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소정 기자의 칙칙폭폭 인도순례] 8. 평온한 경지
[안소정 기자의 칙칙폭폭 인도순례] 8. 평온한 경지
  • 법보신문
  • 승인 2008.04.07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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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멸의 애잔한 슬픔 시공을 넘다
붓다께서 열반에 드셨다. 그리운 고향을 향해 북녘으로 머리를 두고 오른쪽 옆구리를 땅에 대고 두 발을 포개 누워 붓다는 입멸에 드셨다.

바이샬리에서 붓다는 제자들을 불러 모았다. “지금으로부터 3개월 뒤 여래는 열반에 들 것이니라.”

그리고 다음날 붓다는 마지막 여행길에 올랐다. 80살 노구의 병든 몸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그 소식을 접한 바이샬리 마을 사람들은 다시는 붓다를 뵐 수 없을 거라는 안타까움에 하염없이 뒤를 따랐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칸타키 강 앞에 이르렀다. 붓다는 강을 건넜다. 붓다와 마을 사람들 사이에 강물이 흘러갔다. 사람들은 붓다의 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붓다가 점점 멀어져 갔다. 사람들이 강변을 서성이며 눈물을 훔쳤다. 이별이 안타깝다. 그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붓다가 한참을 걸어간 뒤에도 돌아서지 못했다. 고개 돌려 그 모습을 본 붓다. 몸에 지니고 있던 발우에 물을 담아 그들에게 보냈다.

따뜻한 붓다. 붓다가 보낸 물 담긴 발우를 받아들었다. 그 마음을 받으니 더욱 붓다가 그립다. 자꾸만 눈물이 흐르는 사람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붓다.

오늘 시간여행은 쿠시나가라다. 바이샬리 마을 사람들의 그 마음으로 붓다의 입멸지(入滅地)로 가는 날이다. 새벽부터 마음이 무겁다. 붓다의 열반지로 가는 길이 너무 빨리 찾아왔다. 어제는 룸비니, 오늘은 열반당.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탄생과 죽음. 그것도 붓다의 생과 사를 단 이틀 만에 속성으로 훑어낸다는 것이 마치 무슨 죄를 짓는 것만 같다. 뒷걸음치고 싶다. 시간을 엿가락처럼 쭉 잡아 늘어뜨리고 싶다.

일정의 고됨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순례자들 마음 역시 다르지 않은가보다. 말없이 묵묵히 버스에 앉아 열반당으로 향하는 이들의 표정이 자못 근엄하기까지 하다.

열반당을 향하며 내내 아난다를 생각했다. 입멸을 미리 예견한 붓다 곁에서 슬픔을 감추고 시봉해야 했을 아난다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아난다의 그 슬픈 마음을 가슴에 품고 붓다를 뵈러 간다. 오늘 순례자는 모두 아난다가 되었다.

“나~무♬ 서까모니불, 나♪무~ 서어까모니♩부울, 나~미~ 서♬까머니~뿌울”

깜짝 놀랐다. 눈알이 앞으로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일어난 일이다. 버스가 멈추어 서자 예닐곱쯤으로 돼 보이는 인도 아이들이 잽싸게 버스 입구에 자리를 잡고 노래하는 것 아닌가. 나름대로 구색을 갖춘 음악단이다. 우리의 북과 장구 같은 악기를 하나씩 들고 즉석 공연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 신비롭다. 들어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신비한 소리다. 그 떨리는 바이브레이션. 그 신비의 독경소리 속에 눈부신 바이브레이션이 있다.

노래제목 : 나무아미타불.
가수 : 수리스와 아이들.

한국말은 어찌 알았는지, 노랫말은 오로지 ‘나무석가모니불.’ 클라이맥스에 다다르자 팀의 리더이자 보컬 ‘수리스’의 목에 힘줄이 퍼렇게 선다. 상황은 우습지만 그 목소리만큼은 구슬프다. 그 노랫소리는 분명 붓다가 열반에 들기 직전 제자들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 분명했다. 할 수만 있다면 이 아이들의 모습을 쭉 찢어가고 싶다. 책장 찢듯 찢어내 주머니에 쏙 넣고 시간을 뛰어넘어 붓다에게 들려드리고 싶다. 아마 이 노래를 들으시면 붓다는 말없이 미소 지어주시지 않으실까.

붓다는 피를 쏟으며 한 발 한 발 걸으시고 땀을 흘리며 한 발 한 발 나아가셨다. 길가 나무 밑에 앉아 강물로 목을 적시고, 몇 걸음 가다 멈춰 쉬고, 몇 걸음 가다 멈춰 서 숨을 고르셨다. 내가 지금 걷는 이 길이 바로 붓다가 힘겹게 걸으신 그 길이다. 붓다가 밟은 이 땅. 붓다의 피와 땀이 서려 있는 곳이다. 나의 흙 묻은 신발로 이 땅을 밟는다는 것이 또 한 번 죄를 짓는 듯하다. 혹 내가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붓다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는데 나는 이제야, 이제서야 도착했다.

