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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소정 기자의 칙칙폭폭 인도순례] 9. 시간이 머문 곳

기자명 법보신문

억겁의 인연 녹아든 청수를 마시다

기원정사 터는 여전히 평화로운 땅이다. 존재하는 흙 한 줌, 구름 한 점, 나무 한 그루, 풀, 물, 바람 그 밖의 모든 것들이 조화를 이루어 함께 공존하고 있다.

이방인은 늘 배가 고프다. 인도 커리를 한 접시나 비우고도 몇 시간 지나지 않아 허기가 진다. 고소하고 매콤한 냄새로 한가득 메운 좁은 길을 지나니 뱃속에서 ‘꼬르륵’한다. 그 냄새들이 군침을 돌게 한다. 길가에 흥미로운 먹을거리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 얼마나 있었다고 인도인들의 음식에도 눈길이 간다. 이방인임을 핑계 삼아 오늘은 저 음식들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이리저리 살펴보니 먹을 만한 것들도 꽤 있다. 눈과 코보다 뱃속에서 먼저 알아차리고 걸음이 나를 그것들 앞에 세워놓았다. 이름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식들. 어느 시인의 말처럼 무심결에 지나쳤던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었다가 내가 그것들을 불러주니 나에게 와서 음식이 된다. 그것은 나에게 ‘음식’이 아닌 하나의 ‘존재’ 그 자체였다. 그렇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 ‘꽥꽥’ 오리 두 마리로 먹은 음식을 다시 한 번 확인해야했다. 그것들의 의미를 구태여 체험으로 찾으려 했던 용기가 뱃속 내장에는 무리였다는 교훈을 얻고 기진맥진 돌아선다.

붓다가 망고 씨를 땅에 심어 순식간에 싹을 틔운 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는 신통을 보였던 곳. 그 망고 열매가 마치 천 분의 부처님 모습과 같다고 했던 천불화현 탑 터다.

오늘은 그 어느 성지보다 붓다의 숨결이 깊이 스며들어 있는 곳. 45년간의 교화 여정 중 24안거를 보내며 머물렀던 스라바스티로 간다.
『금강경』을 비롯한 대부분의 경전이 설해진 곳. 천불화현의 기적, 꺼지지 않는 가난한 여인의 등, 연화색녀, 앙굴리말라,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겨자씨를 구하던 이야기 등의 근원지. 귀에 익숙한 사건과 인물들의 이야기가 피어난 곳이다. 그중에서도 스라바스티하면 헌신적으로 자신의 재산을 아낌없이 공양했던 수닷타 장자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붓다와 제자들이 수행하기 좋은 곳을 찾아 헤매다 기원정사 터를 발견한 수닷타 장자. 금으로 땅을 메우면 그 땅을 팔겠다는 땅주인 제타 왕자의 억지로부터 감복을 받아낸 곳. 과연 그 땅은 얼마나 고요한 곳이었을까. 붓다의 말씀이 바람을 타고 퍼져 시간도 머물며 붓다를 만났던 곳으로 간다.

서둘러 기원정사로 힘차게 발을 구른다. 몇 발자국 내딛으니 허물어진 벽돌의 잔재들이 먼저 순례자를 반긴다. 고요하던 곳이 폐허가 되었다가 다시 빈터가 된 곳. 그 아픔을 고스란히 품고 피어오른 생명력 강한 풀들과 이곳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봤을 나무들이 근엄하게 서 있다.

여전히 평화로운 땅이다. 존재하는 흙 한 줌, 구름 한 점, 나무 한 그루, 풀, 물, 바람 그 밖의 모든 것들이 조화를 이루어 함께 공존하고 있다.

붓다 재세 시 치열했던 수행 현장이었던 이곳…. 나무 아래 잠시 앉아본다. ‘휘’ 부는 바람에 나뭇잎들이 ‘추르르’하며 흔들린다. 마침 하얀 뭉게구름 사이로 볕이 욱욱(昱昱)하게 비춘다. 그 빛 속에서 붓다가 로보트 태권브이처럼 ‘짜잔’ 하고 나타날 것만 같다.

