다. 그리고 디아 하나를 가리키니 그곳에 불을 붙여준다. 그런데 그만 불이 꽃잎에 붙어버렸다. 그러자 발루는 그 여린 손을 망설임 없이 불에 갔다 댄다. 뜨겁고 따가운 내색도 없이 불을 손가락으로 꺼버렸다. 나에게는 고깟 몇 푼짜리이지만 발루에게는 불길을 향해 거침없이 손을 내밀만큼 소중한 것이다. 온 가족이 먹고 살아야 하는 양식의 밑천이기에.

열 두살 ‘발루’와 열 살 동생 ‘줄리’.
하루종일 뛰어다녔지만 바구니의 디아는 그대로다.

발루와 나란히 서서 한참 동안 강가 강을 바라봤다. 발루가 짜이 한 잔을 따라준다. 앞이 보이지 않는 엄마가 담아준 것이라 했다. 그런데 나는 그 짜이를 받아 들고 순간 멈칫했다.

‘낯선 사람이 주는 음식은 절대 받아먹지 말 것.’ 인도여행수칙 두 번째였다. 망설이는 내게 발루가 환히 웃으며 왜 안 먹느냐는 시늉을 보인다. 안 되겠다 싶어 발루가 디아를 팔러 간 사이 강가 강에 짜이를 몰래 버렸다. 다시 옆에 온 발루에게 컵을 돌려주고 뒤돌아섰다. 돌아오면서 미안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뒤돌아 구멍가게에서 식빵 한 봉지를 사 발루에게 내미니 하얀 이를 드러내며 씩 웃는다. 발루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한참을 걸어가는데 뒤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는 것 같다. 뒤를 돌아봤더니 내가 샀던 것보다 두 배는 큰 디아를 나에게 건넨다. 나는 발루가 또 디아를 팔려는 줄로만 알았다. 바보처럼. 난 그때…. 지갑을… 열었으니까. 하지만 발루는 두 손을 내저으며 ‘이건 당신 부모님 것’이라며 어서 강물에 띄워 보내라고 손짓 한다. 가슴 한 구석이 내 손에 들린 디아의 불꽃 온기처럼 따뜻해졌다.

안소정 기자 asj@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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