붓다가 아난다에게 말씀하셨다. “지금까지 말한 경(經)과 계(戒)가 너희를 보호할 것이다. 내가 열반에 든 뒤에는 계율을 어둠 속에서 빛을 만난 듯, 배고픈 이가 식량을 얻은 듯이 소중히 여겨야 한다. 계율은 스승이며 내가 세상에 더 살아있다 해도 이와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낙숫물이 떨어져 돌에 구멍을 내는 것과 같이 끊임없이 정진하여라.”

최후 설법이 끝나고 붓다는 서서히 입멸로 나아갔다. 열반에 드시려 했다. 그런데 곁에 아난다가 없는 것을 알고 붓다는 한 제자를 불러 물었다.

“아난다는 어디 있는가? 한동안 보이지 않는구나. 평소에 없던 일이다.”
“스승이시여, 아난다는 한쪽에 가서 울고 있습니다.”
“가서 아난다를 불러 오너라.” 붓다가 말했다.
“아난다야, 그만 슬퍼하거라.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가깝고 사랑하는 것에 이별의 슬픔이 있다고. 생겨난 것은 무엇이건 소멸하게 되어 있다고. 아난다야, 열아홉 살 너를 만난 후 많은 시간이 흘렀구나. 그대는 오랫동안 자애롭고 성실하게 내 손발이 되어 주었다. 그동안 나를 보살피느라 고생이 많았다. 늘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고마운 마음 어찌 말로 다 하겠느냐. 이제 그대의 수행도 많은 진전을 보이고 있다. 계속 정진하여라.”

붓다의 다비장 ‘라마바르 스투파’앞에서 천진난만하게 뛰노는 아이들.
그리고 우리는 붓다를 다비하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 다비장(茶毗場) 앞에 섰다. 라마바르 스투파는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어 버렸지만 그 성스러운 기운만은 여전하다.

이토록 정겨운 음성을 듣고 누가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있을까. 아난다의 눈에 눈물이 쏟아졌다. 온몸으로, 온 마음을 다해 25년 세월을 한날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모셔왔던 붓다께서 열반에 드셨다. 그리운 고향을 향해 북녘으로 머리를 두고 오른쪽 옆구리를 땅에 대고 두 발 포개 누워 붓다는 입멸에 드셨다. 아난다가 슬피 목 놓아 울었다. 아난다의 눈물겹도록 정성스럽고 지극한 마음이 시공(時空)을 뛰어넘어 내게까지 전해져 온다. 하늘에 보름달이 푸르고 대지는 은은히 진동한다. 사라수 숲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울고 바이샬리 마을 사람들도 울고 아난다도 울고 춘다도 울고 하늘도 울고 땅도 운다. 나도 울고 그대도 울고 나그네도 울고 아이들도 운다.

5세기 초 ‘하리발라’라는 비구의 기부금으로 조성된 붓다의 열반상이 봉안된 열반당과 아쇼카 왕이 세운 대열반 스투파.
그리고 우리는 붓다를 다비하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 다비장(茶毗場) 앞에 섰다. 라마바르 스투파는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어 버렸지만 그 성스러운 기운만은 여전하다.

멀리 새하얀 건물이 보인다. 5세기 초 ‘하리발라’라는 비구의 기부금으로 조성된 붓다의 열반상이 봉안된 열반당과 아쇼카 왕이 세운 대열반 스투파이다. 열반당에 들어서니 6.1m에 이르는 거대한 금빛 와불이 보인다. 창문에서 빛이 흘러들어와 내부를 따스하게 비추고 있다. 고요한 빛이다. 발걸음 소리와 숨소리, 하물며 심장의 떨림마저 멎어 버린다. 정적이 흐른다. 엎드려 붓다의 발에 고개 숙여 이마를 대본다. 적광(寂光)으로 온기가 느껴진다. 붓다의 얼굴을 바라본다. 붓다는 아이들의 노랫소리를 들으신 걸까. 붓다가 웃으셨다. 그렇다. 붓다는 분명 웃고 계신다. 한가득 미소를 머금고 말없이 누워계신다. 금방이라도 일어나 앉아 그 넓은 가슴에 우리를 품고 법문을 내리실 듯하다. 그런데 오늘은 그 모습마저도 서럽다.

한가득 미소를 머금고 말없이 누워계시는 붓다.

한가득 미소를 머금고 말없이 누워계시는 붓다.

저문 하루는 다시 적멸로 돌아가지만 곧 다시 환한 새날이 밝아 올 것이다. 내일은 또 다른 제자들이 붓다를 만나러 이곳으로 오리다. 그리고 붓다는 지금처럼 맑은 미소를 보여주시겠지. 붓다여. 다시 올 그날에도 그 미소, 보여주시옵소서. 나무시아본사 석가모니불.

붓다의 마지막 설법지.

안소정 기자 asj@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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