기원정사 터는 인도인들에게 넓은 공원같은 곳이다.
최초의 승원터로 불리는 ‘간다쿠티’.
붓다가 『금강경』을 설했다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최초의 승원터로 불리는 ‘간다쿠티’로 몸을 옮겼다. 붓다가 너무나 그리운 나머지 프라세나짓 왕이 행목으로 불상을 조성한 붓다의 향실터. 붓다가 『금강경』을 설했다는 곳도 바로 이곳이다.

조금 더 걸어가니 아난다가 물을 길어 붓다에게 공양하기도 하고 발을 씻겨 드리기도 했다던 우물터가 나온다. 맑고 시원해 그 당시에도, 지금도 식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붓다가 마시던 이 우물에 다가서니 30대로 보이는 한 아저씨가 주인마냥 서 있다. 한번이라도 인도 스라바스티에 다녀온 이라면 분명 이곳 우물터에서 만난 노인 ‘바추랄’을 잊지 못할 것이다.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우물 앞에서 한국말로 또박또박 “부처님이 마시던 물, 부처님이 마치던 물”이라고 크게 외쳐댔다니 말이다. 아쉽게도 이제는 “부처님이 마시던 물”이라는 외침은 들을 수 없다. 그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우물 지킴이’는 그의 아들 ‘시타람야도’가 대신 맡았다. 그가 어서 빨리 아버지의 대를 이어 그 외침을 한국 불자들에게 들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아버지 ‘바추랄’의 대를 이어 우물지킴이를 하고 있는 ‘시타람야도’씨.
시간은 곁에 머물러주지 않고 점점이 흘러만 간다. 예정된 일정의 끝도 서서히 가까워진다. 붓다와 이별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억지로 떼어내며 앞으로 나아간다. 걷다 보니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다. 아난다가 부다가야의 보리수 묘목을 발우에 담아 옮겨 심었다고 ‘아난다의 보리수’라 불리는 그 나무다. 그 주변에서 오늘도 물러서지 않는 수행삼매에 빠진 스님들의 모습이 보인다.

조용히 합장한 뒤 그곳을 스쳐 지나려고 하니 한 스님이 나를 불러 세운다. 스스로를 인도 비구니라고 소개한다. 인도에서 인도 스님을 만난 게 처음이었다. 몇 번이고 되물어도 인도 스님이란다. 한국 불자라고 나를 소개하니 허리춤을 뒤적뒤적하더니 뭔가 쑥 내민다. 곱게 보관하고 있던 아난다 보리수 나뭇잎 한 장과 조선의 퇴계 선생이 그려져 있는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이다. 순간 어찌할 바를 몰라 멍하게 서있으니 어서 받으라고 재촉한다. 연필이고 볼펜이고 주기만 하다가 뭔가를 받으려니 어색하기만 하다. 한사코 양손을 내저으니 자신에게는 필요 없는 것이라며 내 손을 덥석 잡아 손에 쥐어준다. 두 손을 맞잡으니 온기가 느껴진다. 갑자기 서로 웃음이 터져버렸다. 단돈 천 원으로 스님과 나는 순식간에 친구가 되었다.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서둘러 안녕하고 돌아선다. 몇 걸음 앞으로 걷다 아쉬운 마음에 뒤를 한번 돌아보니 아직도 스님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아난다의 보리수’라 불리는 나무 주변에서 치열하게 수행 중인 스님들.

우리는 어떤 인연이었을까. 스님은 어쩌면 억겁을 함께 했을 나의 스승이었을지도 혹은 어머니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인연을 두고 발걸음을 재촉해야 한다니 마음 한편이 처창해진다.

안소정 기자 asj@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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