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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광섭 교수의 불교와 시간]⑦불교의 시간관2

기자명 법보신문

‘세계는 고화질 TV화면’ 불교-물리학 견해 동일

시간이 연속적인가 아니면 최소단위가 있는 것인가 하는 질문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철학자와 과학자들이 생각했던 것이지만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다. 현대물리학에서 상대성 이론은 연속적 시간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양자론과 일반상대론이 결합되면 시공간이 양자화 되어 시간의 최소단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아직까지 양자론과 일반 상대론의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시간의 근본문제는 그대로 남아있다.

『아비달마구사론』에서는 시간에 최소단위가 있다고 보았으며, 이 최소시간을 ‘찰나’라고 하였다. ‘찰나’의 구체적인 수치(75분의 1초) 자체는 깊은 의미가 없어 보이지만, 최소의 시간단위를 도입한 세계관은 현대과학기술의 관점에서도 의미심장하다고 여겨진다.

아비달마 논사들이 시도한 것은 제법무아(諸法無我)를 설명하는 논리적 체계였다. 『구사론』에서는 ‘제법’을 75개의 기본이 되는 법들의 인연에 따른 결합과 분해로 이해하려했다. 이 75법의 대부분은 마음과 마음 작용 및 인식에 관한 것들이고, 물질적인 요소는 색(色)이라는 법으로 포함되어 있다.

만약 설일체유부의 75법이 불변적이고 영속적인 요소라면 그것을 유아(有我)라고 하는 것이므로, 제법무아의 가르침에 어긋나게 된다. 그래서 기본법은 생성되자마자 한 찰나에 소멸해야 될 논리적 필요가 있게 되었다. 한편 제법은 기본 75법이 인연 따라 여럿이 모여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보았다. 즉 어떤 기본법이 생성되어 소멸되는 시간이 찰나이고, 생멸하는 기본법들의 집합에서 어떤 형태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 작용일 뿐 실재가아니란 것이다. 이 찰나 생멸의 관점을 비유를 들어 이해해보자.

고화질 HD-TV의 화면을 보고 있노라면 실재보다 더 사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이다. 고요한 호수, 흐르는 강물, 그 속에 노니는 물고기들이 현실 상황보다 더 리얼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영상화된 용이나 공룡의 모습은 온 몸에 전율이 느껴질 정도이어서 현실과 가상의 구별이 없어지는 듯하다. 앞으로 정보기술이 더욱 발달하면 3차원의 가상현실과 우리가 실재로 살고 있는 세계의 구분이 사실상 없어질지도 모른다.

그런데, TV 화면을 현미경으로 확대해 보면 수많은 작은 LCD조각들이 바둑판처럼 빽빽하게 깔려있다. 이 LCD조각을 화소라 하는데, 각 화소는 켜지거나[生], 꺼지는 것[滅] 외에는 다른 일을 하지 않는다. “각 화소가 찰나에 생멸할 뿐인데, 이들의 집단에서 연극을 보고 스포츠를 즐기는 것은 우리들의 인식작용이 그런 상을 만들기 때문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생멸하는 화소의 집단에 이야기가 있고 주인공이 있고 하는 것은 ‘아(我)’가 있어서가 아니라 인과적 이야기 정보가 화소들의 생멸을 관장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제법무아’에 관한 현대적 비유이다.

『구사론』에서 주장하는 세계관은 우리의 현실세계가 3차원 TV화면이란 것이다. 이 관점이 현대물리학적으로 얼마나 타당할까? 놀라울 정도로 정곡을 찌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발달해온 물리학이론의 결정체를 양자장론(Quantum Field Theory)이라 한다. 이 이론에서는 빛, 전자 등의 소립자를 다루는데, 거기에서 쓰이는 핵심개념은 소립자들의 생멸이다. 예를 들어 책상에 놓인 한 컵의 물을 보자. 우리의 눈에는 연속적인 물이 고요하게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 백만 배 정도 확대해 본다면 불연속적인 물 분자들이 빠른 속도로 왔다갔다 운동하는 모습이 보일 것이다. 또 다시 백만 배 정도 더 확대한다면 TV의 화소처럼 소립자들이 요란스럽게 생멸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양자장론이 밝힌 바로서 이 세계는 소립자들의 생멸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므로 TV의 화면과 실제의 자연은 매우 유사하다. 맨 밑바닥은 기본요소들의 생멸이 있을 뿐이다. 좀 크게 보면 분자와 같은 작은 존재가 있는 것처럼 보이고, 더 크게 보면 컵과 물의 모습이 드러난다. TV화면의 컵이 그렇듯이 실제의 컵도 우리의 인식작용이 만들어낸 허구의 상에 불과하며, 이러한 상에 아(我)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구사론』이 제시한 제법무아의 해석이다. 소립자 물리이론은 물론 TV같은 기술이 전혀 없던 그 옛날에 ‘찰나 생멸’과 같은 디지털세계관을 구성할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놀라운 상상력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구사론』에 의하면 찰나와 같은 가장 짧은 시간에 반하여, 우주는 겁이란 긴 시간 단위가 있다. 1대겁(大劫)마다 우주가 한 번 생겨났다 다시 없어진다고 한다. 즉 1대겁은 성·주·괴·공이 각 20겁씩 총 80겁이다.

성겁(成劫) 동안에 처음에는 공간과 물질의 세계[이를 기세간(器世間)이라 함]가 이루어지고, 그 다음 점차 생명체[좀 더 일반적으로 유정(有情)]들이 범보천[33천등 각종 하늘세계 중 높은 곳]을 비롯하여 점점 낮은 세계로 퍼져서 인간이 사는 지상세계 그리고 끝으로 최하의 지옥인 무간지옥에 태어나 살게 되는데 이렇게 되는데 걸리는 기간이 20겁이다.

유정들이 20겁 동안 머물면서 지내는 기간이 주겁(住劫)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시기는 아마도 주겁에 속하지 않는가 싶다. 주겁이 시작하는 제 1겁 동안에 인간의 수명은 거의 무한대의 긴 수명으로부터 10세에 이르기까지 줄어든다. 제 2겁에 다시 수명이 늘기 시작하여 8만세에 이르렀다가 다시 감소하여 10세로 줄어든다. 제 3겁부터 제 19겁까지는 수명의 증감이 반복된다. 제 20번째 겁에서는 10세부터 증가하여 8만세에 이르는 것으로 끝난다.

괴겁(壞劫)은 성겁의 반대로 지옥부터 중생이 없어지기 시작하여 마침내는 기세간도 모두 불타 없어진다. 그런 후에 아무것도 없는 공겁 (空劫)이 역시 20겁을 지속하게 된다. 『구사론』에는 겁의 길이가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고, 상상할 수 없는 긴 시간을 의미한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현대 물리학적 우주론의 이른바 빅뱅이론에 따르면 우주의 역사는 150억년 정도가 되므로 1대겁도 그렇게 긴 시간에 대응한다고 볼 수 있겠다.

다만 한 가지 흥미 있는 점으로 인간의 수명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기에 인간의 수명의 점점 늘어 감을 체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평균 수명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30~40년이었는데 요즘은 70~80년으로 늘어난 점이다. 요즘의 생명공학의 발전 추세로 본다면 인간이 몇 백 년씩 젊고 건강하게 사는 시대가 곧 도래할 듯하다. 세포·조직·기관의 재생기술이 불가능할 이유가 없는데다가 요즘 생물과학의 관심이 이 주제로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구사론』에 나온 대로 몇 천 년 몇 만 년씩 살게 된다면 인생관과 세계관 그리고 종교는 어떻게 될까?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소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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