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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광섭 교수의 불교와 시간]⑤과학적 시간3

기자명 법보신문

도솔천의 하루가 지상에서는 400년

불교 설화 속 시간관 과학적 진실에 가까워
시간은 빛의 파동성에 따라 변하는 空한 것

검은구멍이라고도 하는 블랙홀에서는 빛·에너지·물질·입자의 그 어느 것도 탈출하지 못한다.

‘신선노름의 도끼자루’라는 옛 이야기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옛날 비슬산 기슭에 사는 나무꾼이 있었는데, 어느 날 산꼭대기에 올라가니 웬 노인 두 분이 바위에 앉아 바둑을 두고 있었다. 이 나무꾼도 바둑을 두는데 흥미도 있고 하여 그 바위에 걸터앉아 보게 되었는데, 한참이 지나 바둑이 끝나자 두 노인이 일어서면서 “이제 그만 돌아가 볼까? 자네도 집으로 잘 가게.” 하고는 바람이 휙 불더니 사라져 버렸다. 나무꾼이 바위에서 내려서서 자기가 들고 온 도끼를 보니, 도끼자루는 썩어 없어져 버리고 도끼날도 녹이 슬어 있었다. 나무꾼이 산을 내려와 마을에 오니 자기 집 앞에서 웬 노인이 밭을 갈고 있었다. 그 노인에게 “이 집에 사는 아무개를 아시오?”하니 “그분은 제 고조부 이십니다.”라고 하였다는 얘기다.

이와 비슷한 서양 이야기로 미국인 워싱턴 아이윙(Washington Iwing)이 쓴 소설에 윙클(Rip Van Winkle)이란 사람이 숲 속에 들어가 잠이 들었다가 고향에 다시 와보니 몇 십 년이 흘렀다는 소설이 있다.

불교의 세계관을 보면 3계(욕계, 색계, 무색계)가 있는데, 우리와 같은 사람은 욕계에 속한다. 욕계는 지하, 지상, 하늘의 세계로 다시 나뉘며, 하늘세계는 다시 6개로 세분되어 욕계6천(欲界六天)이 있다. 이들 각종 세계는 시간의 흐름이 모두 다르다고 한다. 예로부터 우리에게 친숙한 도솔천은 욕계 제4천인데, 도솔천의 하루가 이곳 지상에서는 400년이라 하고, 그곳에서는 수명이 그곳 시간으로 무려 4000년이나 된다고 한다.

이런 신화나 소설들은 재미있게 꾸며낸 이야기일 뿐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될 것이다. 그러나 시간의 본성에 관한 한 이들 이야기가 우리들이 평소에 느끼는 절대 보편적 흐름보다 더 진실에 가까운 면이 있다.

예를 들어 은하수의 중심부에는 거대한 블랙홀이 있어서 물질을 빨아들이고 있다. 블랙홀은 큰 별이 자체 중력으로 수축되어 아주 작은 공간으로 응축된 별이다. 그러므로 밀도가 무한이 커진 가장 단단한 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론 아무 것도 없는 구멍(hole)이라고도 할 수 있다. 왜냐면 이곳으로 모든 물질이 빨려 들어가고 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빈 구멍’과 같다. 가장 꽉 찬 것과 텅 빈 것이 같다는 것이니 극과 극은 통한다고도 할 수 있겠다. 블랙홀이라 불리는 이유는 빛까지도 반사되어 나오지 못하고 빨려 들어가기 때문에 보이지 않고 따라서 검다(black)고 한 것이다.

블랙홀이 검은 것과 시간의 흐름이 어떤 관계가 있을까? 여기서 다시 한 번 시간의 흐름은 빛으로 정의된다는 것, 빛은 파동이란 것, 빛이 몇 번 파동 치느냐가 곧 시간의 흘러간 량을 말해준다는 것을 회상해야겠다.

