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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일 스님의 계율칼럼]

기자명 법보신문
  • 지계
  • 입력 2008.04.28 16:33
  • 댓글 0

출가자에 그림 그리는 걸 허락한 이유

역사적으로 남아있는 유·무형의 불교문화재로 인해 지금의 스님들이 받고 있는 혜택을 생각하면 뛰어난 예술은 승가의 유지에 큰 도움이 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중일 스님들이 남긴 문학과 글씨와 그림, 그리고 음악이나 건축, 정원에 이르는 방대한 예술의 영향은 지대하다.

지영 스님이나 회소 스님과 같은 서예 역사에 큰 획을 긋는 분이 배출되었는가 하면 산수화의 시조로 불리는 종병이나 남종화로 유명한 왕유 역시 모두 불교의 영향을 깊은 받은 사람들이다.

오조 홍인대사가 자신의 방 복도에 그림을 그려 넣으려다가 스님들에게 게송을 쓰게 한 것은 당시에 그림을 즐겨 감상하던 풍토를 반영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양지 스님의 그림과 조각의 솜씨는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으며, 담징 스님의 벽화는 일본의 문화재로 전해지고 있다. 또 나옹 스님은 만년에 산수화를 즐겨 그렸으며, 초의 스님의 예술에 대한 조예는 말할 필요조차 없이 유명하다.
그런데 이와 같은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과연 스님들에게 허락된 것인가를 율장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어느 스님이 동굴에 머물다가 잠시 외출한 사이에 다른 스님이 주인이 없는 동굴인줄알고 그곳을 사용하였는데 나중에 먼저 있던 스님이 돌아와 자리를 비켜 달라고 하였다. 마침내 두 스님 간에 분쟁이 일어나자 부처님께서는 스님들이 자신의 처소를 표시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식물의 모양이나 신의 형체를 그림으로 그리는 것을 허락하셨다.

또 지붕에 관한 계목(戒目)에서는 집에 여러 가지 문양을 조각하고 채색하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이처럼 율장에서는 필요에 의해 그림을 그리도록 하고 있는데, 이것을 오늘날의 예술적 개념으로 보면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처음에는 표시를 위한 것이라 해도 시대가 흐르면서 아름다움을 느끼도록 변화하였고 마침내는 불교의 정신을 담은 예술로 발전되었다.

티베트의 젊은 지도자 17대 까르마빠는 스스로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며, 나아가 플롯의 작곡을 하며, 음악과 명상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고 밝힌바가 있다.
계율이 존재하는 이유가 바른 행위로 도에 나아가기 위함이라면, 예술로 교화를 펴는 것은 중생을 마침내 불도로 이끌기 위함이다.

그러나 예술품은 정신을 고양시키기도 하지만, 너무 심취하면 본래의 뜻을 잃게 되니 경계해야 한다.

송광율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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