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종찬 칼럼] 마음 찾기

기자명 법보신문

마음 작용도 궁극엔 행위로 나타나니
개인의 대중적 실행 없으면 공론일 뿐

지난번에는 우리에게도 우주인이 탄생했다는 기쁨의 일환으로 우주의 왕복은 우리가 수 천년 전부터 앞서가 있었다는 억지스런 이야기를 해 보았다. 그 근거로 우리는 달을 따 보겠다는 의욕을 어려서부터 심고 자라 온 사실을 일례로 이야기의 실마리를 삼았다.

이래놓고 돌이켜 보니 의식이란 마음의 작용인데, 마음이 무엇이냐 하고 되물어보니 손에 잡힐 듯한 명쾌한 대답을 못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몸가짐의 가르침을 주장하게 되면 마음을 잘 다스리라 함이 공통의 명제일 터인데, 이 다스림의 주체인 마음을 찾아 보려 하면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때 몸가짐의 대칭이 마음 찾기라면 마음이 몸과 상대적 지칭임이 분명하니 몸은 알거나 찾기가 눈 앞에서 분명히 들어나는데, 상대인 마음은 그 실체를 알기도 보기도 어렵다. 다스림의 행동을 실행할 대상을 못 찾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기에 역대 스승들의 말씀이 ‘마음을 다스리라’ 하면서도 마음이 무엇인가에 대하여는 기호나 숫자로 표현하듯이 보여 주심이 적은 것 같다. 유교에서의 수행 덕목 8가지 중에서, 마음 바르기를 4번째의 자리에 놓아 의식과 육신의 중간에다 놓고, 의식을 성실히 하고 그 다음으로 마음을 바르게 하며 그리고 나서 몸을 닦으라 하였으니, 마음이란 의식을 뒤따르는 셈이다.

그도 그러할 것이 마음이란 용어를 쓰게 되면 의식의 생각과 동일한 차원에서 이해하려는 것이 평범한 대중들의 지식이기 때문이다.

의식이란 나만의 생각이기에 남에게 알려지는 것도 아니고 보여지는 것도 아니다. 의식작용을 마음 작용이라 한다면 마음 역시 보이거나 알려지지 않으니, 내 스스로 조절하기 어려움이 역시 필연이다. 유가의 가르침의 종주라 할 수 있는 맹자도 일찍이 이런 점을 알고서 애태워 하되, “사람들은 개나 닭이 없어지면 찾을 줄을 알면서도 제 마음을 잃고서는 찾을 줄을 모르니 애석하구나” 한 적이 있다.

이것이 그 때나 지금이나 일반 대중의 일상적 행위이다. 개나 닭은 목전에서 있고 없음을 쉽게 알 수 있으나, 마음의 있고 없음은 그 마음의 소유자인 나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한탄을 한 맹자도 안타까움을 호소할 뿐이었지, 도망간 마음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제시는 못하고 있다.

마음의 조절이란 이렇듯 배움의 지식적 축적에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무한한 수양에서 이루어지되, 궁극적으로는 마음 없음의 무심에 이르려야 할 것이니, 이 또한 마음 찾음의 어려운 일면을 지칭하는 말이 되겠다. 불가에서는 마음의 정리를 여타 종교의 가르침보다 섬세하게 하려고 하여 여러 정의를 내리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정연한 논리라 하더라도 마음 작용은 궁극적으로 행위의 작용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이기에 각개인의 대중적 실행이 없다면 빈 이론의 공론이 되고 만다.

여기에 하나 생각나는 일이 있다. 우리의 옛 가르침의 교과서가 거의 중국의 경전을 주로 하는데, 어린이의 교습서에는 우리의 독창적 교과서들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명심보감』이다. 내용은 중국의 고전에서 거의 인용되었지만 창시적 편찬자는 고려의 학자 추적(秋適)이라는 분이다. 책의 제목적 풀이만으로도 얼마나 귀중한가를 알게 한다. ‘마음을 밝히는 보배로운 거울’이다. 마음이 무엇이라는 제시가 없으면서도, 내 마음을 객관화시켜 거울 앞에 들어내 놓고 바르자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의 마음가짐의 바른 점을 여기서 다시 한 번 더 느끼게 한다.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이종찬
 sosuk0508@freechal.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