달리는 로켓의 빛 시계가 느리게 흐르는 것으로 보이는 이유는 빛의 파동이 천천히 굽이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빛의 굽이침이 느려지고 빨라지는 것은 중력에 의해서도 영향 받음을, 이것 역시 아인슈타인이 알아냈다. 그래서 중력이 센 지구 중심에서는 빠르게 굽이치던 빛이 중력이 낮은 고공으로 올라오면서 점점 느리게 굽이친다. 빛의 파동이 중력의 세기에 따라 달라지므로 시간의 흐름도 따라서 변하게 된다.

중력에 의해 파동이 달라지는 이유는 우리의 일상 경험과 그리 멀지 않다. 높은 곳에서 물체가 떨어지면 점점 속력이 빨라지고, 반대로 아래에서 빠른 속도로 쏘아 올린 물체는 위로 올라가면서 속력이 점점 느려진다. 빛을 위로 비추면 빛 역시 중력에 의해 아래로 끌리기는 하는데, 그러나 속력이 느려지지는 않는다. 그 대신에 파장이 길어지고, 파동 침이 느려진다. 그러므로 중력에 의해서 빛의 파동이 영향을 받고, 이것은 다시 시간의 흐름에 반영되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건물의 옥상에 있는 시계는 빨리 가고 지하실에 있는 시계는 천천히 간다. 지하실의 중력장이 옥상에서보다 더 세기 때문이다. 블랙홀은 그 주위의 시공간을 완전히 바꿔 놓는다. 그 주변에 지평선이란 경계가 있어서 이곳을 넘어선 모든 것은 블랙홀로 빠져 들어가기만 할 뿐 나올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블랙홀의 지평선은 중력장의 세기가 엄청나게 크다. 그래서 시간의 흐름이 우리의 지상에 비해 엄청 느리게 흐른다. 그 이유는 이 지평선에서 발생한 빛이 지상에 전파되어 오는 동안에 굽이침이 아주 느려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블랙홀의 지평선에서 1년이 지상에서 수십 년이다”란 말이 된다. 그러므로 이 블랙홀의 지평선에 가서 잠깐 쉬고 오면 지상은 몇 백 년이 흐를 수 있다.

이 세상 모든 곳마다 중력장의 세기가 다르므로 따라서 시간의 흐름도 곳곳이 다 다르다. 우리가 어느 곳에서나 시간이 꼭 같이 흐른다고 느끼는 것은 우주에 비하면 먼지보다도 작은 지구에 국한해서 보기 때문이다. 불교설화에 의하면 도솔천뿐만 아니라 다른 종류의 하늘마다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고 하는데 우주적 차원에서 사실에 가깝다. 전 우주를 관할 수 있는 불보살의 경지에서는 시간이 상대론적 시간보다도 더 놀라운 특성을 가졌을지 모르며 불경의 설화가 더 진실에 가까울 수 있다. 관견 (管見)이란 말이 있듯이 작은 통으로 바라보는 좁은 소견으로 어떻게 이 우주의 실상을 알 수 있겠는가. 생각을 비우는 것이 우리의 좁은 생각으로 재단하는 것보다 훨씬 지혜로울 것이다.

이상의 과학적 시간론에서 전달하고자 한 핵심은 시간은 절대적 객체가 아니고, 빛의 파동성에 따라서 변하는 상대적이고 공한 것이란 점이다. 이제 불교적 세계관과 상대론적 시공간의 관계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여기서 부처님의 가르침 자체는 시대를 초월하는 진리이지만, 그 말씀을 듣고 해석하는 능력은 그 시대의 과학적 수준을 벗어날 수 없다는 한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과학이 발달하면 그에 따라 우리의 이해 수준이 높아지는 것이지 부처님의 진리가 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행히 상대성이 나와 이런 점이 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즉 현대과학덕분에 부처님의 말씀들을 좀 더 잘 알아듣게 되었다는 것이다.

소광섭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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